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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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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영인(1775~1801 비비안나) 날짜 2005.03.31 13:26
글쓴이 관리자 조회 450
문영인은 1801년(신유년) 박해 때 강완숙과 함께 순교한 동정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중인 계급으로 부친과 삼촌은 하급 관리이고, 5명의 자매 중 셋째였다.
그녀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궁중에서 궁녀를 선발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에 그 부친이 큰딸을 숨기고 나이가 아직 어려 감추지 않았는데 선발하는 사람이 그녀의 용모가 빼어난 것을 보고 데려가 궁중에서 성장하게 하였다. 15세에 머리를 올리고 한글을 익혔는데 글씨가 매우 좋아 모든 문서의 작성을 도맡아 잘 처리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외교인(外교人)이었으나 어머니는 열성적인 신자였다. 그래서 궁중의 딸이 영혼을 구하지 못할까봐 항상 근심하여 그녀가 집에 오면 천주교 신앙을 갖도록 언니들과 함께 간곡히 권면하였다. 그러한 가족들의 권유에 대해 문영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언니들은 아무런 방해가 없어서 마음놓고 열심히 수계할 수 있지만, 나는 궁중에 있어 미신에 얽히게 되므로 계명을 잘 지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나이가 많아져 궁중에서 나오면 그 때에 하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궁중에서 머리가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아프고 정신이 혼란해져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궁에서는 갖가지 약을 다 써 보았으나 낫지 않고 점점 더해 감으로 본집으로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위험한 상태를 보고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입교할 것을 권면하였다.
본인도 입교할 뜻이 있던 차에 병이 더둑더 위중해져 모친의 권고에 따라 입교하여 영세를 하였다. 그러자 그 다음날 병이 완전히 나았으며, 그녀는 기도를 더욱더 열심히 하며 신앙생활에 열중하게 되었다.
궁중에서는 매일 의원과 약을 보내어 치료하도록 하였는데, 그 사람들이 방문하였을 때는 병이 위중해졌다가 그 사람들이 집을 떠나면 즉시 다 나았다. 이리하여 궁중에서는 침술과 한약 쓰기를 얼마 동안 하다가 결국 가망이 없다 판단하고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이제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신공과 기도에만 전심하면서 성인들의 행적을 열독하여 그 표양을 본받으며 기꺼이 순교할 뜻을 간절히 품게 되었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궁궐에서는 불치의 병이라 하고 궁녀를 파하고 원료금도 폐하였다.
그 후 3년 뒤에 그녀는 혼인하지 않았으면서도 청상과부라고 하면서 정약종의 집을 빌려 김 회장의 어머니 김 수산나와 함께 여러 해 동안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다른 여신자들과도 친밀히 왕래하면서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박해가 매우 심해져서 주문모 신부가 다른 곳으로 피신하게 되었으므로 비비안나 본집으로 돌아와 순교할 날만을 고대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심을 갖고 집에 있는데도 관에서 자신을 체포하러 오지 않자 그녀는 '천주께서 나를 싫어하시 보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결국 비비안나도 자신의 원하는 대로 체포되었다. 어느 날 기 수산나가 비비안나의 집에 왔다가 자리 밑에 기도서 한 권을 감추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포졸들이 들이닥쳐 장물을 찾고자 가택을 수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찾지 못하게 된 포졸들이 방을 나서다가 자리 밑을 들춰 기도서를 찾아내고, 문 비비안나에게 "너도 이 천주교를 믿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녀가 그렇다고 대답하여 기꺼이 체포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또한 그러한와중에서 음식을 잘 준비하여 포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깊은 신앙을 가졌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문 비비안나는 어머니께 하직 인사와 위로를 드리고 포청으로 압송되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 26세였다.
포청의 포장이 끌려온 그녀에게 "너는 젊은 여자이고 궁중에서 자라난 나이인데도 국가에서 금지하는 사교를 행하여 형벌 아래 죽고자 하느냐?"하고 묻자, 그녀는 "내가 충성으로 섬기는 천주를 위하여 생명을 희생코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관리는 그녀를 회유하고자 갖가지 계교를 다했으나 그녀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자 포장은 조그만 여자의 고집을 보고 분히 여겨 주뢰를 틀고 다리를 치는 등 갖가지 고문을 가하였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피가 꽃송이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는데, 관리가 그 이상한 모습을 보고 놀라서 "누구든지 이것을 본 대로 말하는 자가 있으면 큰 벌을 당하리라"고 하였다 한다.
포장은 그녀에게 여러 차례 가혹한 형을 가하여도 그녀가 도무지 항복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사형을 언도하여 5월 23일 형장으로 끌고 갔다. 이 때 형장으로 끌려간 여신자들은 궁녀 강 수산나와 강 골롬바 등 다섯 사람이었다. 그녀들이 형장에 이르렀을 때, 형리들이 구경꾼을 몰아내려 하자 비비안나는 "금하지 말라. 짐승 죽이는 것도 구경하는데, 하물며 사람 죽이는 것을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였다.
당시 어떤 여신자의 아버지가 문 비비안나의 순교 광경을 목격했는데, 그 딸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는 바에 따르면 "비비안나가 칼을 받을 때에 목에서 나오는 피가 흰 젖 같아 군사와 형리들이 다 이상히 여겼다"고 한다. 일찍이 로마에서 순교한 성 마르티나도 참수당할 때 피가 변하여 젖이 되었다 하니, 문 비비안나도 그에 못지 않은 굳건한 신앙심으로 그러한 이적(異蹟)을 보인 것이리라. 이렇게 해서 문 비비안나는 조선에서는 동정녀로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때는 신유년(1801년) 5월 23일로, 그녀의 나이 2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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