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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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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가점, 아니 차쿠의 아침(7) 날짜 2016.04.05 18:36
글쓴이 관리자 조회 211

천주강생 1849년 12월 하순경

“메스트르 신부님은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최 신부! 난 어떡하라고?”

메스트르 신부가 양업 쪽을 돌아보며 언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스승이고 선배고 다 내려놓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얼마나 기다려 온 조선 입국의 기회인가, 1842년 조선 선교를 지원하고 8년이 되어가도록 이날만을 위해 대륙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안 된다고, 양업은 되는데 자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온 밀사 이냐시오는 쥐의 그것처럼 눈만 새카만 상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판단력에서 나오는 듯했다. 지난달 연락원들이 전해준 인상에다 어제 그 역시 빨간 복주머니와 흰 손수건을 비표로 들고 있었다.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페레올 주교님이 이번엔 최 신부님만 모셔오라 했습니다. 메스트르 신부님이 육로로 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요새 국경에선 방갓도 못 써요! 특명이 내렸는데 상복한 자부터 정중하게 그러나 더 철저히 검문하라는… 신부님은 때가 오면 서해로 모신다 했습니다.”

메스트르도 마침내 울화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면 난 어쩌란 말야 나는…. 중국에서 빙빙 돌다 늙어 죽으란 말야! 위험해도 같이 가면 안 될까? 내가 말야 8년 전부터 조선교구 신부야 내가!”

“안 됩니다.”

이냐시오는 단호했다. 페레올 주교의 지시만 따른다는 것이다.

“잡혀 죽어도 상관없다는데….”

양업은 스승의 이런 모습이 민망해서 어디에다 눈을 둘지 몰랐다.

“의미 없는 죽음입니다. 그런 서툰 순교 같은 걸랑은 우리 조선 교우들에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쥐 같던 눈빛이 매의 그것으로 더욱 날카로워졌다. 사실 메스트르 신부 같은 양인은 용케 압록강 감시망을 뚫은 뒤 아무리 상복을 한다 해도 골격부터가 달라 도대체 길을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국경 전역의 정착민에게 면세는 물론 장려금까지 지급하여 말이 주민이지 거의 정부의 눈이요 귀였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신고와 동시에 두둑한 포상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후일에라도 동네 앞으로 조정의 불이익이 유입됐다면 엄중한 문책 또한 소급해서 방아야 했다. 그래서 의주에서 정주까지 이삼일 사이의 행인들은 관복을 관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반 관헌이나 다름없다. 대건 같은 조선인조차 이 예비군 노릇하는 눈들 때문에 헛걸음했던 것이다. 때로 정규군보다 치명적인 것이 토박이 조직이다.

“내 모르는 것은 아니네만….”

“신부님, 제가 먼저 들어가서 모실 준비를 해볼게요. 죄송해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저만….”

“최 신부, 난 또 어디로 가나그래… 8년을 기다렸네, 8년을!”

양업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메스트르 신부의 손만 꼭 잡아드릴뿐이다. 메스트르의 눈에 물기 같은 것이 서렸다. 이 중년 사제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의 의미, 무얼 그렇게 조선에 들어가려 하는가. 거기 먼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박해자의 칼이거나 그를 피하려다 얻는 풍토병일 텐데…. 이는 선교사로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부름 받은 이상, 마저 걸어내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했다. 그 소명의식이 공감되어 오자 양업의 눈도 이냐시오의 매 같은 눈도 동시에 젖어들었다. 쌔애앵, 12월 말 백두산 쪽에서 내려 부는 삭풍이 살을 찌르는 단동 벌판이었다.

“메스트르 신부님도 제가 모시겠습니다. 서해안 지리도 익혀두겠습니다. 지금은 그만… 돌아가십시오!”

밀사는 에누리 없지만 의리 있게 약속했다.

“알았네.”

“신부님….”

최 신부! 메스트르와 양업은 부둥켜안았다. ‘멀지 않아 조선에서 꼭 만나요. 그때까지 안녕히…. 부디 몸조심하시게.’ 두 신부의 심장박동 소리는 이리 말하는 듯했다.

구련성은 단동에서 상류 쪽 강변로를 반 시간 남짓 걸어야했다. 조선의 방물장수 차림으로 흡사 지나는 행인이 쉬어 가는 척하며 조선 쪽을 본다.

“내일 밤… 11시가 될 겁니다. 최 신부님 저기, 초소 보이지요?”

“네… 위화도 쪽요.”

“또 북쪽으론 호산(狐疝) 맞은편 쪽에 있는 저 망루!”

“두 사이가 이백 미터쯤 되겠는데요.”

“바로 보셨습니다. 책임구역은 백 미터밖에 안 된단 얘깁니다.”

“밤엔 웬만한 소리까지 다 들리겠는데요? 13년 전 유학 나올땐 이리 빡빡하지 않았는데.”

“병오년에 배를 늘렸습니다. 그래도 여기가 좋습니다. 빨리 얼고 숨기에도 그렇고. 내일 밤 무사히 강을 건넌다면 모레 의주까지 글피나 그글피 정주에 도착하며, 입국 성공입니다.”

“알았어요, 이냐시오 씨.”

‘제대로 해야 한다. 이번엔 제대로!’

같은 시각 호산 깊숙이 숨어 망원경만 내밀고 양업 일행을 내려다보는 사내가 있다. 밀사로 보이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위화도 건너편 망대를 가리키다 호산 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일행은 분명 중간 대여섯 개의 섬들로 지날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입 모양 하나라도 놓지지 않으려는 사내. 양업 신부의 몸짓이라면 멀리서도 빠삭한, 5년 동안이나 길동무하지 않았던가? 범 요한이었다. 소팔가자에서 연분홍빛 꿈을 키워갈 그가 지금 차디찬 국경, 수비대의 감시로 오싹하기까지 한 산기슭에서 양업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최 신부님이 무탈해 보이는 것이 기뻤다. 마음 같아선 ‘신부님!’하고 달려가 얼싸안고 싶다. 자기 탓에 왕툰에서 당한 폭행보다도 고것 천 요셉이란 녀석 때문에 있었던 홍홍과의 오해를 생각하면 당장 그 얘기부터 보퉁이로 풀어야 했다. 천 요셉 고 녀석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 마적부다 더한 치들…. 일의 전모가 밝혀진 것도 최근 소팔가자 전 신부가 손을 써 녀석과 아편업자들과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준 다음이라 들었다. 3년전 완푸 대연관의 전다다는 이미 장춘까지 손을 대 범 요한부터 수소문하다 천주교 직원이란 소리에는 일단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뱀보다 징글징글한 아큐 새끼, 어찌나 살 떨리던지 자기를 소팔가자에서 떼어낼 속셈으로 홍홍과 양업 부제의 삼각관계를 찔러봤다는 것이다. 이 짓의 앞잡이로 누치코치가 빤한 천 요셉이 이용되었을 줄이야. 녀석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양업 신부님한테 죄송하다고 울어버릴 적엔 자기도 따라 울고 싶었다. 그때 오해 때문에 막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멀리 들릴 정도로 신부님, 소리치며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아니다. 지금은 몫을 해내야 한다. 제대로 해야 한다. 아무도, 도움받는 신부님조차 모르게…. 그러려면 나타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약속을, 그 약속을 잘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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