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회원가입  |  로그인  |  사이트맵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일반자료실
일반자료실
제목 다락골 순교자 줄무덤 날짜 2003.01.07 13:43
글쓴이 관리자 조회 345




제목 없음













다락골 순교자 줄무덤



마치 사열이라도 받으려는 듯 일렬로 늘어서 있는 제2 줄무덤 모습border=1>






병인박해때의 치명자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줄무덤은 16기이지만, 실제로는 몇
사람의 유해 가 묻혔는지 알 수 없는데, 당시 홍주(現 홍성)와 공주 감옥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그 친척들 이 밤중에 운반하여 안장했다는
설과, 해미나 갈매못에서 치명한 분들의 묘라는 설도 있다.


무명 순교자 묘지와 성 최경환, 최양업의 탄생지가 있는 이곳은 한 때 열심한
교우촌이었다. 성 최경환의 부친 최인주 일가는 박해를 피해 서울에서 이 곳에 정착하여 열심한 신앙 생활로 전교를 하였다. 그 후 박해가 일어나
교우촌이 발각되어 교우들은 잡혀 순교하거나 뿔뿔히 흩어졌다.


특히 이 다락골은 최양업 신부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최 신부 집안에서 이 줄무덤을
만들고 박해가 두 려워 천주교 신자들의 묘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는데, 몇 년 뒤 이 사실을 안 조정에서 마을을 불살라 이때 마을 주민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고 한다.


다락골은 처음에 월내리(月內里)로 불렸는데, 이를 순수 우리말로 달안골이라 하던
것이 다락골로 바뀐 것이다.


차령 산맥의 줄기가 지나가는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는
오소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청양 다락골은 굽이굽이 산비탈 중턱에 40여 호의 인가가 모여 있는 두메 산골이다.


조선 시대에는 홍주(지금의 홍성)골에 속했으나 지금은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라는 행정 구역명으로 불리고 있는 다락골은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인 최경환 성인이 탄생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다.


청양에서 대천으로 국도를 따라 8킬로미터쯤 가면 화성면 소재지가 나오는데 면
소재지 조금 못 미쳐 국도변에 최경환, 최양업 부자상(父子像)이 보인다. 묵주와 성지(聖枝)를 들고 앉아 있는 최경환 성인, 그 옆에 십자가와
성서를 펴든 최양업 신부의 부자상은 지난 1986년 8월에 건립된 것으로 이곳이 이들 부자의 탄생지임을 나타낸다.


다락골은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다시 2.5킬로미터 가량 구불구불한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국도에서 갈라지는 초입에 '양업로(良業路)-성지 줄무덤 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가쁜 호흡을 고르며 마을 뒤 산길을 마저 오르면 항아리 모양으로 생긴 14처를
만난다. 그 옆을 지나면 경주 최씨 종산의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무명의 순교자들의 묘소와 묘비들이 여러 줄로 서
있다.


청양 다락골 


하지만 이 무덤들의
임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 감영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밤을 틈타 엄중한 감시를 뚫고 훔쳐
내 최씨 종산인 이곳에 안장했다고만 입을 통해 전해진다.



혹자는 황새 바위에서 순교한 이들이 묻힌 곳이라고도 하고 또는 동학란 때 죽은
자들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 어디서 죽었든지 간에 확실한 것은 치명자들의 무덤이고 그들의 이름 없는 피 흘림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이다.


농암리 다락골은 처음에는 '월내리(月內里)'로 불렸는데 이것을 순수 우리말로
'달안골'이라 한 것이 다락골로 바뀌어 전해졌다고 한다. 혹은 다래가 많이 나서 '다랫골'로 불렸다고도 한다.


여기에 천주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1791년이다. 신해박해의 모진 서슬에 최양업
신부의 조부(祖父) 최인주가 그의 어머니, 곧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누이를 모시고 피난해 들어오면서 교우촌이 시작된다.


모자는 다락골로 들어와서 공터를 개간해 살림을 이어 갔는데 이 때 그들이 개간했던
땅이 새터로서, 점점 이웃이 모여 들어옴에 따라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던 것이다.


최인주가 슬하에 둔 3형제 가운데 셋째가 최경환 성인으로 그는 1821년 한국에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을 6형제 중 장남으로 얻는다. 이들은 박해 시대에 드러내 놓고 신앙 생활을 하기에 어려움을 겪던 중 신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를 한다.


그 후 다시 안양의 수리산 담배 마을에 정착한 최씨 일가는 이곳에 교우촌을 만들고
1836년에는 최양업을 신학생으로 마카오로 떠나 보낸다. 1839년 최경환은 가족 및 교우들과 함께 잡혀 서울로 압송돼 모진 고문 끝에
순교한다. 한편 다락골의 교우촌 새터 마을의 교우들은 대화재의 참화속에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최씨 문줄에서 일군 새터라는 마을
이름은 지금도 신앙의 흔적으로 역력히 남아 있다.


성지관리 : 청양 성당 (0458-943-7123)




목록 쓰기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이용약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10번지 충무빌딩 313호    Tel:02-2269-2930    Fax:02-2269-2932    Email:wonjuse@hanmail.net
COPYRIGHT DOMA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