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회원가입  |  로그인  |  사이트맵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일반자료실
일반자료실
제목 김건순(1775~1801 요사팟)-1 날짜 2005.03.08 11:40
글쓴이 관리자 조회 349
김건순(요사팟)은 당시 천주교 전파를 반대하는 노론 안동 김씨 집안의 자손이었다. 1776년(영조 52년)에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경기도 여주에 있던 종가 집안에 양자로 감으로써 벼슬과 명예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요사팟은 어려서부터 지능이 뛰어나고, 조숙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황사영의 백서에 의하면 그는 아홉 살 때부터 죽지 않는 길을 열어 준다고 하는 노자(老子)의 도에 전념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북경의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지은 입문서가 있었는데, 요사팟은 열 살인가 열두 살때에 그 책을 매우 즐겨 읽었고, 오래지 않아 천당 지옥과 그 존재의 필요성과 그 책에 다루어진 다른 여러 가지 문제를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대신 지위에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성장하면서 그는 여러 학문을 폭넓게 연구하여, 경서(經書). 역사. 불교와 노자의 도리. 의술. 음양서. 병서에까지 배우고 익히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그의 재질을 보여 줄 기회를 얻었다. 그가 18세 되던해에 양부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당시 조선에서는 법적인 장례가 송(宋)대의 의식을 따라 행하여졌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의심을 품은 요사팟은 그때 아직 천주교인이 되지 않았던 권철신(암브로시오)에게 문의하였고 여기에서 어떤 예식들은 경서에 근거를 두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는 그것들을 그릇된 것이라고 배척하여 아버지의 장례 예식에서 행하지 않았다. 선비들은 이렇게 풍습을 어기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 맹렬히 항의하였다. 요사팟은 곧 자기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하여 긴 변호문을 썼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인용과 증거가 대단히 조리있게 쓰여져, 그때 나라의 첫째 가는 학자로 통하던 이가환조차도 자기는 그와 비슷한것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요사팟은 집에 있을 때에 효성이 두터웠고 매우 점잖았으며, 또한 성실과 너그러움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집안이 부유하므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을 위해 희사하는 데 썼으며, 자기 자신의 옷과 음식에 대하여는 아주 필요한 것만으로 한정하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서울에 갈 때면 그가 머무르는 집 앞에 교군과 말이 몰려들었는데, 누구나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나 보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지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이중배(마르티노)와 몇몇 다른 친구와 함께 바다를 건너 북경에 가서 서양 학자들에게 문의하고, 그들에게서 유익한 지식을 많이 얻어다가 그것을 전파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때까지 요사팟은 천주교에 대하여 극히 간접적으로 밖에는 듣지 못하여 정확한 개념이 없었다. 강이천을 포함한 몇몇 친구와 협력하여 그는 천주교에서 마술의 비밀과 비상한 비방을 얻을 줄로 생각하고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 강이천이란 사람은 마음씨가 고약하고 꾀가 많은 소북의 이름있는 선비였다. 머지 않아 왕조가 바뀌리라는 생각을 하고, 그는 기묘한 비방을 탐구하고 마술을 연구하여 성공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였다.
요사팟은 이 사람과 그의 내심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모르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과 실제로 복음의 도리를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진실한 희망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집안이 속하여 있는 노론에서는 고명한 천주교인을 볼 수 없었으므로 남인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하고, 권철신(암브로시오)에게 사람을 보내어 종교 문제에 관한 토론을 하자고 청하였다. 권철신은 기꺼이 요사팟의 말에 동의하였다. 다만 두 잡안의 세습적인 적대 관계로 인해 공공연하게 만날 수가 없었으므로 그가 밤에 권철신을 찾아갔다.
처음 몇 번 만나 보고 나서 그는 하느님의 존재와 삼위일체의 뜻을 어렵지 않게 믿게 되었다. 그러나 강생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그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놓아 그는 근심하고 낙담하였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벼락을 맞거나 다른 어떤 천벌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여러 날 동안 다시 가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죽이지 않으시는 것을 본 요사팟은 다시 교리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성령의 은총이 그 마음을 움직여 그는 자기 이성을 신앙에 굴복시키고 굳게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주문모 신부는 이후 요사팟의 마음이 바르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편지를 보내어 복음의 참 정신을 알리고 신기한 물건이나 마술적인 힘에 대한 생각을 일체 버리도록 하였다. 요사팟은 감격하여 이전에 그가 몰두하였던 연구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2세였다.
당시 그의 친구 중 거의 모두가 그의 본을 따랐다. 여주읍에서 참수당하는 것을 본 바 있는 영광스러운 순교자 이중배(마르티노)와 원경도(요한)와 이희영 등은 그이 전교에 따라 개종하였다. 단지 강이천만이 믿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이 자기의 야심적인 꿈과 환상적인 연구에 빠져 들어갔다. 그 후 두 달이 겨우 지났을까 말까 한데 이 자와 그의 동료들의 계획이 드러나, 정부는 그들의 행동에서 '반역의 성향과 백성들 가운데 소요를 일으킬 위험이 농후하다'고 생각하고서 그들을 체포하였는데 이때가 1797년이었다.
목록 쓰기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이용약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10번지 충무빌딩 313호    Tel:02-2269-2930    Fax:02-2269-2932    Email:wonjuse@hanmail.net
COPYRIGHT DOMA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