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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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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변문의 오후(3) 날짜 2015.06.08 16:53
글쓴이 관리자 조회 273

“전 신부님, 범 요한이가… 요새 뭔 일 있나요?”

메스트르 신부는 늘 걱정이었다. 언제까지 데리고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정식 수하직원이었다.

“글세, 모르겠네요, 원래 기복 있는 사람 아니래요?”

“그렇게 최 부제를 쫓아다니더니 요 며칠은 근처도 안 가던데.”

“최 부제한테 물어보드래요?”

메스트르 신부는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리고 전 신부님 일전에 말씀드렸던 것… 나와 최 부제는 아무래도 교회력으로 금년까지만 있으려고요.”

“대림 1주일 떠나시겠드래요?”

“최 부제와 상의해야겠지만 일단 그럴 생각입니다.”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1주일이 11월 말경이었다.

“발목 잡는 것 같아 말릴 수도 없드래요.”

“신학교 후임 문제도 있어 미리 이야기하는 겁니다.”

“뭐 별수 없드래요, 혼자 북 치고 장고 치고 다 해야지. 주교님 한테도 뾰족한 순 없드래요. 내년 봄이나 새사람 보내시겠지요.”

“변문(邊門)에서 압록강 얼 때를 봐야겠어요. 이번 놓치면 또 일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조선은… 점점 철벽 쇄국이드래요?”

“어린 임금 세워놓고 대신들이 주무르는데, 자기들 어떻게 될까 경계심만 더해가네요. 중국도 일본도 개방한 지가 언젠데… 백성들만 딱하지요.”

“신부님!”

소팔가자 전 신부는 똑바로 메스트르 신부를 바라보았다.

“위험한 조선엔 왜 가시려고 해요?”

“아니, 신부님마저?”

“신부님 같은 분들한테 육성으로 듣고 싶은 것뿐이래요.”

“칠 년 전… 앨베르, 모방, 샤스탕, 이분들이 왜 순교하신 것 같아요?”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시려는 것 아니래요?”

“ 다음이 아니라 현재를 살려 하신 거예요.”

“보상심리 아니래요?”

“아니, 현재부터 그 재미에 빠지셨지요.”

아무려면요, 사람의 인내는 ???도가 있는 데다 참는 것보단 사랑으로 드릴 때 수월하다는 토를 달려다가 메스트르 신부는 건너뛰듯 역설했다.

“첫걸음에 생명까지 간 게 아니거든요.”

“네에?”

전 신부는 무슨 소린가 했다.

“하느님이 아무한테나 뭘 받으세요?”

“아니래요, 카인의 제물은 안 받으셨대요! 사랑이 동반되어야 받으신대요.”

“안 그럼 뇌물이 되니까…. 순교하신 분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드려오신 분들이에요. 하느님은 그것들을 다 받아오셨고.”

“한 번에 순교하신 게 아니래요?”

“천만에, 처음엔 가난부터 드렸을 겁니다. 다음은 정결, 마지막이 순명이 아닐까, 진심으로 하긴 쉽지 않으니까요.”

메스트르 신부는 왜 하필 페레올 주교가 동갑내기일까를 생각했다.

“가난 정결 순명, 세 가지 빼고 나면 허수아비 아니래요?”

“날개가 돋습니다.”

“셋 중 하나만 드리면 안 되나요?”

“원점으로 돌아오겠지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가난 정결 순명 다 드리고 난 다음에는?”

“그래도 더 사랑하고 싶은데 남은 게 생명밖엔 없어서, 그거마저 드린 겁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이 받아주셨고.”

메스트르 신부는 계속 이어갔다.

“생명밖에 남지 않은 생명이라야, 마지막 받으실 겁니다.”

“대번 백 번째가 아닌 99계단까지 올라선 다음이래요?”

“사랑의 길이래요, 그럼 순교가? 인내로 하는 줄 알았는데.”

“인낸 기본이고 기쁨도 있다니까요, 자신도 잊을 정도로 몰입되는!”

“해서 재미라 하셨군요, 그럼 신부님은 어느 단계래요?”

“시원찮네요. 여태 겸손치를 못한가 봐요.”

“….”

“….”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 전 신부가 더 그러고 있다가 떠듬대며 입을 연다.

“남자로서… 이거 몇 살까지… 분심에 시달려야 하는 거래요?”

메스트르 신부도 촉촉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다 늙어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그렇다는데, 생각적으로야 뭐….”

“에고… 희망 없어지네.”

“아니, 난 더 희망적이라 보는데?”

“유혹이 희망이라고요?”

“학생이 시험을 봐야 상급반에 오르는 것처럼 유혹을 넘어서야 더 큰 은총이지요.”

“어떤 땐요… 그 유혹 이겨내려면 입에서 단내가 나드래요.”

“그 후엔 구름 위 산책이잖아요. 그래서… 늙어서도 분심이 든단 소리는…드릴 게 있단 소리지요. 고목이지만 아직 꽃피워 드릴 수 있다는, 늙은 정열도 익히다 보면 마지막 단맛으로 스며들지 않겠어요?”

