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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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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6) 날짜 2015.06.30 17:30
글쓴이 관리자 조회 244

어떡하든지 외부인들과 접촉을 해보려던 차에 뜻밖의 함장의 부탁은 아주 고마운 것이었다. 협상은 일종의 상견에 불과했는데 문건 하날 작성하는 정도. “왜 이곳에 왔느냐?”하는 질문에 돌풍에 밀리다 암초에 걸렸다고 했고 “언제 떠날 것이냐?”엔 며칠 후 상해의 구조대가 빼주는 대로 뜰 것이라고 했다. 그런 후 현감이 ‘조선에 대해 좋게 말해줄 것’을 당부하는 정도, 완전히 형식적인 것은 한 시간도 못 되어 끝이 났다. 조국에 와서도 모국어를 쓸 수가 없어 현(縣)측에서 나온 역관을 통해 소통해야 했다.

그러고는 섬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군산 현감이 잡아준 배에는 서너 명의 사공이 있었는데 이도 기회다 싶어 그중 제일 천주교인 같아 뵈는 사람에게 무작정 다가갔다. 밤은 칠흑같이 어두워 갔고 파도소리에 곁에서 대화하는 것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조선에도 종교란 게 있소?”

“….”

그 사공은 살짝 고개만 끄덕이는 체했다. 손바닥에 부러 한문을 써가며 거의 필답 수준으로 대화하다 넌지시, 전혀 상관없는 투로 본론에 툭 들어갔다.

“혹시 천주교를 아시오?”

“….”

대답은 없었으나 순간 어둠 속에서도 그의 얼굴이 달아오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대공소라는 교우촌의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던 것이다. 뜻밖에도 왈, 좌초된 곳을 떠나기 전날 밤 일단의 천주교인들이 거룻배로 접근하겠다는 귀띔이질 않는가. 그냥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아니요 치밀히 파견된 연락원이었다. 조선교회가 예의 현장을 주시해 오다 마침내 사람을 보내온 것이다. 어떻게 이런 배의 사공 자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세례명은 안드레아였고 페레올 주교님이 보낸 밀사였다. 쫙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2년 전에야 뵈었던 나의 교구장님, 그분의 대리자이니 드디어 조선땅에서 조선 교계를 조선의 유일한 성직자가 만나고 있음이었다. 슬쩍 이 사람만 따라가면 만사형통, 수년간의 염원이 일시에 이루어진다. 그의 얼굴에서는 주교님의 상마저 아른거려 막 ‘주교님은 어ㄸ십니까? 전 최양업입니다.’라고 안부하고 싶은 충동이 일려는 찰나, 방해자가 나타났다.

“아니 거기 뭐 이야기가 찡한가, 둘이 아는 사이요?”

사공들의 연장자쯤 되는 사람이 우리 사이에 껴드는 바람에 판은 산산조각 나고 화들짝, 정색하며 돌아앉을 수밖에 없었다.

“알기는요, 중국말을 할 줄 알아 서로 해보는 체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도 끼어주지.”

하며 찰거머리처럼 우리 사이에 눌러앉는다. 크지 않은 배에서 더 이상의 밀어가 오간다는 것은 물 건너간 일이다. 나는 야속하고 속이 탔지만 며칠 후 라피에르의 배가 떠나기 전날 “그 밤에 신자들의 배가 접근할 겁니다.” 귓전에 도는 이 안드레아의 끝말만 잉잉 되들어야 했었다.

천주강생 1849년 2월 초순경

오늘은 일기장에 필히 몇 자 적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대 사항이 둘이나 된다. 첫째, 드디어 나의 사제서품일이 결정되었다. 올 부활 2주일이라면 두 달 남짓하다. 사제로 탄생됨이 무엇보다 기쁘다. 남들보다 4년을 더 준비했건만 부족하기만 하니 자비로우신 분께 전적으로 의탁하여 한다.

둘째는 바로 재작년 고군산도의 글루아르 호 좌초에 연속되는 소식이다. 오늘 조선에서 온 기별에 의하면 그날 밤, 라피에르의 배가 떠나기 전날 밤에 신자들의 배가 접근할 거라는 안드레아의 말은 정말 실행되었다고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이종사촌형이 거룻배로 와서 밤새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시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던가.

아무도 생생한 기억과 오늘의 소식을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은 결론이 나온다.

“방해꾼 때문에 중단했습니다.”

“거참…. 그런 마귀가 꼭 있다니까?”

“안드레아, 그 양반 몇 살 되어 보였나?”

“한… 이십 대 중후반요?”

“말구, 최양업 부제님이 올해 몇이지?”

