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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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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1) 날짜 2015.06.30 17:18
글쓴이 관리자 조회 258

최양업(장가루 성당 오후8시)

“지금은 안 됩니다. 어느 때보다 경계가 삼엄합니다.” 조선교회 연락원 김 프란치스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건만이 아니라 현석문 가롤로를 비롯해 9명이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페레올 주교나 다블뤼 신부의 행방조차 묘연해질 정도로 교회가 쑥밭이 되었다고 했다.

“최 부제, 아무래도 때가 아닌 것 같지?”

“그런데 신부님….”

나는 한 번 더 생각하며 메스트르 신부님을 쳐다본다.

“앞서 가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뒤에서 정리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여겨져요.”

“뒷정릴 하자고?”

“순교는 신앙의 씨앗이라고 하잖아요. 귀한 씨를 보존하려면 담아두는 사람도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한테 6개월의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뭐하시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여건이 되는 델 찾아가 현재까지의 조선교회 역사를 정리하고 싶어요. 순교자들의 피가 생생할수록 좋을 거예요. 이 일은 저 아니면….”

“그건 그렇지…. 조선말에다 라틴어, 프랑스 편지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자네밖에 더 있나?”

르그레주아 신부님이 강조하셨고 수년 전에 페레올 주교님도 명하신 적이 있어 그동안 모아놓은 사료는 제법 된다.

“선교사들 편지가 첫째니 그게 집중되는 곳으로 가야겠지.”

“그래서 말씀인데 대표부가 어떨까요. 거기라면 5개월 안에 될 것 같아요.”

“거 좋은 생각이야, 잘되면 이참에 로마에도 상신해 시성식 절차 밟는 거지 뭐! 같이 가세나, 나도 함께하겠네. 아무렴 프랑스 말은 낫지 않겠나?”

내 얼굴이 홍조를 띠었는지 메스트르 신부님의 음성이 고조 되었다.

“좋아, 순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을 전하는 것도 못지않지. 나도 조선 소속 아닌가?”

“주무를 신부님이 해주시면 보조로서 부지런히 해볼게요. 무엇보다 대건의 순교를 보고해야겠어요.”

“왜, 자네 친구라서?”

“조선이 첫 사제 아닙니까, 1번부터 순교로 출발한 자랑스러운 겨레 아녜요?”

“허, 최 부제 눈이 반짝이는데. 물 만난 고기 같아!”

조선 입국까지를 보고 변문에 온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동항으로 돌리는 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조선교회를 위한 몫을 찾았다. 더 늦기 전에 창립일 부터 현재에 이르는 순교 역사를 정리해야 한다. 생생한 증언들을 재취해 놔야 한다. 성경도 그렇지 않은가, 만약 예수님의 부활승천 후 아무 말씀도 남겨놓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리 두고두고 읽어도 코허리가 시큰해 오는 지금처럼만 같을까, 장담하지 못할 일이다.

우리가 홍콩까지 가는 데는 뱃길이 한결 나았다. 상해를 거쳐 홍콩까지 한 달이면 족하다. 10년 전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님을 따라 유학길에 올랐을 땐 북만주 마가자와 서만자까지 돌아 대륙을 종단하는 바람에 반년이나 걸렸다. 이렇게 쉬운 뱃길을 왜 몰랐을까.

변문 지척인 동항에는 상해 배가 없어 일단 장하까지 더 내려가야 했다. 거기서 상해 가는 거리의 곱절을 남하하면 곧 홍콩이었다.

우리는 배 위에서 두꺼운 옷을 하나씩 벗어갔다. 중국이 과연 큰 나라임을 실감케 하는 영하 30도에서 영상 20도로의 이동, 이제 옷이라고는 적삼 홑옷밖에 남지 않았을 때 멀리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홍콩 좀 봐요. 제가 소팔가자로 간 1842년에 영국령이 되었으니, 5년밖에 안 되었는데요?”

“엄청 커질 모양이야. 동서양이 만나니 세계의 도시라 불리겠구먼. 우리 회 대표부도 이사 왔잖아. 며칠 안 됐지 아마?”

“이젠 마카온 갈 일 없겠어요. 영국이 뜨는 해 같아요.”

“아무튼 순교자 행적 정리하긴 그만이겠어. 귀찮게 할 것도 없고.”

홍콩 본토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삐쭉 산 하나만 솟았지 대륙 쪽에 붙은 구룡과 함께 발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거대 자본이 들어와도 손바닥만 하다는 지리적 한계가 있다. 영국의 야심 안에 구룡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 둘 사이엔 큰 강물처럼 ㅈ\보이나 분명 바닷물이다. 좁긴 해도 해심이 깊어 대형 선박도 드나들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라 들었다. 이 해협을 끼고 한창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데 머잖아 층층이 등롱이라도 밝힌다면 홍콩의 야경은 장관일 것이다.

파리 외방 전교회는 발 빠르게 마카오의 극도대표부를 이곳으로 이전했다. 포르투갈이 갈수록 귀찮게 군 것도 있지만 대세로 볼 때 영국령이 나았을 것이다.

우리가 대표부에 도착했을 땐 어지간히 이삿짐도 정리된 상태였다. 본부 신부들과 직원들은 먼 데서 초라하게 돌아온 식객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곧바로 조선교회사 편찬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품 속 깊은 곳에 보물처럼 아껴두었던 만년필을 꺼냈다. 금속 펜대 안에 잉크를 저장하는 기술이 가능케 되었다며 르그레주아 신부님이 주신 프랑스제 만년필, 당신도 달랑 하나인데 길에서 보낼 내게 요긴할 거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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