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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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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7) 날짜 2015.06.30 17:31
글쓴이 관리자 조회 416

“이보게, 말구! 이분은 수리치골에서 오신 주교님 복사시네.”

“근데 왜…주교님이 전하실 말씀이라도?”

급한 말부터 토해내었다.

“엊그제부터 낌새가 안 좋다고…. 잘못하다간 군란이라 하시며… 이번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하십니다.”

“모라고라? 준빌 다 했는디?”

“그게… 한양이 아주… 심상치를 않습니다. 일이 틀어지면 비교도 안 되게 실이 큽니다.”

“주교님 말씀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라.”

팽팽했던 긴장감은 서리 맞은 푸성귀마냥 축 늘어져 버렸다.

“그래도 주교님 말씀이 각별히 조심만 한다면… 멀리 보는 것은 괜찮다 하셨습니다. 절대로! 가까이 접근하진 말라고. 아무리 어두워도 백 미터 안엔 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알았당께라. 확실한 상황이 아니믄, 일을 벌이지 않겠습니다잉.”

“그럼, 형제님만 믿습니다.”

그 시각, 나 역시 평소보다 다부져 보이는 라피에르만 살피고 있었다. 입을 열기 전에 마음속으로 먼저 가상 상황을 전개해 보았다.

‘함장님, 제 나라이니 저는 여기에 남으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까?’

틀림없이 라피에르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또 언제 오게 될지 모릅니다. 잔류하게 해주십시오, 네?’

안 되는 줄 알면서 간청해 보았자

‘아니, 절대 안 됩니다. 눈이 몇 개인데요? 저 망루에 조선 포졸들 안 보입니까? 나중에 외교문제 생기면 골치 아픕니다. 좌초된 것만 해도 문책감인데…. 군법회의에 내가 회부되오!’

라고 할 것이 뻔하다.

‘함장님, 제발 부탁입니다.’

아예 어린애가 되어 생떼를 써보아도

‘아니 왜 이러십니까? 아실 만한 분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오.’

라고 백이면 백 거절당할 일밖엔 없다.

해변에 그대로 드러누워 바위라도 끌어안고 버티고 싶다. 떨어지지 않는 발은 천근만근 도대체 한 발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사병, 최 부제님 부축해 드려라, 많이 불편하신가 보다!”

함장의 지시에 두 명의 병사가 따라붙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축이 아니라 양 겨드랑이를 결박해 드는 강제연행이었다.

어두움은 금시 내리깔려 황해의 노을인가 싶더니 이내 캄캄해진 저녁, 나는 감판 위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보초병과 마주치면 주머니 속 묵주만 급히 돌려댔다. 이대로 떠나버리면…. 언제나 와볼 것인가, 초조한 끝에 오금이 저리고 사타구니도 뻣뻣해져서는 소변이라도 지릴 것 같다. 애간장을 끊어내는 내 겨레 조선땅.

“최 부제님, 이리 와 포도주 한잔 합시다.”

함장이 직접 잡아끄는 손이 반강제적이다. 아무래도 못 미더웠던 라피에르는 아예 함장실로 끌고 가려 했다. 거기엔 이미 메스트르 신부도 와있었다.

“함장님, 속이…몹시 안 좋아서…갑판이… 나을 것 같아요.”

나도 양보할 수가 없어 기어코 함장실을 빠져나왔다. 라피에르가 수하에게 ‘잘 지켜보게!’라는 뜻으로 턱짓을 하자 동시에 병사 둘이 또 붙었다. 메스트르 신부님은 넋을 놓고 그저 앉아만 계셨다. 모든 상황들이 한눈에 들어왔을 테고 무엇보다 내가 그러는 모습을 처음 보고서는 당신도 이때부터 울컥하셨다고 한다.

“말구 대장 백 미터 이상은… 안 됩니다.”

“아따 알았당께!”

