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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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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4) 날짜 2015.06.30 17:26
글쓴이 관리자 조회 244

메스트르 신부님은 신이 났다. 손짓까지 하시면서 토해낸다.

“신부님 상당 멋지십니다, 왜 이런 얘길 지금에야 하시는 거예요?”

“오늘 산도 좋고 분위기가 되니까…. 최 부제, 이래 봬도 분위기 타는 남자야! 하! 하!”

“네에…. 소박한 영성을 말씀하시는군요. 영웅적인 선교사들에게 더 필요할지도요. 친구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오지에서, 정말 기도밖엔 위로받을 게 없고…. 커다란 일보다는 생활 속의 작은 희생을 택하는…. 바닥 쓰레기 줍는 것으로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고, 걸레질과 설거지 같은 자질구레함을 찬미로 연결시킬 줄 아는, 병이 났을 때마저 고통을 봉헌해 드릴 줄 아는 영성….”

“자네? 원래 시 좀 썼었지?”

“에이, 뭘요?”

“아니야? 대건 신부가 ‘문학소년’이라고 한 걸 들은 것 같아.”

“신부님, 저기 저것 좀 보아요!”

“야! 여기 낙조도 멋진데?”

홍콩 섬을 넘은 해가 마카오 쪽으로 떨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일탈을 했고 그것은 일상의 본질을 되짚는 시간이 되었다. 메스트르 신부님을 다시 보는 기회가 되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조용히 꾸려가는 소박함 속에 이 포악한 시대를 넘어 오래도록 세간의 빛이 되어줄 진주가 반짝였다. 생명을 바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저 생명을 캐어 빛내는 일도, 인간에게만 주어진 그 정수를 누리는 일도 못잖은 것이 아니냐는 듯 반짝인다.

“최 부제, 이제 내려가자고.”

“지극히 공경하올 교황성하! 조선교구장 고 페레올 주교가 발기 청원하고, 상기 주교가 전권 위임한 조사관 이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가 기록하였으며, 검사관 파리 외방 전교회 극동신하교장 바랑 신부가 공증한, 조선 천주교회의 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의 81명 순교자들에 대한 증거 행적을 파리 외방 극동대표부가 공식 보고하며, 아울러 위 82명을 보편교회의 가경자 명단에 올려주실 것을 청원하나이다. 극동대표 리부아 신부…아래에 관계자들의 서명이 따른다.”

박수! 와! 짝!짝!짝!짝! 홍콩 대표부 성당이 요란했다. 메스트르 신부님과 지난 6개월 가까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 작성한 조선 천주교 기해, 병오박해 82위 순교자 행적조사서가 드높은 로마에 공식으로 상신되는 순간이다. 동시, 가경자 청원이 되는 자리였다. 이럴 때 교구장 페레올 주교님이 함께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최 부제 고생했어, 잘했어!”하고 손을 잡아주실 것만 같다.

“자 자, 아래층 식당으로 갑시다. 간단한 잔치를 합시다.”

대표 리부아 신부님의 얼굴에 꽃이 활짝 펴 있었다. 1월 초 홍콩에 이사 오고 처음 정식문건을 로마에 제출하는 자리이니 작은 행사도 아니었다. 모든 직원들이 참석하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모두 아래층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간단한 잔치라고 했지만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중국 음식만해도 북방부터 이곳 광동음식까지를 망라했고, 술도 프랑스산 포도주에서 중국의 백주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시작기도는 신학교 바랑 신부님이 간단히 했다.

“최 부제… 저거 좀 봐!”

도둑 대화라도 하듯 메스트르 신부가 입을 가리며 볼품은 없으나 복판에 차려진 소박한 접시를 가리켰다.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민족을 보는 듯했다, 조선의 절편이었다. 어떤 선교사가 알려줬는지 희 절편과 쑥절편이 다소곳이…. 모국의 떡을 보는 순간 그만 피로가 씻은 듯이 풀린다. 단순하단 소릴 들을지는 몰라도 절편을 한 입 물면서는 큰절이라도 하며 파리 외방 측에 감사드리고 싶었다. 그것은 떡 한 조각이 아니라 역사적 순간에 없어서는 안 될 조선의 특별상징이다. 메스트르 신부님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나지막이 속삭인다.

