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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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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5) 날짜 2015.06.30 17:28
글쓴이 관리자 조회 307

천주강생 1847년 7월 28일

홍콩 부두에는 극동대표 리부아 신부님이 배웅 나와 있었다.

“그래도…홍콩이 우리 회원들 집이니까, 언제고 환영입니다.”

“상해에서 대기하는 것이 낫습니다. 강복 주십시오!”

나도 메스트르 신부님을 따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극동대표가 공식으로 주는 파견 강복을 받고 싶었다. 살짝, 리부아 신부님은 우리 머리 위에 손만 얹었지만 온 마음이 담겨있다.

“라피에르 씨, 우리 메스트르 신부님, 최 부제님 잘 부탁합니다.”

“걱정을 붙들어 매슈. 성교회의 성직자님 아닙니까?”

키는 작지만 완력이 있어 보이는 라피에르 대령이었다. 솔직히 해군제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메스트르 신부님도 극동대표도 이번 라피에르의 항해 목적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배를 얻어 타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라 아예 입도 뻥긋 못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군사기밀이기도 하다.

글루아르호가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 동안 우리는 속도감에 빠져있느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메스트르 신부님, 우리 몇 번째 탐색여행인지 아세요?”

“젊은 자네가 기억하겠지?”

“해로는 처음이지만, 다 합치면 네 번째예요.”

“알면서 왜 묻는데….”

“모두 신부님하고만 다닌 거예요. 정말 대건이 외엔 신부님하고 제일 많이 다녔네요.”

“갑자기 왜, 내가 싫어졌어?”

“에이 신부님도, 설령 싫어도 제가 어디 싫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어라, 뉘앙스 봐라. 싫다는 것보다 더 무섭네!”

“조선말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뭐를?”

“싫으면…시집가래요!”

“너, 이 양업이!” 도망치듯 입을 샐룩거리다 그냥 말았다. 애교라는 것도 타고나야 하나 보았다. 그래도 붙어 다니려면 이렇게라도 생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조선에서도 같이 다니면 좋겠어요. 제 나라니까 잘해드릴게요.”

“최 부제 말이 고맙네, 나이 든 사람 잘 대해줘 고마워요. 복 받을 거여!”

라피에르 선장의 글루아르호 전함은 함체 자체가 달랐다. 견고함은 차치하고라도 여느 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쏜살같았다. 보름이 넘자마자 작은 섬들이 군락 지어 있는 곳이 벌써 조선의 해안인 듯하다.

‘푸찌지직 쿠앙.’

“암초에 걸렸다.”

“비상! 전 병력 비상위치로!”

“좌초됐다!”

“제기랄, 뭔 날벼락이야, 아무것도 없었는데 웬 암초야!” “죄송합니다. 함장님.”

“아니야 일등, 나도 못 봤어. 나도 젠장!”

라피에르 함장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 위용 있던 군함이 꼼짝 못하게 되었으니 이제까지는 없었을 일, 조선 연안은 다른 모양이었다. 하기는 올망졸망한 섬이 대체 몇 개인가, 족히 10개는 넘어 보인다. 이 작은 섬들이 바다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암초가 도사릴 것인가, 거대한 배일수록 조심해야 했다. 해저산들이 일대를 학의 날개처럼 포진하고 있는 근해였기 때문이다.

함장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는지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마구 욕을 해댔다.

“제기랄, 뭔 귀신의 조화야 그래? 조선 바다엔 척화귀가 곤다더니, 내가 일이 년 탄 배도 아니고 이게 뭔 지랄! 암초 하날 못보다니.”

“서해 용왕한테도 척화제를 올린다잖아요, 세실 함장님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라피에르 대령은 제기랄을 연발했고 리고 소령은 언젠가 세실 소장이 들려준 소위 조선 바다의 ‘귀신 조화’를 부연하는 중이다. 군인들치고는 미신도 겁도 많아 보인다.

“리고 소령 이를 어쩐다냐?”

