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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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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도기(1743~1798 바오로)-1 날짜 2005.05.27 12:01
글쓴이 관리자 조회 393
1743년(영조 19년) 충청도 청양 고을에서 태어난 이도기 바오로는 어려서부터 덕행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비록 그가 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을 익히고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모두 외교인을 입교시키는데 사용하였다. 이러한 그의 열성은 신자들을 박해하려는 자들의 주의를 끌게 되어 이사를 대 여섯 번이나 해야만 했는데, 그가 피해 가는 곳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주교회가 형성되곤 하였다.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던 바오로는 마침내 정산 고을(현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어떤 옹기점에서 자리잡고 장사를 하면서 살아갔다. 그런데 그 곳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외교인이었으므로 그를 몹시 학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이 일이 크게 성공하여 잠깐 사이에 온 마을이 입교하게 되었다.
당시 공주의 충청감사 한용화는 도내의 모든 수령들에게 명령하여 천주교인들을 없애버리도록 하였다. 이러한 감사의 명령이 내렸을 때 바오로의 근처에 살던 金이라는 외교인이 그를 천주교인들의 두목으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의 아내는 겁이 나서 그에게 도망하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또 그를 신임하고 있는 신입교우들을 저버릴 수 없다고 하여 아내의 말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나서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감추고 체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797년(정조 21년) 6월 8일, 그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장한 포졸들이 나타나 그가 집에 있는가를 물었다. 바오로는 즉시 그들을 집안으로 맞아들인 다음, 그를 찾아온 까닭을 물었다. 그들은 말하길 "우리는 도망친 관노(官奴)를 찾으러 나온 관비이다. 네가 책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으로 우리의 범인 색출에 다소간 도움을 얻으려고 그것을 보러 왔다"고 하였다.
당시 조선에서 쓰는 중국 책력(冊曆)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한 미신의 말이 들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바오로는 "책력이 있긴 합니다만 거기에는 절기의 바뀜만이 적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책력을 가져다주었다.
포졸들의 두목은 그것을 자기에게 읽어 달라고 하였다. 그가 한문을 읽지 못한다고 하자, 포졸 두목은 "그러면 너는 천주교의 책밖에는 읽을 줄 모른단 말이냐?"라고 하며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0여명의 포졸들은 그를 묶고 집을 뒤져 십자고상과 몇 권의 책을 찾아냈다.
그런 다음 바오로를 근처의 숲 속으로 끌고 가 매질을 하여 신부가 숨어 있는 곳과 함께 생활하던 천주교인들의 거처를 자백시키려고 하여씅나 헛일이었다.
밤이 되자 그들을 바오로와 함께 체포된 다른 교우들을 초라한 주막으로 끌고 갔다. 주막 주인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들을 괴롭게 하는 결박을 늦추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읍내에 이르러 그와 동료들은 또 다시 쇠사슬로 결박되었다.
관청에 이르자 관장은 십자고상과 책들을 살펴보고 나서 잡혀온 사람들을 출두시키고 우선 바오로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 나느냐?" "처음에는 청양에서 살앗는데 지금은 정산에 삽니다." "누가 너를 가르쳤으며, 너의 제자는 누구냐?" "저는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습니다." "너는 죽어 마땅한 놈이다.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다면 이 책들과 그림은 어디서 났다는 말이냐?" 바오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손발을 쇠사슬로 결박당하고 다시 옥으로 끌려갔다. 그의 목에는 큰칼이 채워져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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