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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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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1751~1801)-(3) 날짜 2004.10.19 15:35
글쓴이 관리자 조회 370
1801년 1월 10일(음력)에 섭정을 하던 정순왕후 김대비는 어린 국왕 순조의 이름으로 천주교를 엄금하는 윤음을 반포하면서 천주교 신도들을 색출하여 체포, 구금하고, 엄벌에 처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신유대박해' 동안에 수많은 신자들이 구속되고, 주문모 신부의 은신처를 추궁받으면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이 때에 주문모 신부는 자기 때문에 신자들이 고통을 받고 희생되는 것을 보고, 잠시 그의 고국에 귀국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자기가 귀국하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교회 박해가 중지될 것이고, 이러한 소란이 잠잠해진 뒤 다시 잠입하여 활동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주문모 신부는 경희궁에 이틀동안 머문 후 2월 22일(음력)에 북행 귀국 길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중에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착한 목자로서 자기 양떼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 정부 당국의 박해의 초점을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 신자들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아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한양으로 되돌아와, 3월 12일(음력)에 의금부에 나타났다.
주문모 신부는 관리에게 자기의 신분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나는 천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인데, 들으니 조정에서 그것(천주교)을 엄중히 금하여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인다고 하니, 살아 있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기에 스스로 와서 죽기를 구하는 것이오. 내가 당신들이 사방에서 헛되이 찾는 그 신부요."
그리고 나서 그는 감옥에 갇혔다. 곧이어 심문관이 문초 중에 주문모 신부에게 입국 이유를 물었을 때에, 그는 "내가 조선에 온 것은 한 가지 목적뿐이오. 즉 참된 종교를 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불쌍한 백성의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었소"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취조 받는 중에 성직자로서의 침착한 자세를 잃지 않고 모든 질문에 신중하고 지혜롭게 대답하였으나 신자들에게 불리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울러 주문모 신부는 천주교인들이 반역죄로 기소, 처형되는 사실에 대해 변론을 통해 항의하였다. 그는 천주십계는 다른 나라를 해치는 일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와 천주교 신자들은 역적 행위를 할 사유가 없다고 분명하게 천명하였다.
1801년 4월 19일(음력) 조정에서는 주문모 신부가 외국인 특히 청국인이라는 점에서 외교 문제 때문에 격론이 일어났으나, 다수 강경파의 주장대로 그를 군법에 회부하여 효수형(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던 처벌)에 처하여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도록 결정하였다.
같은 날 오후에 주문모 신부는 감옥에서 끌려나와 형 집행의 절차상 우선 다리에 30대의 매를 맞고 들것에 실려 군대의 사형 집행 장소인 한강 근처의 '새남터'로 갔다. 그가 사형장에 도착하자 형리는 신부의 양쪽 귀에 화살을 꽂고 죄목을 나열한 조서와 판결문을 읽게 하였다. 주문모 신부는 여러 가지 문서들을 침착하게 다 읽고 난 후에 주위에 모여 있던 군중을 향하여 힘차게 "나는 천주교를 위하여 죽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로 머리를 숙여 참수형을 받았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주문모 신부가 치명하는 순간에 "청명하던 하늘에 갑자기 두터운 구름이 덮이고 무서운 선풍이 일어났다. 맹렬한 바람과 거듭 울리는 천둥 소리와 억수같이 퍼붓는 비와 캄캄한 하늘을 사방에서 갈라놓은 번개"등은 사형 집행자들과 구경꾼들뿐 아니라 장안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무지개가 서고 구름이 걷히고 폭풍우가 가라않았다. 특히 주위에 있던 신자들이나 외교인들은 모두 한결같이 두려운 마음으로 "이렇게 무서운 표적을 내는 것을 보면 하늘도 이 치명자의 운명에 무심하지 않구나"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같은 시대의 사람인 황사영(알렉산델)도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 때에 한 교우는 3백 리 밖에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또 한 교우는 4백 리 밖에서 환나(교회박해)을 피해가 있었는데, 바람과 천둥이 이상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 날 반드시 무슨 괴상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날짜를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신부님이 순교하셨다는 말을 듣고, 따져보니 그 날 그 시간이었다."
순교자 주문모 신부님의 머리는 5일 동안 처형장에 높이 매달려 있었고, 군졸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매일 밤 무지개가, 또는 찬란한 빛이 그 시체위에 나타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나 많은 외교인들이 큰 감명을 받았고, 이는 여러 수기에 기록되어 천주교인들과 외교인들의 일치된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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