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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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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관검(1767~1801) 날짜 2005.04.06 16:18
글쓴이 관리자 조회 456
유관검은 전라도 지방의 유명한 신자였던 유항검(아우구스띠노)의 동생으로 전주 지방의 초남이(현, 전주 북서쪽의 조남)에서 출생하였다. 본래 그의 집안은 지체가 그다지 높지 않은 양반이었으나 많은 재산으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유학을 공부하였던 그는, 천주교가 한창 전파되고 있던 1790년(정조 14년)에 이르러 청주에 살던 민도라는 교우에게서 처음으로 천주교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진산(珍山)지방에 살던 윤지충과 왕래하면서 교리를 강론하기도 하였고, 형인 아우구스띠노도 이 시기에 입교함으로써 그의 집안 전체에 천주교 신앙이 널리 전파되었다.
입교한 후 유관검은 교회의 지도층에 있던 여러 교우들과 왕래하면서 교회의 일을 돌보면서 집안 사람들과 함께 신주를 없애고 제사를 폐하는 등, 교리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시 조선 교우들은 스스로 교계 제도를 설정하여 성직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들이 동정을 지키지 못하여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결국 이러한 교계 제도를 폐지한 교우들은 이제 선교사를 영입하기 위하여 힘쓰게 되었다. 이에 유관검은 형 아우구스띠노와 함께 북경을 왕래하는 교우들을 위하여 비용을 마련하고, 전교 활동을 하면서 선교사가 입국한 후의 계획을 세우는 일에도 협력하였다.
그리하여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였을 때는 형이 신부를 집으로 모시자, 그도 함께 신부를 보살펴 드리면서 교리를 배우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는 서양 선박을 불러들여 조정과 교섭을 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얻어내고자 하는 비밀 계획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조정에서는 전라도 지방의 천주교인 중 우선 유관검의 집안을 지목하였다. 음력 3월에 형인 아우구스띠노의 집안 사람들과 함께 체포된 유관검은, 즉시 전라도 감사가 있는 전주 감영으로 압송다아하였다. 이때 그의 집에서는 윤지헌(프란치스꼬), 한정흠(스다니슬라오), 이우집, 김유산(토마스)등의 교우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체포되어 유관검의 가족과 마찬가지로 압송되는 몸이 되었다.
감사는 먼저 아우구스띠노를 신문한 후, 관검을 향하여 "천주교를 누구한테 배웠으며, 또 동료들은 누구냐? 교회 서적을 내놓고 그 동안의 계획을 이야기하가"고 하며 가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러한 신문과 형벌이 계속되자, 그는 마음 약하게도 배교하여 지난 일을 밀고하고 말았다. 북경에 왕래하던 교우들의 이름과 주문모 신부를 모신 경위와 그 뒤에서 자금을 댄 교우들, 그리고 서양 선박을 초빙하려던 계획 등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또한 형 아우구스띠노의 행적도 그대로 말함으로써 일을 확대시키게 되었다.
감사는 유관검의 밀고에 따라 모든 것을 확신하고 조정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보고를 받는 즉시 이미 압송된 아우구스띠노를 포함하여 일행을 모두 포청으로 압송하도록 하였다. 관검은 동료들과 함께 포청과 형조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그가 전주 감영에서 밀고한 사실에 대하여 신문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죄가 천주교인으로서 국가를 해롭게 하는 음모에 가담한 것이었기 때문에 판결은 오랜 시일을 끌게 되었다.
조정의 박해자들은 이 일을 계기로 자신들의 정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하여 일을 확디시키고자 하였으며, 이에 10월 18일(음력 9월 11일)의 결안에서 그들을 역적으로 규정짓기에 이르렀다. 관검도 역시 국가에서 금하는 종교를 믿어 윤리를 파괴하고, 외국인 신부의 입국과 서양 선박의 초빙에 관여하였다는 죄로 능지처참(陵遲處斬)의 판결을 받았다.
그리하여 즉시 전주로 다시 이송되어 죽음을 당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10월 24일(음력 9월 17일)로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비록 그가 이전에 배교를 함으로써 교우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는 하더라도, 그간 뉘우칠 기회도 많았으며 또 죽음에 이르러 참회함으로써 주님께 용서를 빌었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그의 아내였던 이육회는 유배형을 받았다가 1802년 1월 31일(음력 1801년 12월 28일)에 조카인 유중성(마태오)과 조카며느리 이순이(누갈다) 등과 함께 참수를 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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