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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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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10) 날짜 2015.06.30 17:38
글쓴이 관리자 조회 663

“아, 그러면… 새 신부님이 한 말씀 하시겠습니다.”

첫 미사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나는 먼저 마레스카 주교님과 선배 신부님들, 그리고 은인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올렸다. 무언의 동작이었지만 회중석의 누군가는 벌써 훌쩍거린다.

“제가 사실…준비한 말들이 있었는데… 모두 잊어먹은 것 같아요. 가장 감사를 드려야 할 부모님도, 추천해 주신 아버지 신부님도… 계시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미사 중에 하나의 안목이 생겼습니다. 지상의 유한한 사물 안에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해 내는 안목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이 안목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과 행복하게 살다가 지금은 세상에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습니다. 임무가 완수되면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 그분의 영원한 생명에 복귀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에 온 사명은 무엇인가요? 이 지구라는 제단에 살면서 지구라는 제대에 살면서, 제2의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지상임무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조선만의 사제가 아니라 온 교회의 사제로 살려고 하겠습니다. 온 교회만의 사제가 아니라 만인의 사제로 살겠습니다. 만인만의 사제가 아니라 만물의 사제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당장은 조선이 저를 더 재촉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조선인 사제를 부르고 있어요. 저는 내일이라도 조선으로 향할 겁니다. 여러분과의 이별이라 여기지 않아요. 여러분은 여기에서 저는 조선에서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뿐입니다. 조선에서의 제 임무가 완수되는 날, 오늘 저를 사제로 키워주신 은인들의 보람이 클 줄 압니다. 내내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시길 빌겠어요. 저도 충실히 살겠습니다.“

엊그제 장가루에서처럼 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온 서가회 숙소는 이틀만에도 왠지 설어 보였다. 일 년 반이나 살던 방이지만 서품을 받은 후의 변화가 크게 다가왔을까.

책상에 앉아 촛불을 껐다. 캄캄하지만 그래도 눈을 감는다.

최양업 토마스

공부는 끝났다.

신부야

둥지를 떠날 때다.

그리고 날아라 사제야

훨훨 날아라.

정결의 날개를 펴고

겸손의 날개를 펴고

두 날개가 향하는 쪽

순명이 방향 잡아줄 것이니…

날아가자.

만인의 사제로서만 날다가

만물의 사제로서만 날다가

날다 떨어지는 곳이

나의 천국문이 되리니…

이제 둥지를 떠날 때다.

이제 겨레로 향할 때다.

날아가

사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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