“종선한테 상해에 구조 요청시키고, 우린 당장 저 무인도에도 상륙해 하중을 덜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 자네는 상해 공병부대를 맡아, 나는… 아, 마침 옆에 계셨었네.”

라피에르는 그제야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완전 좌초입니다. 대 프랑스 전함이… 젠장 망신살 뻗쳤습니다. 그건 그렇고 최 부제님에게 묻고 싶은데… 국제법상 외국에 좌초된 배는 당지 관할기관에 보고하게 돼있소. 그래야 보호도 받고 비상식량도 얻을 수 있으니까. 대체 여기가 어디인 것 같소?”

“충청도는 아니고 더 밑으로 내려온 것 같아요.”

“더 밑이라면….”

“전라도 해안일 거예요…. 저 밑이 변산반도라면 군산이….”

라피에르는 갑판 쪽으로 걸음을 떼면서 말하였다.

“아무튼 저 섬에라도 상륙해야 합니다. 다른 배 같으면 구멍 났을 겁니다.”

“모두가 내립니까?”

라피에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최 부제님, 조선 측에 좌초 경위서를 써야 하는데….”

“제가 할 수 있어요. 조선은 중국말도 통해요.”

“속히 한 장 부탁하오.”

라피에르 함장은 말을 마치자 뒤로 돌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장교들 다 모였나, 배 밑창에 부담 줄 만한 것은 다 내린다!”

실시! 장교들이 병사들을 독려하자 좌초된 지 한나절 만에 육중한 무기류들이 대충 섬으로 옮겨졌다.

“섬에서 천막 치고 지낸다. 언제까지 될지 모르니 단단히 칠 것!”

아무래도 라피에르는 세실 장군의 위엄엔 미치지 못하는 데가 있다. 그 어수선한 명령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을 보며 나 역시 천막을 얻어다 메스트르 신부님과 함께 설치하는 중이다.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우리야 객이니 안전한 게 우선이고, 얼마간 이러고 있다 정말 하늘이 돕는다면….”

“네, 육지로 들고 싶어요.”

“함장이 문젠데, 여기 일은 다 그이 책임인데….”

“때를 봐야겠어요.”

그렇게… 우리가 비상 상륙한 지도 닷새가 지나고 있었다.

나는 메스트르 신부님에게 섬 이름은 고군산도(古群山島)이고 군산의 앞바다라는 보고를 드리며 손만 뻗으면 잡힐 듯 가까운 만금지역의 갯벌을 보았다.

“군산이라… 그래 천주교 동태는?”

우리는 주위를 살피며 작게 말을 주고받았다.

“전주 감영 포졸들이 사방에 깔려 접근조차 못해요. 섬 이름도 지나가는 고깃배에게 슬쩍 들은 거예요.”

“함장이 그러던데… 한양 관리가 다녀갔다던데?” “저번 경위서가 중앙에 보고됐을 거예요. 곧 식량과 식수도 오겠지요.”

“자넨 어쩔 것인데?”

“오늘도 내일도 육지 방향에 가보려고요. 혹시 교우들 만날지도 모르니까. 우릴 맞이할 사람들이 올지 몰라요.”

“라피에르 씨가 알면 허락 않을 텐데….”

날이 지날수록 조선 교우들과 연락하고 싶었으나 해안선에 망루를 세우고 외국배를 감시하는 포졸들은 하루 한 번의 식량수송만 허가했다. 야음을 타 혼자 앉은 배로 해안 가까이 가보려는데 문제는 조선교회 쪽에서 이번 건을 어떻게 보느냐이다. 아직까진 미동도 없다. 섣불리 행동하기도 어려울 것이 만의 하나 발각이라도 된다면 또다시 전국적인 박해일 것이다. 내 맘대로 행동할 수 없는 이유이다.

밤마다 연안을 기웃거려서라도 우선 교회 사람을 만나보려고 했으나 며칠째 거룻배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라피에르 함장의 호출이 있었다.

“군삼 현감이 협상을 해왔소. 함께 가서 통역 좀 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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