“송편도 준비하려고 했는데 요즘 솔잎은 안 좋대.”

“자, 대표신부님의 한 말씀과 건배 제의가 있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관리신부의 일성이 있자 주의가 집중됐다. 리부아 신부는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바랑 교장신부님이 함께해 주고 계십니다. 솔직히 6개월 전 메스트르 신부님과 최 부제님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대표부 이름으로 올리는 문건인데 빈틈은 없어야겠고…. 열 명이 매달려도 될까 말까 한 일을 두 분이 해주셨습니다. 이는 지부가 홍콩에 이사 오고 첫 경사입니다. 여러분, 메스트르 신부님과 최 부제의 장도를 위해서, 그리고 조선 천주교를 위해서, 또 이번에 상신되는 82위의 시복시성을 위해서 건배합시다.”

건배! 나도 프랑스산 포도주에 입을 대어보았다. 땀 흘리고 난 뒤에 누리는 맛이 이런 것인가 싶다.

“메스트르 신부님도 조사단 대표 자격으로 한 말씀 하십시오.”

메스트르 신부님은 당황해하며 입을 열었다.

“저야… 형식적으로만 주무였지 일은 최 부제가 했습니다. 한 가지 우리 회로서도 영광스러운 점은 이번에 앵베르 주교님, 모방, 샤스탕 신부님도 청원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로서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자, 우리 전교회를 위해서도 건배합시다. 위하여!”

위하여! 살다 보면 이리 기쁜 날도 있는가, 대건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영원한 벗의 증거 행적을 손수 교황청에 보고할 기회였다. 그러면서도 수고했다는 말들이 요란하니 이런 날도 있는가 싶다.

“최 부제 수고했네, 너무나 잘해줬어!”

“아닙니다. 대표신부님, 오히려 조선의 역사를 정리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리부아 대표신부님이 메스트르 신부님을 보았다.

“과로하셨을 텐데 좀 쉬셔야지요?”

“쉬더라도 조선에 들어가 쉬어야지요.”

“다른 계획이라도….”

“그러지 않아도 내일 보고드리려 했는데 일단 말씀부터 드리면, 최 부제와 저는 칠월 하순에 떠납니다. 신부님도 라피에르 대령 알지요?”

“아, 그 키 작고 뚱뚱한 사람?”

“홍콩에서 물자를 싣고 조선 연안을 돌아본답니다. 최 부제와 상의하기를…이참에 입국 방법을 살피고, 없다면 지도라도 그려올까 합니다.”

“지치셨을 텐데 바로 출항입니까? 건강이 걱정입니다.”

“배에서 쉬면 되지요. 어쨌든 홍콩은 뜹니다. 입국 못해도 상해로 가려고요, 여기보다 조선이 20일 거리나 가깝습니다. 저희가 신세만 지고 가네요?”

“신세라니요, 교황님 보시기에 저도 놀고 있지만 않다는 걸 보여드렸으니,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참, 프랑스는 심해지나 보지요? 잘 아시겠지만 시민혁명군이 저대로 가면 내년 2월이 고비랍니다. 그리고… 강남교구장 말입니다. 베지 주교님, 본국에 들어가신다는 소문이던데….”

“전… 모르는 일입니다.”

“아셔도 모른다고 해야겠지요.”

“허 허!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아무튼 영육간의 강건하심을 빕니다.”

“꼭 알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요. 대표 신부님의 기도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시아 인사권자시니까 조선에 좋은 분들 부탁합니다.”

“아무렴요, 페레올 주교님도 늘 그 부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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