망망대해, 아무도 없었지만 귓속말로 하려고 했다.

“아이고! 이렇게 멀리서 도대체 뭘 어쩌라는겨? 부제님이 횃불로 만세라도 불러야 눈에 띄겠는디잉….”

“백 미터 밖이라면 사실상… 다음 기횔 보라는 거 아니겠어요?”

“워메 이거 우짠다야. 우리 부제님, 이 일을 어찌아스까나! 월매나 맘을 졸이실까그래, 아이 참말로….”

이종형은 엉엉 울어버렸다고 한다. 어린 나이로 고생만 하다 왔는데 발만 구르다 갈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으으흑… 우리 부제님!”

큰 소리도 못 내고 느끼는 대장을 대원들 역시 고스라니 견디어 주는 일뿐, 라피에르 군함의 백 미터 밖에서 선교사 영입주대 역시 별 방도가 없었다.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저 보초병이 있든 말든 바다로 뛰고 볼까. 그러려면 난간을 잡기 전에 완전히 결심을 해야 한다. 잡아채자마자 떨어지면 죽기 아니면 살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검푸른 밤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 수면 위에 비쳐줄 법도 한 대건의 모습은 전혀 없다. 대신 조선 교우들이 일렁였고 교구장 페레올 주교님의 얼굴이 스쳐간다. 하나같이 무덤덤한 표정은 마치 내 집을 눈앞에 두고도 남의 배에서 냉가슴만 해야하는 상황처럼 꾹꾹 다물고 있다. 홀몸만 아니라면 진즉 바다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조선에 성직자가 둘만 되어도 움직이고 봤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페레올 주교님이 어찌할까가 행동의 첫째 기준, 그런데 아무 명령도 내려주지 않는다. 주먹을 쥐고 난간을 향해 허벅지에 힘주기를 여러 번 했다. 판단정지란 말…. 판단이 서지 않을 땐 행동 역시 정지해야 함이 이 무거운 lq자가일 줄이야.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는 순명이란 글자가 굴맛처럼 당겨왔다. 밤바다에 어른거리는 주교님의 입은 여전히 닫혔는데, 난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대건아 말 좀 해줘. 네가 먼저 서품받는 것이 날 아껴두는 거라고? 그래, 그러면 언제까지 아껴둘 건데. 바로 여기가 내 나라인데….

그렇게 밤이 하얗게 새어갔다. 백 미터의 어둠을 두고 피차 가슴만 쥐어짜던 바다가 훤해져 온다. 이제 다 틀린 일 소용없는 일, 천신만고 끝에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왔는데 다시 상해로 가야 하는 어이없음이 견딜 수가 없었다. 틀렸다, 틀려버렸어! 무엇보다 신자들이 안타까웠다. 본방인 성직자가 성무해 줄 날만 기다리는 그네가 아팠다. 모진 군란 후에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동포, 생사의 공포에 매일 짓눌릴 겨레를 생각하면 당장 바닷물에 뛰어내려… 어떡해서든 육지에 닿고 싶다. 그러나…이젠 날도 새버린 틀린 이야기다.

나는 침실로 와 무릎을 꿇었다. 당시 침대 맡에 세워둔 작은 십자가를 바라보다 폭포수 같은 눈물이 터졌다. 소리도 못 내는 눈물은 두두두 둑! 소나기 떨러지는 소리만 냈다. 뜨거운 김과 함께 급히 솟다 축 늘어지는 어깨의 반복뿐이었다는 메스트르 신부님의 회고이다.

저의 큰 탓입니다.

천상의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인간적인 희망에 너무 의존하여

그것이 무수한 죄가 되어

그것이 무수한 장애가 되어

당신 자비의 길을 가로막았나 봅니다.

저로 인함입니다.

본시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 외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당신의 작품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이 몫으로

내 민족에게

자비의 길을 열어주소서.

제가 당신 분노의 원인이라면

저를 던져주소서.