“거시기 21년생이니까, 저보다 세 살 어리고잉… 스물일곱 살이제잉.”

“키는?”

“보통예요! 다섯 자 반가량?”

“얼굴 생김새는?”

“맞다, 김말구 씨와 비슷해요!”

김 마르코는 나의 이종사촌형이다.

“오호, 우리 부제님이네! 어릴 때부터 겁나게 닮았다 했으니께잉.”

전라도 부안군 변산면의 대공소였다고 한다.

대공소회장은 프랑스 군함이 좌초되었다는 소식을 충청도 수리치골에 급보했었다. 페레올 주교는 ‘각별히 조심하되 혹 선교사들이 타고 있다면 배가 떠나기 전날 야음을 틈타 데려오라.’고 회신했다. 바다에 뛰어들게 해도 무방치 않겠냐는 부언까지 달았다.

“그런데 자네, 그이랑 어디까지 이야기했나?”

“마지막 밤 우리 배가 접근한다는 것까지요!”

“바닷물에 뛰어들란 말은?”

“그 작자 때문에,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이를 어쩐다?”

“회장님! 이번엔 말이지라, 지가 가보겠습니다잉.”

이종사촌형 김 마르코가 나섰다. 사촌동생 부제가 타고 있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 사람 더 데리고 접근해 보겠습니다잉.”

“붙잡히면? 감시가 심할 텐데.”

“양놈들 돈 될 거라도 떨어뜨렸나 해서… 라고 해브릴 작정입니다잉. 겁나 꼬여도 열흘 옥살이면 되겠지잉.”

“그 수밖엔 없겠네. 준비물 챙기게, 잘 뜨는 부표 하나 줄에 묶어.”

“걱정을 말랑께요. 물질깨나 하는 사람이 있지잉….”

“닷새 안이 고비니 대기들 하세나.”

결국 대공소에서 일을 맡았다고 한다. 고군산도에서 가깝고 인근 사정에 대해 훤한 주민들이다.

“최 부제만 나가겠다고?”

당시 상당히 긴박했었다. 온통 마지막 밤에 관한 일로 바짝바짝 애태우는 나를 보고 메스트르 신부님도 걱정이셨다.

“네… 발각되는 날엔 너무 위험해요. 저야 둘러대면 문제없어요.”

“보초가 많을 텐데?”

“해서 밤을 택했겠지요.”

“신자들 배가 나타나면?”

“저어….”

“왜?”

“제가 흥분상태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이야기해 봐!”

“신자들의 배라면… 바닷물에 뛰어내려도 상관없어요. 어느 정도 헤엄도 치고, 신자들도 도와줄 것이고….”

“이거 자네… 점점 대건 신부 닮아가는 것 아니냐?”

“대건이 같으면 여태 이러지도 않았겠지요.”

“어쨌든… 페레올 주교님의 언지가 있으셨겠지?”

“글세, 그걸 못 들었는데… 그래도 이 방법이 안전해요. 포졸들한테 걸리면 실족했다 하고…. 조선교회에 피해 줄 건 없어요.”

“그쪽도 여기만 보겠네. 우리 짐 싣는 거랑 승선하는 거랑.”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기회에 들어가야 한다. 코앞에 겨레가 있다며 대답 대신 어금니를 깨물었다.

“저거 보셔잉, 보이지라?”

“양인들 허벌나게 움직이네. 천막도 죄 걷는 걸 보면 낼 아침 떠날 모양인지라.”

“그렇담 오늘이제!”

“준비물은?”

“이게… 작지만 제일 잘 뜨는 부푠데 어둑어둑 옻칠도 해놨지라. 갈아입을 옷가지와 떡 몇 덩이도.”

“잘했브렀어!”

세 명으로 구성된 일명 ‘고군산도 선교사 영입 해상부대’였다. 이종 김 마르코가 대장이고 며칠 전 필담을 나눴던 안드레아 외에 앳된 얼굴은 필립보인데 물질로 사는 사람이었다.

오후가 되자 대원은 부둣가의 국밥집을 찾았다.

“대사는 대산가 보군, 국밥을 다 먹어보게잉.”

“얼마 만의 기름기야, 막걸리 한 잔이면….”

“시방 모라고라, 일 앞두고 뭔 거시기한 소리여?”

일찍 저녁을 먹고 변산 바다에 배를 띄우면 완전히 어두워질 때쯤 고군산도에 닿을 것이다.

“저기 있네, 저기들!”

그때였다고 했다.

국밥집 문을 열고 대공소회장이 처음 보는 남자를 대동하고 들어섰다. 출발 인사도 마쳤는데 다시 찾는 걸 보니 필시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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