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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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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론성지 날짜 2003.01.07 13:37
글쓴이 관리자 조회 399




제목 없음









충북 제천
배론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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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http://www.tourguide.co.kr/recommend/img_02/line03_1.gif" width=45
align=absMiddle> 천주교 박해, 그 역사의 현장











봄이 오고 있다. 문학에서 봄은 상징적인 의미로 많이 등장한다. 요즘의 경제 사정을 보면 아마 이런 상징적인 의미에 빗대어 봄이 어서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괜히 봄이라도 오면 사정이 좀 나아질까 하는 막연한 기대일 텐데, 이런 막연한 기대가 마술이나
깜짝파티처럼 현실에서 확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복권이나 맞으면 모를까, 현실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별로 우호적이거나
친절하지 않다. 봄이 와도 막연한 기대는 말 그대로 막연한 기대로 끝나고, 사람들은 겨울에 품었던 꿈을 꽃이 피는 봄에도 똑 같이 품고 살아야
한다.

이런 막연한 기대를 품고 얼음장보다 더 싸늘한 현실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인들이다. 이번 주는 가족과 함께
모진 박해를 피해 봄을 기다리며 살았을 그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목적지는 충북 제천의 배론성지이다. 하루 코스로 무난하고 배론성지의
풍광도 봄처럼 아늑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도 좋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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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충북 제천시 봉양면 구학리, 치악산 건너편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배론성지는 안성의 미리내성지와 함께 우리나라
기독교사에서 빠질 수 없는 큰 획을 그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초기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숨어 살았고, 황사영 백서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고 또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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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 동상」

리나라 최초의 신학교가 이곳에서 설립되었으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론이란 이름은 얼핏 듯기에 영어 같지만, 이 지역의 생김새가 배의 밑바닥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인 주론(舟論)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한다. 지형이 배 밑바닥 같이 생겼다는 것은 이 지역이 구학산과 박달재 사이의 긴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 양쪽이 다 솟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은 도점촌(陶店村)이라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자기를 굽던 곳인데, 신해박해 이후 조선 정조
15년(1791년)부터 이곳으로 교인들이 숨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든 교인들 역시 옹기를 구워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교인들은 옹기를 팔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교인들과의 접촉이나 정보 수집 등을 할 수 있어 옹기장사가 은거 종교생활에 적당했다고
한다.







현재는 옹기를 굽던 흔적은 없고,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 앞에 옹기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배론에 첫 번째 큰 파란이 일게 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에 이어 일어난 황사영 백서 사건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신유박해에서
이승훈, 이가환,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등 남인 세력들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는데, 그때 중국인 신부였던 주문모 신부도 죽음을 당했다. 당시
천주교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황사영이 화를 피해 한양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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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 백서 토굴」
나 이곳 배론마을로 숨어들었다. 배론마을에서는 굴을 파서 황사영을
숨겨 주었고, 그 토굴 속에서 황사영은 천주교의 박해 사실을 낱낱이 적은 백서를 만들어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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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순교현양탑」

그러나 백서를 가지고 가던 황심이란 사람이 붙잡혀, 결국 황사영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백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백서 사건으로 배론마을의 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다시 뿔뿔히 흩어지고, 백서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천주교의 탄압은 더욱
강도를 더해가게 된다.
백서의 내용 중 문제가 된 부분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만일 할 수만 있다면, 병선 수백 척에 정병 5-6만과, 대포 등 강한 병기를 많이 싣고,

글을 잘하고 사리에 밝은 중국 선비 3-4명을 데리고 오십시오. 그리고 이
나라의 해안에 정박하여 국왕에게 글을 보내 선교를 용인하고 우호 조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하십시오'








지금 보아도 상당히 큰 문제가 제기될 내용이다. 그러니 당시의 상황에서 이 백서로 인해 천주교의 박해가 가속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일이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현재 배론성지의 요셉 신품학당 뒤로 황사영이 숨어 지내던 토굴이 아직도 있고, 이 황사영 백서는 바티칸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백서 사건 이후 50여 년이 흐른 1856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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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요셉
성당」
론마을은 또 한 번 회오리가 일게 된다. 당시 메스트르 신부가
이곳 배론마을의 장주기(세례명 요셉)의 집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당시 신학교의 운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힘들었던 모양인데, 신학교 설립 10년 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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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요셉 신품학당」

