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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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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가점, 아니 차쿠의 아침(9) 날짜 2016.04.05 18:39
글쓴이 관리자 조회 859

“전 신부님, 다녀올 데가 있심더. 교회 일이라 카는 것만 알아주이소.”

이튿날 범 요한은 신학교 사무를 서둘러 정리했다. 동료 사환 천 요셉은 갑자기 이럴 수 있냐고 전에 없이 쌍심지를 켜다가는 지도 구린 데가 있는지 “사람 하나 뜬다고 안 돌아갈 학교는 아니지, 일없슴다.”하고 얼버무렸다. 교장 신분에게도 사유서를 냈다. 봄 학기 전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니 꼭 허락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급한 교무는 마감됐다며 허락이 떨어졌을 때, 범 요한은 곧장 소팔가자 주임인 전 신부를 찾아왔던 것이다. 누구보다 홍홀과 자신의 사정에 훤한 분이었다.

“자네 상을 보니 나쁜 짓 하러 가는 건 아니고.”

“그러데 신부님….”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말해보드래.”

“….”

“….”

이 사람이? 하면서 쳐다보는 전 신부에게 그랬다. 이 얘긴 홍홍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됩니데이. 홍홍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 안 되니까. 그러나 만약에… 내년 3월 초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만의 하나 그래되만… 신부님이 홍홍을 불러다가 말해주이소. 범 요한을 포기하라고…. 물론 어떡하든 다시 오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제가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신부님이 나서서 혼처를 찾아주이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넙죽 큰절까지 올렸다.

전 신부도 더는 묻지 않았다. 물어 답해줄 위인이 아니거니와 울음이라도 터뜨릴 낌새였다. 잠시 십자고상 쪽을 보면서 헛기침이라도 하는데 범 요한이 무릎을 꿇어왔다.

“강복 주이소!”

“전능하신 하늘께서는 이분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꼭입니더. 꼭!”

“알았드래, 범 요한.”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고 들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올 때가 있으면 갈 때가 있다. 이제 소팔가자를 떠나야 할 때이다.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장담 못할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압록강변에 얼씬거렸다간 즉결 사형에 처해지거나 노예로 팔려가는 변경법(?境法)을 모르지 않았다. 조선의 두 성직자에게 노상 그런 이야기만 들었었다.

그러나 저 홍홍을 어쩌란 말인가. 마지막 밤은 그래서 그녀와 함께 온밤을 지새우고팠다. 그러나 걸음은 어느새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대로 해보자 이번엔 제대로, 라는 다짐들이 무슨 구령처럼 발을 맞추고 있었다. ‘하늘이시여 홍홍을 위해 기도합니더. 제가 그녀 앞에 꼭 다시 설 수 있게 해주시라예. 또 이 밤에… 그녀에게 가지 않음을 알아주셔야 합니다. 당신을 믿기 때문입니더. 더 잘 위로해 주시리란 것을.’ 기실 일의 전모를 말해버리면 얼마나 걱정할 것인가, 이었거나. 그래도… 한때는 신학생 출신이었다. 혼전의 남녀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엄격히 안다. 이런 밤을 같이 보낸다면 아무래도 충동적일 수밖에. ‘조금이라도 흠낼 수는 없다.’이었거나. 아니면 스스로도 모를 깊이에서 올라온 직성(直星)이 그래 풀렸거나. 홍홍을 그저 보고 싶게까지만 하도록 했다.

“홍홍 씨, 걱정 마이소, 봄보다 먼저 올 테니.”

홍홍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심상치 않은 게 이 남자가 무슨 결심이라도 한 사람 같다, 하면서도 당장엔 빤한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안 가면… 안 되냐니까요?”

금방 다녀올 길이니 들어가라고 말했는데도 홍홍은 합륭까지 사십여 리를 내리 쫓아 나왔다. 여름내 무성하던 가로수들도 만추의 쓸쓸함 앞에선 낙엽째로 뒹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짜이찌엔… 먼 길이니 기도해 주이소.”

“난 기도할 줄 몰라요. 그러니 알아서 조심 또 조심이나 하세요.”

“새침해지니 홍홍 씨다운데예?”

“아니 정말 난 몰라… 누구 땜에 못산다니까.”

홍홍이 작은 손으로 범 요한의 가슴을 두드려댄다. 그러다 주변을 살피더니 상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목 부근의 속옷을 헤쳐 십자고상 목걸이를 빼내어 그의 목에다 걸어준다. 범 요한이 괜찮심더 말하려다 보드라운 손길에 머뭇거려 버렸다.

“….”

“고상이 지켜줄 거예요. 돌아와서 다시 걸어줘요.”

“알겠심더….”

귓속말로나 했을 것이다. 목걸이를 걸어주던 그녀의 손이 그대로 목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범 요한도 그녀를 안았다. 두꺼운 옷으로도 연인의 체온이 전해왔다. 그 부드러운 부분도 어머니처럼 따뜻하게만 다가왔다. 처음 껴안아보는 이에게 안녕이라니, 나는 뭐가 이렇노…. 그래도 이번엔 제대로 해야 한다. 천장지구 이대로 있고 싶으나 그녀를 안은 손을 풀어야 한다, 제대로 해야 한다.

“퍼뜩 돌아올 텐에예, 뭐….”

“잘 다녀오세요.”

“짜이찌엔.”

“….”

손직으로 대답을 하던 홍홍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게 보였다. 그래도 내친걸음을 돌릴 수는 없는 일, 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그녀의 걱정만 커진다.

“요한 씨.”

“요한 씨!”

두 번째는 자기도 모르게 획 이미 몸이 돌아가 있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요한 씨!”

그래요… 나는, 나는 당신의 그것에 더하기 두 배…. 뛰어와 와락 안기려던 홍홍이 ‘들어가, 어이 들어가오.’하는 범 요한의 손짓에 멈춰 섰다. 범 요한은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함박웃음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대로 해보였다. ‘어이 가소, 어이 들어가이소.’ 그렇게 손짓에 손짓을 하며 소팔가자를 떠나왔고 사실은… 양업 몰래 그의 차쿠에도 들렀었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재촉해 이 단동까지 와있는 범 요한이었다.

지난 일들을 회상하던 범 요한이 목덜미 속에 얼음장 같은 손을 집어넣었다. 앙증맞게 잡히는 목걸이가 홍홍처럼 따스하다. 그러나 바로 손을 빼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일에 집중하자 제대로, 하며 이를 악문다. ‘내가 양업 신부 일행이라면 이 12월 말에 어디로 조선 입국을 시도하겠는가?’ 단동 앞은 얼지도 않으므로 여기 호산밖엔 달리 없다. 어떻게 해야 잘 도울 수 있을가. 당사자도 몰라야 만의 하나 잘못되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어쨌든 제대로 해내야 한다.’

지난 한 주간 촉각을 곤두세워 양업 일행을 기다렸다. 단동 임시 시장은 크지 않은 편이라 일행의 도착은 금시 포착되었는데 바로 그저께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여기 호산 깊은 숲 망원경 속에는, 조선 방물장수 차림으로 흡사 지나는 행인이 쉬어 가는 척 조선 쪽을 보고 있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양업임에 틀림없는 얼굴, 그 입 모양 하나까지 확실히 따라잡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내일 밤일 듯싶다. 지금부터 철저히 미행하자. 그러다 가장 필요할 때 나서자. 내가 우찌 되더라도… 이번엔 하고야 말 끼라.’

다시 목걸이를 잡는 손에 심이 들어갔다. 몇 가지 방책도 세워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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