우련히 앉아 차 마시는 자리였다. 두 신부의 담화는 잘 익은 과일의 향기처럼 오래갈 것 같았다.

“요한 씨, 요새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요?”

메스트르와 전 신부가 담화할 시간 양업은 범 요한의 방에 와 있었다,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

최근 범 요한은 화난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특별히 양업에게는 원수진 사람처럼 굴었다. 금방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마저 돈다.

“난 이유도 모르는데?”

“….”

‘그래 니는 봉황이고 난 쪼잔한 뱁새다. 니 잘났다.’ 범 요한은 속으로 뇌까렸다.

“혹시… 홍홍이 마리아 때문에 그래요?”

“….”

“매도 알고 맞아요, 우리?”

범 요한이 씩씩대기 시작했다. 문제는 분노하는 실체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채 모를 괴물이 깨어나면 스스로도 어쩌질 못했다.

“큰 기 가이고 맘 상하는 거 아이라카이, 쪼잔해 말도 몬해서 맘 상하는 기지!”

“괘씸죄에 걸렸나 보네, 단단히?”

“뭐꼬 성직자가, 가시나나 꼬시고?”

양업은 바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뭐, 뭐라고요? 요한 씨 말이 심하네요.”

“내가 콱 터자뿔까 이거?”

낯선 사람 같았다. 그러고 있는 범 요한 스스로가 생각해도 그랬다.

“네엣, 뭐를?” “뭐긴? 뭐라도! 콱 터자뿔고 나중에 ‘아니면 말고.’ 카만 되지 뭐!”

삐진 정도가 아니라 잔뜩 흥분해 있었다. 양업이 주장해 왔던 소위 ‘사랑학(세 명이라도 둘의 사랑에 한 명마저 참여할 수 있다는 이론)’이 커다란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그러나 양업은 아직도 믿고 있다, 아니 앞으로도 믿어내려 한다. 영원토록 삼각관계가 없는 삼위일체식이 인간사회에서도 가능함을. 하지만 갓 벌어진 상황으로만 봐선 지상에서는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내가 아직 부제라 순수하게만 생각해서 그런가? 앞으로 본당 교우들을 대할 때 ‘대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예 한 사람도 사랑하지 말란 말인가. 한 사람이라도 사랑한다는 자체가 불공평일 테니. 몇 번을 생각해도 홍홍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그게 말썽이 되어 범 요한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싶게 급변해 버리니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가, 신부를 준비하는 부제로서 차제에 좋은 경험이긴 하겠지만 당장은 눈앞의 상황이 쿡쿡 쓰라려 온다.

“요한 씨… 지금 무슨 말을 해봤자 들리지도 않겠고, 나도 기도 좀 하고 이야기해요.”

마음속에 우리를 갈라놓으려는 책동이 있는 듯싶으니, 라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그라입시더!”

범 요한 자기가 생각해도 어린애처럼 굴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계속 이런 식이다간 욱하고 목발할 것도 같아 고개를 돌렸다.

양업은 축 늘어진 어깨로 방을 빠져나와 휘청휘청 걸으며 중얼거렸다. ‘쉽지가 않구나, 앞으로 질투라는 마귀 조심해야겠다. 한번 걸려들면 엉뚱하게 되는구나. 순간에 이리되다니….’ 지금까지 99푼 사심이 없었다면 앞으로는 1푼마저 공인으로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굴뚝같았다.

인기척이 없는 어두운 정원을 서성이다 불현듯 대건 생각이 꼬리 무는 것은 왜일까. ‘대건아, 너 같으면 이럴 때 어쩌겠니? 원래 이런 방면엔 칼 같아서 문젯거리도 없겠지.’

사실 두 달 전, 대건이 보낸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었다. 발신일이 1845년 8월 26일이니 작년 상해 오송항에서 조선으로 출항하기 닷새 전 쓴 것으로 일 년이나 늦게 온 폭이다. 중도에 봉천(심양) 같은 데서 방치되다 왔는지 빛바래 있는데도 밀봉 상태만은 양호했다. 편지는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며 서두부터 여성문제를 고백하고 있었다. ‘뜬금없겠지만… 이것은 반드시 너와 나 단둘이만 알고 있어야 한다. 꼭이다. 꼭!이란 글귀가 보이자 더 구미가 당겼었다.

업아, 이렇게 한가한 시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8월17일 금가항 성당에서 있었던 사제서품은 잘 받았다. 난 네가 예식의 시작부터 끝까지 곁에 앉았다고 여겼다. 첫 미사는 8월24일 횡당성당에서였는데 페레올 주교님도 함께해 주셨다. 그 자리엔 루 선장이라는 사람도 왔는데 오송항에서 배 장사 하는 한족이다. 지난 5월, 산동에서 배를 끌어준 것이 연이 되어 백가점 때도 같이 갔던 사람인데, 아 글쎄 널 만나고 오는 길에 숭명도로 가더니 딸을 소개시켜 주는 것이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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