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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준신부님
고석준신부님
제목 산길을 네번이자 잘못들었습니다. 날짜 2007.11.12 12:44
글쓴이 관리자 조회 734

모처럼 인터넷을 뒤지다가 , 거 참, 우리 글을 잘 쓰는 기자가 있기에 아예 여기 붙입니다. 문화일보의 박  경일 기자라는 분인데, 한번 만나고 싶어집니다. 문화일보에 들어가서 이분 이름을 검색하면 여러 글이 나오니 이 양반이 쓴 글 여럿을 한번 읽어보시 기 바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 글입니까.

 

이 분이 소개한 책 중에 "세계를 더듬다"라는 책이 있 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세계를 여행한 일대기입니다. 우리 교우회에 정 상모 아오 스딩 형이 계시니, 우리 모두 이 책을 더듬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눈이 뜨일 것입니다.

 

고 석준 드림

 


 


산 길을 네 번이나 잘못 들었습니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의 봉수산 자락.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항거지였다는 임존성을 찾아나선 길이었습니다. 

 

표지판도 없는 임도를 따라 어림짐작으로 찾아나섰다가 

 

갈림길에서 몇 번을 헤맸는지 모릅니다. 

 

해질녘이 다 돼서야 그 성벽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임존성. 패망한 백제의 유민 3만여명이 

 

봉수산 자락에 살면서 쌓았던 성이랍니다. 

 

 

 

저물 무렵에 그 패잔의 성에 섰습니다. 

 

이 성을 딛고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쓸쓸합니다. 

 

농기구를 갈아서 무기로 삼았던 백제 부흥군은 이 성에서 

 

마지막까지 성을 지켜내다가 몰살했습니다. 

 

패망한 나라를 되찾으려던 백제의 유민들은 이 성벽에 서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이 성을 짓고 끝까지 지켜내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이라지만, 여행길에서 만나는 풍경 속에서는 

 

우뚝 서있는 승자의 전승지보다, 

 

패자의 모습이 더 애잔하고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왜일까요. 

 

 

 

충남 예산은 ‘오래된 여행지’입니다. 

 

행락지로만 헤아린다면 수덕사와 예당저수지, 

 

여기에다 스파캐슬로 유명해진 덕산온천 정도면 

 

더 이상 꼽을 만한 곳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산의 구석구석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예산에서 만나는 역사는,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영웅의 것이 아니라, 

 

작고 따스한 삶의 냄새 가득한, 

 

그래서 더 정이 가고 마음이 가는 그런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더 반가운 것은 예산이 그런 역사의 공간을 

 

소중하게 다루며 지킬 줄 안다는 것이지요. 

 

이튿날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서는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찾았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지관이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점지해줘 그 자리에 있던 절을 불지르고, 

 

경기도 연천에 썼던 부친의 묘를 이곳으로 옮겼다는군요. 

 

가야산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이 묘에 올라서면, 

 

문외한의 눈에도 왜 이곳이 명당으로 꼽혔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뒤쪽으로는 산들이 첩첩하고 앞쪽으로는 툭 터진 들판이 펼쳐집니다. 

 

지관의 예언대로 아들(고종)과 손자(순종)가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순종은 조선왕조 시대의 막을 내린 비운의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산에는 또 당파에 시달리다가 낙향해 은거했던 추사의 고택이 있고, 

 

선비 풍모의 백송이 있으며, 

 

형님과 아우가 서로에게 쌓아줄 볏단을 지고 

 

밤길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담긴 효제비가 있습니다. 

 

700년 묵은 수덕사 대웅전의 아름다움이야 더 보탤 말이 없지요. 

 

수덕사 아래 수덕여관에는 이국땅으로 훌쩍 떠나 재혼한 

 

남편 이응로 화백을 기다리며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한 여성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묻어있습니다.

 

 

 

예산으로의 여행이 풍성해지는 것은 역사와 이야기 덕분이랍니다. 

 

아름다운 경치만을 찾는 여행이야, 당장의 맛은 달지만 

 

감동 없는 여행이란 사탕처럼 금세 녹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행길에 만나는 ‘역사’와 ‘이야기’는 일상생활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감성을 일깨워 준답니다. 

 

임존성에서의 ‘애잔함’이며, 

 

남연군 묘에서의 ‘덧없음’같은 느낌을 

 

여행이 아니고서는 또 어디서 느낄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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