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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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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가점, 아니 차쿠의 아침(5) 날짜 2016.04.05 18:34
글쓴이 관리자 조회 501

범 요한은 웃옷을 헤집어 목에서 목걸이 하나를 풀었다. 목걸이 십자고상인데 얼마나 작은지 꼭 여성용만 같다.

“저기 홍홍 씨….”

“….”

목걸이 받아주이소, 라는 말을 하려 했으나 갑작스런 행동이겠다 싶어 뒷말만 했다.

“이거 조선 신부님이 주신 것인데….”

“어머 예뻐라!”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

“조선 신부님이면, 당연 최양업 신부님이겠지요?”

범 요한이 예에… 그게… 하며 꾸물거리는 동안 여인의 눈은 값져 보이는 물건에만 빠져든다.

“와, 십자고상이라 장식품은 아니지만… 이 목걸이 진짜 예쁘다.”

“예… 헤….”

“조선 신부님? 그러면 우리 최양업 신부님?”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진다. 목걸이를 주고받으며 오갔던 얘기, 환푸에서의 일까지 죄 거내야 할지도 몰랐다.

“…홍홍 씨 가지이소. 다행이네예. 좋아하셔서…. 그라고 사실은… 홍홍 씨, 제 나이가… 너무… 많지예?”

“….”

홍홍은 대답 대신 목을 내밀더니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모아 쥐었다. 양업 신부님이 주셨다니 용기도 났지만 범 요한이 직접 걸어주어도 싫진 않았다. 오늘따라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가 조금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참이니까.

범 요한은 목걸이를 걸어주며 홍홍의 대답을 기다렸다. 목걸이가 그녀의 옷 속으로 들어갈 때 발그레해 가는 볼에 다시 양업의 얼굴이 겹쳐 보였지만 그이 때문이라면 불쾌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이 같은 거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리 숙모도 여덟 살 차인데?”

“예에….”

“그리고요, 엄마 너무 성화시면 저… 요한 씨 이야기할까 봐요?”

“예에?”

범 요한의 부리부리한 눈이 홍홍을 바로 보았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마른침이 꿀꺽 넘어간다.

“집에… 갈래요! 비 그쳐서 사람들 나올 텐데….”

차쿠 본당은 확실히 규모가 커져 있었다. 백가점 공소 시절엔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면 이제는 문전성시였다. 낯모르는 사이가 더 많을 정도로 주일 점심때면 위쪽 교우촌과 하류 쪽에서 오는 신자들로 번화가가 따로 없었다.

양업은 바쁜 성무 중에도 특히 한 달에 한 번 있는 봉성체를 고대했다. 거동이 힘든 병자에게 성체를 모셔다 드리는 일종의 방문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쓰러져 가는 집에 홀로 죽어가는 노인에게 성체를 영해드릴 때, 그이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성호를 그으면 사제로서의 희열이 있었다. 마지막 구원 가는 길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만 하면, 돌아올 때 펼쳐지는 산과 계곡이란 하늘로 올리는 대자연의 찬가만 같았다. 어떤 때 따라온 복사를 먼저 보내고 다른 행인이 없나를 살피다가 노래를 부른다.

온 세상 모든 만물 주 다스리신다.

저 산과 넓은 평원 또 하늘과 바다

큰 능력이신 주님 다 통치하시니

온 세상 백성들아 다 경배드리자.

온 세상 만물 다 주의 것

큰 영광 주께 드려라 영광

고음에서는 손까지 들어 올리며 한껏 기분을 내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 한 필의 말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신부니이임.”

서 빈첸시오였다. 이 사람은 얼마나 기마를 좋아하는지 ‘삼승’(삼보 이상 승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본당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데 얼마전 저녁에는 진흙투성이가 되어 안에도 못 들어오고 성당 문간에 서있었다. 미사 후 까닭을 들어보니 애마를 재촉하며 오던 중 굽은 길에서 발정 난 황소가 별안간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뿔을 들이대며 대드는데 덩치도 못지않은 게 질겁한 곳이 낭떠러지 쪽이었다. 말은 고꾸라졌고 위에 있던 사람이 10미터 이상을 날아 논바닥으로 떨어지는데 단순한 사람이 순간에도 그랬다는 것이다. ‘주님 납니다.’ 그러고는 진짜 붕 날아서 부드럽게 착지했는데 만약 난 죽었구나, 하며 경직되었다면 모르긴 해도 성치 않았을 것이라고. 완전히 맡기고 떨어지니 물 댄 논에 엉덩이부터 ‘ㄴ’자로 미끄러졌다고 한다.

