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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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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9) 날짜 2015.06.30 17:36
글쓴이 관리자 조회 704

“누구야, 누가 우리 업이 첫날밤에 혼자 잔댜?”

“건아, 네가 어떻게….”

“맞춰봐라!”

“이거 꿈이지?”

“업아, 아니 최 신부님… 서품 축하드립니다."

대건은 잠깐 머리를 숙이더니 목에서 십자고상 목걸이 하나를 풀어 서품 선물이라며 건넨다.

“아, 이거 그 십자고상 목걸이?”

“르그레주아 신부님이 주신 거다.”

“좋았겠네.”

“야, 넌 그때 공부 잘한다고 만년필 주셨다!”

“그래 그거… 그 만년필로 니 순교 얘기 로마에 써 보냈어.”

대건이 손을 내민다.

“업아 따라와라!”

어? 어엉…. 내 손을 잡자 몸이 공중에 오르는데 그것은 속도가 아예 없는 살짝 마음만 먹어도 수직으로 솟구쳐 순식간 푸른 산맥과 강변의 흰 모래톱이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지는 상승, 거꾸로 내리박힐 때는 온 대지가 품안에 빨려드는 하강했다. 그런데도 느릿느릿 편안하다.

“업아 저기다…."

"엉…."

"저기 우리들이 도성!"

하, 도성엔 밤낮이 없는 것이다. 태양도 등불도 필요 없다. 거기 함께 계신 분의 영광이 그들보다 밝았기 때문이다. 모든 길과 벽돌과 지붕, 하물며 수채 구멍까지 황금색 광채가 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차갑거나 뜨겁질 않아 좋다.

“업아, 네 자리도 봐두었다.”

그래? 이제 손을 잡지 않아도 우린 한 쌍의 학처럼 어울렸다. 도성이 빼어난 것은 무한대의 공간에서 어떤 빠른 것보다 먼저 비상할 수 있어서였다. 오르면서도 머리를 아래쪽에 둘 수 있으니 하나의 점처럼 멀어지는 대양과 평원이 보인다.

“좋다 좋아, 건아 최고야!”

“다시 한 번 서품 축하한다.”

“건아, 지금 뭐가 제일 좋은지 아니? 보고 싶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맞다, 지상에선 곁에 있어도 보고 싶었다.”

“…."

업아, 난 늘 네 곁에 있다! 신품받았으니 훨훨 날아봐!“

“음…날아야지, 날아가서는 날아다녀야지!”

새 신부가 된 첫날밤은 대건과 함께 거기 도성 위를 휘휘 날았다. 문득 잠에서 깨었을 때는 침대에 앉아 중얼대는 나만이 덩그랬다.

“건아 같이 가!”

깨어난 것이 서운했다.

“기다려 건아….”

‘쾅! 쾅! 쾅! 쾅!’

“새 신부 일어났나?”

굼을 깬 후 도통 잠이 오질 않았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인가 했는데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 꼭두새벽인데 누가 부서져라 문을 두드리는가,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누, 누구세요?”

“나야 오 신부!”

“네에…어서 오세요, 오 신부님!”

속옷 바람으로 만나도 되는, 서가회 신학원의 옆방 지기로 한 살 연하지만 작년에 서품을 받은 일 년 선배이다. 대건도 4년 전에 신부가 됐으니 내가 그만큼 늦어진 폭이다.

“최 신부!”

“네, 오 신부님!”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첫날밤 잘 보냈어?”

“신랑은 없고 신부만 있었는데요.”

그래도 이상한 느낌이란 어제까진 최 부제님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며 나이 많은 부제에게 존대를 했었다. 그런데 신부가 된 지금 오히려 말이 짧아진 것이다. 중국말은 따로 존대가 없으나 그래도 중간에 ‘닌’이라는 호칭으로, ‘칭’같은 표현으로, 아니면 어기(語氣)같은 것으로 구별해 낼 수는 있다.

“내일 서가회 신학원 첫미사지?”

군기를 잡으려는 사람처럼 고자세 일변도이다.

“네… 오전 11시예요.”

대답하면서 스스로의 상태를 들여다보지만 아무래도 언짢아 왔다. 첫 미사를 앞둔 일생일대의 시간에 아무것으로도 방해받지 말자고 다독였으나 힘없는 주문처럼 흩어질 뿐, 한구석에 꾸역구역 올라오는 분심은 ‘부제 때도 존대더니?’였다. 오 신부는 계속 강수를 두어왔다.

“신부들 세계엔 나이보다 서품 순이 우선인 거 알지? ‘요’자가 입 밖에 나오려는 것을 부러 잘라먹는 빛이 역력하다.

“잘 알지요. 선배님.”

“그렇치…이….”

더듬기까지 하는 걸 보니 그 역시 돌변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 미사 연습은 많이 했어?”

“네…하느라고 했는데 떨릴 것 같아서….”

“이 사람아, 첫 미사 때 안 떨면 새 신부 아니지!”