바다 속 깊숙이 내던지시되

이 사람들은 살려주소서.

사람들에게 받을 치욕밖엔 없는 몫으로

겨레의 참상을 불쌍히 보소서.

겨레의 참상을 불쌍히 보소서.

저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십자가만을 배울 것이요

십자가만으로 아드님 고난의 잔을

마저 채울 것이니

마저 받을 멸시와 퇴박으로

제가 복되다

제가 복되다

진복되다 할 것입니다.

“최 부제…."

어느새 메스트르 신부님도 옆으로 와 무릎을 꿇었다. 내 어깨를 감싸던 손이 움찔했는데 불같은 체온에다 진땀으로 미끈대며 경련하는 몸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 부제…. 메스트르 신부님은 대답 없는 이름을 또 불렀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자신도 막아보려 했다. 이미 복받친 것은 목을 타고 우욱 목젖까지 올라와 간신히 틀어막고 있는 손을 밀쳐내려 했다. 그 역시 이번 기회가 얼마나 좋았던가를 모르지 않는다. 실제 조선의 섬에 보름이나 머물렀지 않았던가. 오열을 누르느라 우린 한참을 그러고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래도 스승이셨다. 연장자가 어떻게든 위로해야 한다고 여기셨을 것이다.

“최 부제… 나는."

“…."

"전에는 희망이란 것이…."

“…."

“힘겨운 현재를 견디게 해주는 것인 줄 알았어….”

“…."

“그런데 이런 일 저런 일 겪어보니…."

“…."

"그게 아니더라!“

“…."

“오히려 힘겨운 현재를 잘 참아내면….”

“…."

“그게 썩을 대로 썩어서….”

“…."

“거기서 희망의 싹이 나오더라고!”

“…."

“인내의 때가 차니까.”

“…."

“희망이 솟더라!”

“…."

메스트르 신부님은 계속 떠듬거렸고 나는 묵묵히 들었다. 흔히 세인들은 ‘희망 하날 보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먼저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내니까 희망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기적 같은 변전(變轉)이 없는데도 싹튼 것이야말로 허황되지 않은 복음적 희망이 아니겠냐는, 한마디로 준비되니까 하늘께서 주시더라는 말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에게서나 나올 법한 위로였다.

나는 모든 말을 잠자코 들으려 속으로만 대답해 드렸다.

아녜요 메스트르 신부님, 하루 반나절 거리가 고향산천이라서가 아니었어요. 유학 때 쫓아 나오던 동생들의 눈망울 때문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조선 성직자를 기다릴 교우들 또한 주인은 아녜요. 제 인간적인 희망에 당혹하셨을 하느님 때문예요. 친아드님같이 준비된 분도 33년을 기다리셨는데 고작 11년 애원해 놓고 조선 땜에 몇천 년 아파하신 아버지께 졸랐으니, 설익은 것을 따달라고 보챈 꼴 아니겠어요.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한 가지 지향으로 10년, 20년, 30년, 40년 혹은 더 오랫동안 열렬한 기도와 힘든 극기와 그 지루한 보속을 바칩니까. 만물이 모두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하게 큰 고난을 참아 받은 다음에 열매 맺도록 미리 정해두셨는데, 앞선 제 인간적 바람이 혹 자비의 길을 막지 않았나 하여 나온 눈물예요. 이제 됐어요. 우리 계획은 성공치 못했지만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아요.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없는 몫임을 확인함에 저는 됐어요. 죽어 없어질 것들이나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는 생각 다져가는 것으로 고군산도는 됐어요. 신부님, 그리고 이 눈물은 아직 제 젊은이 다하지 않았으려니 넘겨주십시오.

그 무렵 ‘이 역시 하늘의 뜻이라면…’이라는 말씀이 조선 쪽에서의 태양과 함께 솟아올랐다.

다음날을 기약하는 듯 글루아르호도 일출을 등지고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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