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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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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순이(1781~1802 루갈다)-2 날짜 2005.04.25 14:31
글쓴이 관리자 조회 459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그녀는 신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동정은 물론, 일반적인 신앙생활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한국 사회 속에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부부로서 동정을 지키기 위한 인간적인 고뇌와 이에 대비된 출중한 신앙생활은 이 수기를 통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순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년 원하던 바 뜻과 같이 이루어지니 심곡(마음의 곡적)을 말하온 즉, 저도 또한 어릴 때 원한 바라 우리 모임 양인의 소원을 천주 윤허하사 특별하신 총은이라 피차에 감사함이 죽기로써 보은이라... 유감이 자심하여 마음이 두려움이 여복박빙(얼음장이 밟는 것 같은)이요, 여인심연(깊은 못에 온 것 같음)이라. 우르러 이길 바를 간구간구하옵더니, 총으로 겨우겨우 면하여 아이(동정)을 보전하여 피차에 유심함이 견여금석(堅如金石)이며,신애지정은 중여태양이라," 이와 같이 이순이의 서간을 통행서 우리는 그녀의 신심.애덕.우애, 그리고 천주께 대한 천상덕을 알 수 있다. 도한 이를 통하여 그녀의 신앙이 어떠한 광신적인 신앙이 아니라 인격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덕행을 겸비한 신앙 생활이며, 바로 이러한 기반 위에서 순교할 수 있었다는 명확한 인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순이가 생각하고 있는 죽음, 즉 순교함에 대한 가치관도 옥중 수기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종말론적인 내세관으로서, 이러한 전총적인 가톨릭 사상은 초기 교회의 디오그네스의 편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는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쓴 이순이의 수기 내용을 일부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속에 감춘 설음(설움)이 자연 잊히지고(잊어지고) 가지록(갈수록) 총은이라. 신락이 도도하니 만사 무심하고 거리킨(마음에 걸리는)엄이 없사오대(없지만) 오히려 권권(잊지못함_한바 옥중의 일인(옥에 든 한 사람, 즉 자기 남편)이다. 못 잊자움은 다름이 아니라 집에 있을 때 소회(마음에 먹은 생각)를 비치어서(나타내어) 전일편(아주 한 패가 됨)을 이뤄(되어) 동일 동사하자 하였더니 인편이 마땅찮고 오히려 자저(머뭇거리다)하여 미처(아직) 전치(전하지) 못하였더니 자취(발걸음)을 절금(절대로 금하다)하니, 통할 길이 없어 잠잠히 구하고 원하고 바라는 바 위주치명하여 동일 동사하자더니 상주의 총은이 저러실 줄(저러할줄) 알았으랴? ...중략... 신신 부탁하매 동일 동사하자더라. 요한(자기 나편)에게 전하소서. 재삼 부탁하고 손을 나눠 돌아서니 남은바 네 사람이 처져(머물러 있어) 의지하여 주우만 바라더니 일각이 겨우 부음이 들려오니 인정의 참절함은 오히려 둘때 되고 요한의 수복함은 경희하오나 오호통재라. 요한이 어찌 되었는고 생각이 미치매 억만 칼이 흉즁을 써는 듯 심신이 지향이 없어 반상이 지난 후에 이도(이것도) 또한 총은인지 마음이 정하이대(진정되기를) 전공이 없잖으나 혈마(설마) 아주 버리시랴? 마음이 줄어지나 일념이 권권하여 오히려 염(걱정)아니니 종숙(시사촌 동생)께 몯자오니(물으니) 먼저 정지(마음을 단단히 먹다)하라 하시더라. 집에서 기변하대 신체를 내어다가 입었던 옷을 보니 기매(요한이 아내를 누이라고 함)에게 부쳤으대(부치기를) '권면하고 위로하니 천국에 가 다시 보자'하고 정지(서로 동정지킬 뜻을 정한 것)한 4년이라 염려를 부렸아오며(걱정하다) 저의 평생 행위를 살피건대 구태여(공연히) 애린할 일이 없고, 속태(세속 태도) 벗어나 족히 노성타도 할 만하고 흔근 열애 성실함은 항복함이 되는지라(그렇다고 인등되다)." 이러한 사상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교부들의 사상과 동일한 것으로서 순교의 죽음은 바로 '의자'와 '의인'과 '천주 성인'들의 대열에 참여하는 길로서 세상 임금의 총애를 초월하는 천지 대군의 총애를 입는 영광의 길이며, 절대로 슬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곧 진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이순이의 신앙 속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관비 생활을 면하고자 했던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고, 달레 신부 역시 이에 대하여 "첫 번째 판결이 역적의 자식들에 대한 법률 규정에 의하여 내려졌다면, 이 새 재판은 천주교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를 고백하는 데 있어서 꾸준하였다는 것밖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없으니, 그들의 순교의 영광은 완전히 아무 손상도 받지 않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1802년 1월 31일(음력 1801년 12월 28일) 형장에 끌려 나갔다. 망나니가 관례대로 옷을 벗기려 하자, 그녀는 정숙하고 품위 있게 몇 마디 물리치고 나서, 스스로 웃옷을 벗고 손을 묶지도 못하게 하고 조용히 머리를 도끼 밑으로 놓고 참수를 당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20세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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