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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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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변문의 오후(5) 날짜 2015.06.08 16:56
글쓴이 관리자 조회 270

천주강생 1846년 12월 중순경

“최 부제 여기가 사평(四平)이지?”

“네… 제 생각엔 이곳이 만주의 중심 아닐까 해요.”

“다 만주 아닌가? 동북 흑룡강 길림 요녕이?”

“사평이 가운데 같아요. 사방이 평지라 사평이래요.”

“심양까진 얼마 걸릴까? 올 성탄절은 어디서 맞고…?”

“엿새 정도요. 성탄은 심양 지나 본계를 앞두고 아닐까요?”

“길 위에서 성탄을 맞네그려!”

“팔자가 길 팔자인 모양예요.”

“하긴 예수님도 길에서 태어나신 거지 뭐! 헌데 어젯밤부터 뭘 그리 쓰나, 편지야?”

메스트르 신부가 몸을 일으키자 부스럭거리는 이불소리가 났다.

“심양 가서 부치려고요. 아는 신부님 있으니까.”

“누구한테, 마카오에?”

“르그레주아 신부님께요.”

“참… 그 양반도 이제 40대 후반이구면, 잘 계실라나? 극동대 표직보다 파리에선 더 바쁘실 게야.”

“한번은… 저녁에 면학실에서 자습하고 있는데 들어오셨어요.”

“대침묵 시간에?”

“네. 보자기 하날 교탁에 탁 푸시더니, 칠판에 쓰시는 거예요. ‘따뜻할 때 하나씩 먹고 해.’ 그때 먹은 교자 참 맛났는데.”

“그분 신학교 교육이 최고라 하셨지. 자네들 조선신학부 설립도 아버지 유산을 터셨다네.”

“지금까지도 대건 신부나 제게 젤 잘해주시는 분예요. 우리가 풜 부탁하면 어떻하든 도착지에 가져다 놓으시는 거예요, 성물이면 성물 유해면 유해!”

“맞아 그 양반 돌아다니진 않아도 전 중국 지도를 꿰실걸?”

“우리 둘의 부모님 같은 분예요.”

“하늘께서 맺어주시는 인연이야 오묘하지. 심양에서 부칠 걸 쓰는구먼? 어법 막히면 물어봐.”

메스트르 신부가 돌아눕자 양업은 계속 써내려갔다. 라틴어 사전도 없는 데다 싸구려 헛간 같은 데서는 손이 얼어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지극히 공경하고 경애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아직까지도 제가 조선 포교지 주변만 떠돌고 있으니, 저 역시 매우 답답하고 신부님의 마음도 탐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제야 저의 겨레들한테로 가는 도중입니다.

지금 발걸음은 가붓하나 머리는 아래로 푹 떨어져 있습니다. 무거운 죄악의 무게에 짓눌리고 극도의 가난과 허약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하심에 희방을 두고,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저를 온전히 맡깁니다.

청컨대 지극히 강력하신 저 십자가의 능력이 저에게 힘을 결집시켜 주시어,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본받지 않게 하시기를 빕니다.

어제부턴가 양업은 십자가만을 배우려 하였다. 기적을 청하기보다 인내를 구했다. 구원이라는 장거리를 가려면 반짝하는 기적의 약발보다는 신앙이라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군중이 기적만을 요구하자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에게 한 기적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했더라면…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나는 이제 요나의 기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이는 십자가에서 쓰러지리란 말씀에 다름 아니다. 양업이 지금 박해의 땅에 가는 것도 거기 십자가가 있어서다. 가서 함께 거들어 드릴 때 위에 달리신 분께 허물없겠기 때문이다. ‘가자, 피보다 진해서 피 흘려도 나아가는 대오에 서러. 가자, 핏줄보다 진한 십자가 줄에 내 기쁨을 나누러. 가자, 거기만이 겨레로 살다 동포로 스러져도 될 품이니…. 그러나 이런 원의마저도 맡겨드리며….’

양업은 철령에서도 틈틈이 편지를 완성해 갔다. 그리운 르그레주아 신부님에게 하는 편지는 자신에게 쓰는 일기와도 같아 12월 22일, 시양에 도착해서야 그 달가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길을 걷는다.

소팔가자에서 심양과 본계를 지나 1200리 가까이를 걷고 있다. 따그닥 이랴! 한 떼의 말들이 좁다랗게 눈 녹은 데로만 달려 거침없이 지나쳐 갔다. “거참 사람들하곤, 말 타면 다인가. 걷는 사람 생각해서 천천히 몰 거지.” 행인 옆에서 속력을 낸 바람에 무릎까지 빠지는 길가로 피하던 메스트르가 상을 찡그렸다.

