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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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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현우(1754~1801 마태오) 날짜 2005.04.01 10:29
글쓴이 관리자 조회 497
김현우 마태오는 조선교회의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토마으)의 일곱째 동생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조선에 유입된 천주교 신앙을 일찍 받아들인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맏형 토마스의 가르침을 받은 마태오는 곧 교리를 이해하고 신봉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넷째형이었던 김이우(바르나바)도 열성적인 천주교인으로서 신유박해 중에 체포되어 포청에서 매를 맞아 순교한 사람이었다.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마태오가 어떻게 신심생활을 하였는지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형 토마스의 열성적인 신앙생활과 천주교의 신앙 전파를 위하여 활동하였던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함께 생활하였던 마태오 역시 이러한 형을 본받아 교릴의 본분을 지키는데 충실하였을 것이라 추축할 수가 있다. 또한 이러한 추측은 훗날 그의 신앙활동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된다.
맏형이 유배지에서 순교한 후, 마태오는 집안에서 교리를 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여러 교우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교회의 일을 돌보았다. 그리하여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후로는 최필제(베드로), 이용검, 손경뉸, 현계흠 등과 함께 신부를 모시면서 매월 7일에는 첨례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하였으며, 모든 남녀들과 한곳에 모여 교회서적을 읽고 교리를 강론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주문모 신부가 순교하고 이와 관련하여 박해가 점점 더 심하여 가던 중에, 마태오는 여러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때 찬란한 십자가가 그의 앞에 나타나 옥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고 한다.
포청과 형조를 거치면서 그는 주문모 신부에 관한 여거 가지 신문을 당하고 교우들과의 활동을 고백하도록 강요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형벌을 참아내면서 아무런 사실도 자백하지 않았고, 더욱이 배교하거나 신앙심을 잃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러 남녀 교우들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를 당하였는데, 때는 1801년 7월 3일(음력 5월 2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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