1866년 병인박해 때 신학교의 교장이었던 푸르티에 신부와 교사였던 프티니콜라 신부 그리고 집주인 장주기가 모두 잡혀가 서울의
새남터에서 죽음을 당하고 신학교는 폐쇄되었다.
현재 배론성지에는 장주기(세례명 요셉)을 기리기 위한 성 요셉 성당이 개울가에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또 신품학당을 재현한 초가 건물이 있는데, 실제 신학당이 있던 자리는 그 옆에 있는 강당 건물이 있는 자리라 한다.

그리고 배론성지에는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다. 최양업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인물이다. 신부가 된 후 열심히 목회활동을 하다가 문경의 교우촌에서 과로로 사망하자 이곳 배론성지로 이장되었다고 있다.
최양업
신부는 순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김대건 신부와 비견될 만한 업적을 이룬 신부라 한다. 현재 배론성지에는 최양업 도마신부 기념성당이 커다랗게 지어져
있다.
배론성지는 그리 넓지는 않아 앞에서 말한 유적들을 둘러보고 '십자가의 길'이라 이름 붙은 산책로를 돌아도 다 돌아보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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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 묘소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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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도마신부 기념성당」

돌아오는 길에는 도로 변에 있는 탁사정이란 예쁜 계곡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탁사정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배론성지에서는
차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북쪽의 치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곳 탁사정을 만들고 더 지나 제천천과 합류하여 충주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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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사정계곡」

흘러드는데, 이 계류가 탁사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빚어내 제천 10경 중 9경에 꼽히기도 한 곳이다. 이름 때문에 계곡 옆에
멋들어진 정자라도 하나 있을 것 같지만 정자는 없다.
도로변 이정표를 따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 경치에 실망하고 그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실수이다. 도로변 휴게소 같아 보이는 곳 주변 경치는 탁사정의 프롤로그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차장 안쪽에 있는
탁사장 파크라는 모텔 옆
으로 '등마루 산장 휴게소'라는 그저 그렇게 생긴 간판이 하나
있는데, 이 간판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비로소 탁사정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물돌이를 이루며 휘어 돌아가는 계곡에 커다란
바위들이 들어서 있어 규모는 작지만 멋진 경치를 빚어내고 있다. 계곡에 발만 담그고 있어도 한여름 더위쯤은 싹 씻겨갈 시원한 계곡이다. 계곡의
규모가 작은 것이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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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사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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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사정계곡」

배론성지 : (043)651-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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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운전
배론성지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제천 방향으로 중앙고속도로를 들어서면 신림나들목을
지나 서제천나들목이 나온다. 이곳 서제천나들목을 나와 만나게 되는 38번 국도를 타고 충주 방향으로 간다. 조금만 가면 봉양에서 원주로 향하는
5번 국도가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삼거리에서 원주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우회전하여 약 5~10분 정도 달리면 길 왼쪽으로 커다란
십자가 상이 보이는데 이 앞으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배론성지이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2시간~2시간 30분 거리이다.

배론성지를 나와 다시 5번 국도를 만나면 원주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조금만 가면 탁사정 이정표가 있고 길 가에 주차장이
있다.
탁사정을 나오면 다시 5번 국도를 타고 원주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주천으로 향하는 88번 지방도로가 갈라지는 신림이 나온다.
여기서 중부고속도로로 들어가 서울 방향으로 달려 돌아오면 된다.


   대중교통
제천까지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간 후 제천 중앙공원 앞에서 배론성지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에 4회밖에 운행되지 않아
불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원주행 버스를 타고 배론성지 입구에서 내려 약 3km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배론성지를 돌아보고 시간이
괜찮으면 다시 5번 국도로 걸어나와 탁사정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돌아올 때는 탁사정에서 원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원주에서 고속버스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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