싱긋, 양업이 웃으며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돈 없어도 이게 있잖아요. 나귀 한 마리 살 돈 없지만 웃음이 있잖아요.’ 사실 이렇게 걷는다고 최악은 아닐 것이 조선에 들어가면 이나마도 활송하리가. 추위보다 산적보다 무서운 것이 포졸들이요 그보다도 더한 것이 이웃들의 눈일 테니, 맘 편히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길을 걷는다.

길은 무엇보다 솔직해서 좋았다. 길은 거짓말하지 않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으니까.

양업은 길을 걷는 것을 일로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때마다 만나는 대상들에 대한 정다운 인사로 여기기로 했다. 소나무야 안녕. 바위야 멋지구나. 바람아 좋아. 구름아 곱구나! 오르막아 내리막아 너희 둘이 이렇게 이어져 있구나. 시냇물아 고마워. 사평아 안녕. 철령아 잘 있어. 심양의 형제자매들이여 부디 복되시길. 만나는 사람마다, 길 위를 킁킁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에게도 평화를 나누는 여정….

길 위에 흘러라.

영으로 흘러라.

가난히 흘러라.

가난한 영으로 흘러라.

마음이여

천리만리라도

그리 흘러라.

일단 길을 나서면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정한 곳 없는 사람이라도 가끔 이정표는 보지 않을까. 왜 가냐고 물으면 거기 길이 있어서요, 라고 할 수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머리는 까닥 않으면서 ‘발만 고생해라.’ 장시일 명할 수는 없는 노릇, 어느 방향으로 얼마 남았을까를 가늠해 보게 된다. 이렇듯 길마다의 목표지야 매번 바뀌게 마련이지만 목적이야 지금껏 바뀐 적이 없다. 바로 너가 있는 곳, 거기엔 우리의 하늘도 계시니 그곳만을 목적 삼아 걷는 것이다. 그럴 때 걷는다는 것은 너를 만나리라는 설렘이요 또 떠나오면서는 다시 너에 대해 젖어드는 회상이다. 종도에서 마주쳐 오는 너를 닮은 대상들, 걷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안녕!하는 것이다.

걷다 보면 잡념이 걷혀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다른 각도에서의 너가 보이고, 너를 새롭게 보고 있는 나도 보인다.

육체의 한계를 느낄 때 한 발을 더 떼어보는 것은 차라리 완전한 내맡김, 그렇게 체념하고 나면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초월이라는 내리막이 열린다.

잠자리에서 생각이 많으면 머리는 무겁다. 걸으면 균형이 맞아서인가, 생각을 많이 해도 가볍기만 하다. 인간만이 직립보행이니 온통 머리를 하늘에 드리울 수도 있다.

길을 걷는 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는 데서 인생과도 같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은 대로 지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개는 나올 것이니, 마저 성실히 걸어내 그 앞에 설 것이다.

“신부님, 말 타고 가는 사람들 안 부럽네요, 제 힘으로 가는게 아니잖아요?”

“부러우면 딱한 거지.”

오전 내내 걷는다는 데에 빠졌었는지 고개 밑이 바로 촌락이었다.

“하마당인데요?”

“그새 많이 왔구먼, 점심 먹으면 되겠네!”

“원래들 그런대요. 점심은 예서 먹고 숙박은 재 넘어 연산관까지 가고.”

작은 연못이 있는 하마당(下馬塘)은 이름 그대로 /말에서 내리는 연못‘마을이었다. 다음 동네인 연산관까지는 연달아 산이라 연달아 산이라 마땅히 말 물 먹일 장소도 없다.

만주족 마을인 하마당은 발 뻗을 방 한 칸 없어도 집집마다 매어놓은 말들이 과연 기마민족다웠다.

양업은 길가 식당부터 찾았다.

“정말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단 말예요?”

“그렇다니까, 말 타고 온 사람들이 싹 쓸고 가버렸어!”

“다른 식당은 없어요?”

“개 콧구멍만 한 동네에 무슨? 우리 집도 파리만 날리다가….”

“많이 시장하실 텐데 어쩌지요, 신부님.”

양업은 메스트르 신부를 돌아보았다. 오늘따라 크신 눈이 한치는 들어가고 입술에 밴 흰 자욱이 안쓰럽다. 발 아프게 걸어온 것까지는 상관없는데 그 거칠게 이라, 하고 지나쳐 와선 음식재료까지 먹어치운 사람들과는 무슨 연인가 싶다.

“그럼 이거라도 먹어볼 텨?”

이건 아닌데, 하며 내미는데 거의 음식쓰레기였다. 돼지먹이로나 보여 양업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메스트르 신부를 돌아보았다.

“어쩌겠나, 돈이 넉넉해 특별주문을 하나, 시간이 많아 기다릴 수가 있나?”

“신부님이 괜찮으시다면 전 상관없어요.”

가난보다 더 혹독한 심경이 까닭 없이 자꾸 그런 상황으로 얽힌다는 야속함일 텐데 이런 때도 다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나, 하면서 꾸역꾸역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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