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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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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2) 날짜 2015.06.30 17:22
글쓴이 관리자 조회 245

“최 부제 잘 돼가?”

“아직 기해년은 들어가도 못했어요.”

메스트르 신부님과 함께 빅토리아 산에 오르는 중이다.

“막히는 거 있으면 얘기해? 나도 조선말 막히면 물어볼게.”

10여 년 전 마카오 신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나 줄곧 붙어 다닌 우리는 눈빛 하나로도 알아차릴 만큼 익숙하다. 연령 차야 열세 살이지만 장시간 같이 있어도 부담 없는 사이가 되었다.

산허리를 돌다가 쉬어 앉은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성내부터 내려다본다. 아시아 선교사들의 중심지인 홍콩은 과연 사료수집의 최적지였다.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할 최고급 문구들이 즐비했다. 의식주도 동서양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가로 말하면 거대한 음식 전시장이요, 다문화가 공존하는 홍콩만큼 세련된 의상도 보질 못했다는 메스트르 신부님식 평가다. 옥에 티랄까, 딱 하나 여름이 무덥다는 것인데 아열대 기후만 빼고는 별천지가 따로 없다는 말씀이다.

나는 오랜만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필 조선교회 창립과 정을 요약했고 그 안에서 하늘의 섭리와 인간 측의 노력이 오묘히 교착되는 지점도 간파했다. 그런 대목에서는 아! 하는 탄복이 절로 나온다. 참으로 특별한 겨레가 아닐 수 없다.

여느 나라들은 선교사로 인하여 종교가 시작되었다.

종교학적으로 볼 때 어떤 지역에 종교가 개시되었다고 볼 수 있는 조건은 세 가지인바, 첫째는 교리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교리를 따르는 무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일단의 조직까지 생겨야 비로소 종교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784년에 창설되었다고 할 수 있는 조선 천주교 교단의 유일무이함이란 서적이라는 고상한 매개체를 통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세계가 주목할 만한 자랑이 아닐 수 없음이, 진리는 자체의 생명력으로 날아와 조선이라는 땅에 싹을 틔웠고 날로 울창해지는 그늘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열매까지를 향수케 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그의 요청이란 이 생명 대사에 봉사할 교역자들을 탄원케 했으니, 보편교회 쪽에서 보자면 미지의 땅에서 일꾼들을 파견해 달라는 그 경탄할 편지였다. 세상 어느 구석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조선이라는 땅에서 순교자까지 냈다는 보고서였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라는, 참혹하면서도 강력한 부르짖음이 교황청에 날아든 것이다. 당시 이 편지에 눈시울을 적신 포교성 카벨라리 추기경이 차기 교황에 선출되는 대목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 구세사의 오묘함이란 극동의 잦은 반도를 위하시는 지극하신 섭리와 또 조선의 강한 자생력이 빚어낸 공동작품이었다.

카벨라리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되었을 때 교구 창설은 문제도 아니었을 터, 미지에서의 사목보고는 이렇게 정식으로 펜을 놓고 있다. ‘우린 마치 성사에 주린 젖먹이 같습니다. 시급히 보내주십시오. 양육할 성직자를. 수천의 젖먹이가 아사 직전입니다. 그러나 항구히 보내주십시오. 일회성이라면 사절하오니 또다시 한 끼 먹다 죽을 바에는 이대로 죽는 편이 낫습니다. 시급히 그리고 항구히!’

그리고 1831년 9월 9일, ‘어디에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편지라면 거꾸로 쫓다 보면 발신처에 닿을 것이 아니겠는가?’하며 혈혈단신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전설 같은 자원 위에 조선교구가 설정된다. 비록 첫 주교는 교구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정신만은 마음으로 길로 이어져 줄줄이 선교 행로를 바꾸게 했으니, 그래서 입국하신 분이 모방 신부이다. 우리 세 명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 보내주신 분, 여기부터는 역사라기보다는 생생한 추억이다. 나는 시간과 공간 안에 선교사들이 보내온 사료들을 하나하나 끼워넣었다. 이는 세계사 속의 조선사라는 씨줄에 도처에서 일어난 치명기사를 날줄로 삼는, 일종의 옷감 짜는 일과 비슷하다.

기해년 치명자 중에는 구면이 많아 정하상 바오로 같은 분의 음성은 귓전에 또렷하다. 10여 년 전 유학길에 의주까지 따라오시다 압록강변에서 이별할 때였다. “최 신학생님! 이렇게 신학생님이라 부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최 신학생님이 사제가 되어 귀국하실 때까지 저희가 부지할 수 있을까요? 부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숙부 정약용 사도 요한의 시대는 책에서 진리를 만났습니다. 신학생님 대에서는 살아있는 성사 안에서 만나 뵙기를 염원합니다.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가련한 교우들입니다.”하고 어른이 숙여 작별을 고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대건의 손을 쥐었었다.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기사는 다른 순교자들보다 간단히 쓰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의 최후 모습이 폐부를 찔러들었다. 그것은 곧장 몸으로 파고드는 비수 같았다.

신유박해의 쌍 백합꽃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의 순결하고도 영원한 순애보, 제보자들은 이러한 동정 부부야말로 세계 역사상 독보적인 예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병오박해의 순교자들, 이제 대건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다. 으뜸 사료로는 최근 공주 수리치골의 페레올 주교로부터 바랑(J.Barran)신부에게 날아온 서한이다. 대건의 행적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들어있을 정도로 옥중서한과 현장목격 증언, 김대건 약전에다 세실 함장의 편지까지 첨부된 당지 교구장의 보고서이니 최고의 유권적 문건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함을 나는 안다. 문자로는 형용할 수조차 없는 마음의 결들이 있었음을, 수많은 결들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았음을 나만은 안다.

“최 부제 좀 쉬기도 해야지, 식사 때나 일어서고 언제 자는지도 모르게 앉았으니, 몸이 버텨내겠어?”

메스트르 신부님의 걱정스런 말투에야 골똘한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저도 모르겠어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지금까지 본 중에 제일 반짝거리는 것 같아?”

“피곤한데… 마음은 얼마나 가뿐한지 몰라요! 제 손으로 겨레들의 순교행적을 로마에 보고한다는 것이…. 가경자(可敬者:천주교 성인과 복자의 전 단계) 심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겠지요?”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결정적일 걸세. 복자까지도.”

“성인위엔 언제 오를까요?”

“사실 그분들한테야 상관없지. 본받고 살 우리에게나 의의지.”

“제 손으로 교황청에 올리는 게 떨리기도 해요.”

“자네 말고 누가 있나, 자네만 조선인 당국자 노릇을 할 수가 있네. 언어 문제가 그렇고….”

요즘 얼굴이 좋아지셨다며 신부님을 보고 빙그레 웃어본다.

“그렇지? 내가 봐도 찐 것 같아, 이러다 돼지 되는 것 아냐?”

“무슨, 더 쪄야지 정상예요.”

잠시 숨을 돌린 우리는 빅토리아 산허리를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실은 메스트르 신부님이 몇 주 전부터 물을 때마다 중요한 대목을 정리해야 된다며 미뤄오던 등산인데 이번엔 도저히 ‘다음’이란 말을 못하였다. 강권에 못 이기긴 했지만 막상 산에 오르니 신선한 공기가 심장까지 파고들다 생생한 혈액으로 온몸에 퍼지는 듯싶다.

산에는 여기저기 원시 신앙의 잔재들이 보였는데 괴목 밑에는 여지없이 촛불 굿한 흔적이고 기암절벽 아래에도 제사 음식들이 널브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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