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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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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철상(1781~1801 가롤로) 날짜 2005.04.26 12:41
글쓴이 관리자 조회 370
정철상(가롤로)은 경기도 광주 마재(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 살던 유명한 나주 정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명도회(明道會)회장으로서 대단한 할약을 한 후,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에 순교한 정약종(아우구스띠노)이었다. 또한 유명한 교우였던 정약용(요한)과 정약전이 가롤로의 삼촌들이었으며, 훗날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인 유소사(체칠리아)와 정하상(바오로), 정정혜(엘리사벳) 등도 그의 계모와 이복동생들이었다.
어려서 모친을 여윈 가롤로는 부친의 말씀과 모범으로 천주교 신앙을 배워 입교한 후 교리의 본분을 지키는 생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부친의 열성과 집안의 종교적 환경 속에서 깊은 신앙심을 키운 그는 훌륭한 가문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세속의 명예를 업신여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혼한 후에도 온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진심으로 그분을 사랑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순교의 열망도 지니게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가롤로의 부친과 삼촌은 곧 박해의 대상자로 체포되어 금부의 옥에 갇혔다. 그는 집안의 어른들이 갇혀 있는 옥 근처에 머무르면서 그들을 위하여 심부름도 하고, 또 옥중 생활을 위로하기에 노력하였다.
이렇게 생활하고 있던 중에 관리들은 그에게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어서 주문모 신부의 사정을 아는 대로 이야기할 것과, 신부가 어디에 피신하여 있는지를 고발하라고 독촉하면서, 그것이 부친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유혹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였던 그에게 이러한 유혹은 매우 자극적이었으나, 이미 신앙의 진실로 가득 차 있던 그의 마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관리들이 그의 앞에서 부친과 삼촌에게 새로운 형벌을 가하여도, 신부나 천주교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고발의 말은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생활의 어려움과 정신적인 시련을 이겨내면서 가롤로는 여전히 옥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친이 사형 선고를 받고 참수를 당한 그날, 국청의 분부로 체포된 가롤로는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약함을 나타내지 않고 오직 부친의 뒤를 따라 영광된 순교를 주님에게 바치려는 의사만을 표현하였다. 한 달 정도 옥에 갇혀 있으면서 그는 음식을 장만하기 위하여 짚신을 삼기도 하였다고 한다.
마침내 사형 선고를 집행하는 날이 되자, 가롤로는 형장으로 나아가 기쁜 마음으로 참수를 당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5월 14일(음력 4월 2일)로, 그의 나이는 20세 가랑이었다. 훗날 그의 시체는 부친의 시체와 함께 집안 식구들에 의하여 고향 마재에 묻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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