‘이 사람아.’라니? 솔직히 바로 말을 잇지 못하겠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말이 짧아진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아예 동생 취급을 해오니 다음엔 어떤 표현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디까지 마구 대할 것인가?

아니지…. 나는 곧 첫 미사를 해야 할 몸과 마음. 지금 감정이 상하면 내일까지는 갈 것이다. 신학교 때 배우지 않았던가. 성당의 것만이 제단이 아니요 꼭 전례의 때만이 제대가 아니라고….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 먼저 화해하라고 하신 건 생활과 제대가 다 연관된다는 뜻이다. 그런데…꼭두새벽같이 왜 긁어 대시는가.

“왜, 내 말이 틀려?”

“아… 아녜요!”

“사람하곤…."

하늘이시여 겸손을 내려주십시오. ‘아무것으로도 당신과의 사이를 방해받지 않도록.’ 하며 숨을 내쉬었다.

“어째 눈치가…왜? 한 살 적다고 맞먹는 거야?”

“아닙니다.”

‘어제까지 존대하시더니.’란 말을 간신히 참았다. 만약 꼬투리라도 잡혔다간 오전 전체가 날아가도 모자랄 판, 세상의 무엇도 나의 미사를 방해할 수는 없다. 참는 모습을 보여도 트집거리요 딴청을 부려봐도 물고 늘어질 태세다. 아예 굴욕을 기쁘게 당하자고 생각했다. 대건은 목숨도 바쳤는데 이쯤이야…. 하늘이시여, 무엇도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마귀야, 내 사랑을 좀 방해하지 말아다오.

이래서 겸손하라고 하셨는지 모른다. 불쑥 교만으로 튀어나오면 계속 마귀 방망이의 표적이 되겠기에(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낮아지셨기에) 그렇다. 사실 생살을 뚫려 달리신 수난의 고통은 어느 정도 가늠이라도 해볼 수 있다. 요는 강생, 신께서 사람으로 낮아지신 거리는 어림조차 못할 것이 정체를 파악할 수도 없기에…. 사람이 미물이 된 것보다도 더할 굴욕이다. 그러니 까짓 반말, 넘기고만 볼 게 아니라 아예 동생처럼 밑으로 들어가자고 추스르던 마음을 나는 다잡았다. ‘다시는 이런 분심에 빠지지 말자. 날자. 날아오르자. 아무것도 나의 제단을 방해할 수 없게.’ 이러는 동안에도 오 신부는 자연스럽지 못한 대화를 밀어붙이느라 계속 그러고 있었다.

“주님께 감사미사를 봉헌합니다. 부족한 저를 당신 제단에 불러주셨습니다. 또한 그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살펴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미사를 봉헌합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이곳에 많은 신세를 졌어요. 사제수업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이 첫 미사로 조금이나마 보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미사 지향을 말했다.

서가회 예수회 신학원 경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너무 이성적이라 흥미가 떨어진다는 말을 듣는 천주교 내에도 미신 같은 게 있어 새 신부가 드리는 첫 미사에 참여하고 첫 강복을 받으면 불치병도 낫는다고 늘 만원사례였다. 경당 앞자리에는 대부분 서가회 회원들이었다. 얼마나 열심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이들인지 성전 신축 정도가 아니라 태산이라도 사놓으라면 금방 대령할 세였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

다른 게 아니라 당신의 영광 커주심 자체가 감사하다. 백성의 일원으로 불러주심에 감사해야겠지만 인간이 얼마나 어두워질 수 있는데, 우선은 스스로 태양 같아지심에 감사드린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높은 데서 호산나!

순간 전율 아니, 그 심으로 파고드는 내밀한 신비를 직면했다. 이런 게 직관인가 보다.

“너희는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하고 성체를 들어 올렸을 때였다. 꼭 제대 크기의 사가 빛기둥이 위로 섰던 것이다. 아니 직립했다는 것은 다르다, 직통했다! 서가회 성당 지붕을 뚫고 하늘도 뚫고 빛마저 뚫고 꿈에 보았던 그곳으로 일직선 통로가 뚫렸는데 제단에서의 말 한마디가 거기서도 들렸다. 내가 미살ㄹ 하지만 입으로 흉내 낼 뿐 주례는 통로 끝에 좌정하신 분이다. 환시는 아니고 눈으로 본 것도 아니지만 온몸이 들고 일어나 파악하는 직면이었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를 씻을 피다.”

내 음성이지만 원음은 십자가에서 발성되어 저 위까지 발설됨을 또 직면했다. 빛기둥 같은 경계엔 천사들마저도 조아리는 듯하다.

‘아, 이것이 미사라는 거구나!’

감당할 수 없는 짐이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로 감미로운 짐이 되기를…. 무능으로 감히 권능을 수여받았으니 이 고귀한 품위에 합당한 처신만으로 갚아드릴 것이요 쓸모없는 제 일체를 바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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