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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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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항검(1756~1801 아우구스띠노)-2 날짜 2005.04.13 11:41
글쓴이 관리자 조회 355
"제가 비용을 댄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선비들은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서양의 서적을 연구하면서 농공상 모두를 진흥시켜 산업에 힘쓰고, 진보된 학문이나 기술을 배워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하자는 신학풍에 가담하였었는바, 그 신학풍이 근본이 되고 있는 천주교를 또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천주학은 이론적인 학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경천애인(敬天愛人) 하고 권선 피악함을 가으치는 것입니다. 우리 동양의 성현들이 말씀하신 '천(天)'과 '상제'를 철저히 연구한바, 상제가 곧 천주인 것을 알게 되고 그 상제와 우리 인간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서는 삼강 오륜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지킬 윤리 도덕은 삼강오륜만 가지고는 부족하며, 이에 더 완전하고 실질적인 천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구국 제민의 지름길이 된다 생각하고 이를 전파하려고 한 것입니다. 천자국이니 사대주의니 대국이니 속국이니 하는 중국의 유학적 예법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정학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이 변해 감에 따라 다른 외국의 학문과 기술과 문물이 들어오는데, 거기에 바른 비판을 가해서 어느 것이 구국 제민의 도가 되는지 알라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우리 학자들이 이 새로운 구국 제민의 도를 좀더 자세히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을 마련함에, 저의 살림이 좀 넉넉하므로 많이 부담하였을 뿐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다음, 계속하여 서양과의 교섭이 필요함을 설명하였다.
"소위 서양의 선박을 초빙하여 통상을 맺으려는 것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는 외세 의존이 아닙니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한갓 사사로운 당파에만 급급하여 상대방을 타도하기에 골몰할 뿐, 학문이나 도의 진가를 판단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금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백성을 편히 살지 못하게 하는 위정자들을 그대로 버려 두어야 하겠습니까? 그들을 선도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우리나라보다 앞선 나라와 교섭하여 나라를 부강케 해야 할 것입니다. 한때 우리 교인 중 몇몇이 북경에 있는 주교를 통하여 통상 사절단과 함께 외국의 선비, 기술자들을 대동하고 오도록 포르투갈 여왕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일을 모역 행위라고 오인한 듯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저희들의 진의를 상세히 아뢴 것뿐이니, 그대로 기록하셔서 조정에 올리시길 바랍니다."
감사는 보통 죄인 같았으면 이런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억압하여 원하는 진술을 받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우구스띠노의 위치를 만만히 보지 않고 자세히 그의 설명을 들었다. 다만 감사의 직책상 그대로 아우구스띠노를 중앙으로 압송할 수 없어 30대의 곤장을 치고는,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교를 띁내 고집하겠느냐?"
수천 냥의 자금을 부담한 것이 사실이냐? 그리고 연루된 도당은 누구냐?"는 등의 질문을 하였다. 아우구스띠노는 곤장에 정신을 잃고 엉겁결에 성교는 구태여 고집하지 않겠지만, 서양 선박을 초빙할 때의 주장자는 황사영이었고, 그와 동조한 몇몇이 있었으나 지금 그 이름을 기억치 못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아우구스띠노를 심문한 후, 감사는 필시 연루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남은 가족들과 집안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을 잡아다 심문토록 하였다. 그리고 나서 아우구스띠노를 주범이라 생각하고 중앙으로 압송하였다.
당시 전주의 감사가 함께 송달한 장계에는 "도내 사학 죄인 유항검은 요사 망탄하여 스스로 윤기를 끊고 무리를 번창케 하였습니다. 그는 주문모를 아비로 섬기고 그를 영접하여 려러 날 머물게 했으며, 그의 서찰을 받아 북경 천주교에 보내어 상본과 성유를 가져왔다 합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모의하기를, 신부 한 사람으로서는 그 세력의 확장이 어려우므로 서양의 큰배들을 들여와 천주교를 이 나라에 널리 전파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교의 세력이 여러 군과 읍에 깊이 퍼져서 그 수가 매우 많으니 청하옵건데 이를 엄벌하옵소서"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로 압송된 아우구스띠노는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았는데, 끝까지 "나라를 위태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양 선박을 초청하려는 것이 아니고, 서양과 우리나라가 친교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문명의 혜택을 받아, 우리도 남과 같이 잘 살아갈 방도를 위하려고 한 것이며, 이렇게 되면 정부에서도 천주교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탄압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때문입니다"라고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러나 완고하고 고루한 유학사상에 젖은 위정자들이 그러한 말을 곧이 들을 리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정에서는 유 아우구스띠노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그 판결문은, "죄인 유항검은 사학에 미혹하여 이를 강습하고, 주문모를 신부로 받들며, 신주를 묻고 제사를 폐하는 등 그 죄가 너무 커서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이가환, 이승훈, 권일신 등과 함께 외국에 비밀히 상통하여 큰배를 청하고 우리나라를 위협하려 하였으니, 이는 만 번 죽어도 부곡한 대역부도의 조이라, 이에 그 죄로써 결안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김대비의 주장대로 호남인들이 천주교를 신봉하지 못하도로록 경계하기 위하여 전주 감영으로 다시 보내져, 전주성 내에서 참수되고 능지처참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우구스띠노는 자신의 피로 죄를 씻는 은총을 얻고, 10월 24일 순교하였으니, 이때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한때 아우구스띠노가 곤장을 맞고 일시적으로 배교하였다고는 하나, 그간 참회할 시간도 많았고, 판결문에서도 천주교인으로서 국가의 존망릉 위태롭게 하였다고 단정하였으며, 평소 그가 교회를 위하여 이룩한 공로나 열심한 신앙,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가 순교하기 전에 그에 대한 은총의 기도가 있었으니, 누국도 그의 순교를 절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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