양업은 ‘주님 납니다.’란 대목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었다.

“신부님 모시러 왔어요!”

“왜?”

“가보시면 압니다.”

싱글벙글, 뭔가 한바탕 판이 벌어진 듯하다.

“앞에 타세요!”

빈첸시오가 앞자리를 내준다. 작은 몽고말은 장정 둘이 타기에 미안했지만 이 잡종은 거뜬하기만 하다.

“뜁니다요. 찌아! 찌아!”

말의 옆구리를 차자 껑충껑충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소팔가자에서도 얻어 타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혼연일체가 되는지 모르지 않았다. 뛰는 동작에 박자만 맞춰주면 서로가 편한 것이다. 엇박자라도 난다면 말 등과 사람 엉덩이가 덜컹거려 낙마할 수 도 있다. 순식간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4년 전 대건과 밤 미역을 하던 백가점 시냇가 근처였다.

“신부님 어서 오세요!”

냇가에는 한 무리의 총각들이 물고기 매운탕을 퍼 담고 있었다. 이곳 물고기는 조선의 피라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소팔가자나 남방 물고기는 다른 데가 있다.

“이게 무슨 바람이야!”

“신부님께 백가점 아니 이젠 차쿠지, 차쿠 매운탕 대접해 드리려고 뭉쳤습니다.”

“와, 맛있겠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걸요?”

“본당신부님은?”

“어른들이랑 약속이 있으시대요.”

“어엉… 그럼 됐네, 자 솜씨 좀 볼까요?”

풋내기 총각들이 끓인 어설픈 맛이지만 개천에서 먹는 탕은 한입에 뚝딱 비워졌다. 기다렸다는 듯 냉큼 한 그릇을 더 담아준다.

“보좌 신부님이 오셔서 우리와 아동들은 정말 좋습니다!”

오래 계십시오! 진심으로 말하고 있음이니 이럴수록 정붙이지 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난 조선인이니… 조선에 들어가야지요.”

“그게 언제쯤인데요?”

“내일 모레, 아니면 내년 후년?”

“아요 신부님도….”

“아무튼 압록강이 어는 겨울이 되겠지!”

“엥? 이 천렵(川獵)이 마지막 될 수도 있네?”

“그러니 있을 때 잘해요. 와, 나도 왕년에 물고기 좀 잡았는데….”

“그래요? 우리 시합 한번 해봅시다. 10분 후에 누가 많이 잡았나?”

해볼까? 차쿠 본당 이십 대 주축 일곱 명은 각자 흩어져 물고기를 쫓았다. 붕어같이 느린 고기는 움키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가장 맛난 모래무지도 일단 모래 위의 지느러미만 발견하면 잠수를 해서라도 포획하기 어렵지 않다. 제일 까다로운 것이 피라미 수컷인데 칠월이 되면 옆구리에 붉은 띠가 생긴다고 붉어지라고 불렀다. 화려하기도 해서 일단 끌렸지만 잡는 기술이 더 필요한데, 발목까지 차는 얕은 물로 박수를 쳐가며 쫓으면 성직 급한 녀석은 아무 돌에나 붙어버린다. 이때 살금살금 다가가 양손으로 포위망을 좁히는 것이다.

냇가에서 자라는 소년들은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다. 한가로이 소 풀이나 뜯기다가 무료해지면 풀피리를 불어대고 그 할 일도 없어지면 물장구질 반 고기잡이 반, 망초대나 강아지풀을 길게 꺾어 아가미에서 주둥이로 꾀다 보면 긴 여름 해도 기울어 간다. 양업이 자란 청양에도 크지는 않지만 수량만은 넘쳐나는 도랑이 있었다. 맨손 물고기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현지 청년들의 솜씨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들이 다시 모였을 때는 한사발의 물고기가 바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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