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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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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최양업(8) 날짜 2015.06.30 17:34
글쓴이 관리자 조회 493

천주강생 1849년 4월 15일

“최 신부, 서품 축하해!”

“성인 신부님 되세요!”

“조선의 두 번째 사제 탄생하셨네!”

“첫 강복 주세요!”

“많진 않지만 작은 성의입니다. 기도 중 기억해 주세요.”

“나 먼저 가네…. 푹 자고 내일 보세나! 첫날밤에~ 첫날밤에~ 첫날밤에~ 첫날밤에~ 혼자 잔다네♬ 잘 자, 최 신부!”

‘상해 장씨 문중이 축하드립니다. 우리 본당에서 서품식이라니요? 장가루의 영광이요, 장량 조상도 기뻐하실 겁니다.’

‘서품 성구가 주님의 뜻대로라… 과연 자네답군, 축하하네!’

‘내가 해줄 말은 이것이네, 부디 아껴! 아꼈으면 좋겠어. 마음도 아끼고 말도 아끼고 열성도 아끼고 건강도 아끼고….’

‘최 신부님 멋집니더!’

한바탕 잔치가 끝났다.

부활 8부 축제 동안 입던 백색제의와 흰 세례옷을 벗는 날이라‘사백주일’이기도 한 부활 2주일이었다.

서품식은 오전이었지만 쉬기 위해 장가루성당 손님방에 든 시각은 저녁 8시였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곡두새벽 마레스카 주교 앞에서의 충성서약을 시작으로 서품미사 첫 강복과 축하연들, 밤이 되어서야 혼자 있을 수 있었다. 하객들이 들려준 축하와 덕담이 귓전에 맴돈다. 말씀들은 하나씩 되살아나 동그랗게 화자의 얼굴을 그리다 눈까지 마주쳤을때야 환하게 사라진다. 특히 서품식을 주례하신 마레스카 주교님의 덕담이 깊이 자리 잡았다. “부디… 아끼게나, 자네는 유일한 조선인 사제야!” 마치 하늘의 말씀이 그의 입을 통해 들린 것처럼 상서로웠다.

마레스카 주교님은 현 강남교구장 주교이시다. 남경과 상해를 관장하는 강남교구장은 얼마 전까지 베지 주교였다. 베지 주교님은 조선 신학생에게 아무 때라도 오면 주교관 숙식이 가능하다하였고 특히 손수 상을 차려주실 때는 조선에 대한 애정이 물씬 전해왔다. 언젠가 대건도 꼭 동네 아저씨 같다고 한 이 베지 주교님이 프랑스로 귀국하신 것이다. 그 자리를 부주교였던 마레스카 주교님이 맡았는데 조선에 대한 언질을 받았는지 전임 못지않게 극진했다. 재작년 고군산도에서 풀이 죽어 왔을 때부터 줄곧 나를 돌보아 주셨다. 원래 천주교는 전 세계가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성직자가 입성하면 생면부지라도 당지 주교에게 인사하게 되어있다. 주교는 능력이 허락하는 한 이방 성직자를 보살핀다. 2000년 동안 하나로 이어오는 천주교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마레스카 주교님의 배려는 관례 그 이상으로, 안전한 서가회 신학원에 머물 수 있도록 알선해 주셨다.

서가회는 ‘서씨 성을 가진 상해 천주교인 모임’이다. 일찍 이 서씨 가문을 일으킨 인물이 명(明) 청(淸) 두 황조를 풍미했던 상해 출신 서광계로 당시 북경에 와있던 서양학자 마테오 리치 신부와의 친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정치적으로도 출세한 학자의 후손들이 현 상해를 주름잡는 유지가 되어있었다. 이들이 돈을 모아 지어준 예수회 신학원에서 1년 6개월간 머물며 나는 부제로서의 마지막 수업을 받았다.

“최 신부님, 머째이, 멋집니더!” 범 요한도 서품식에 참석해 있었다. 소팔가자를 떠나고 연락두절이었는데 용케도 서품식을 챙긴 것이다. 이것이 사람 살아가는 일이로구나, 나는 고마움에 앞서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려야 했다.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것도 생각했다. 범 요한은 삼 년 전 늦가을 소팔가자에서 헤어질 때보다 안정되어 보였다. “최 신부님 진짜 멋지네예! 제가 얼마나 최양업을 신부님이라 부르고 싶었는지 몰라예.” 하는 눈은 아직 어린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요한 씨. 그래 홍홍이랑은 잘 되어가요, 라고 묻고 싶었으나 줄지은 하객들 때문에 속으로만 몇 마딜 던졌다. 그런데도 범 요한은 뭔가 알아들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도 이제 서른 살이 넘어서지 않는가. 나는 범 요한의 눈에서 홍홍의 것도 읽어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잘 되어가는지 단정할 순 없지만 어떤 청춘의 편린들을 보았다. 정해지지 않은 연분의 끈 앞에서 기웃거리는 젊음들…. 멀찍이 서성이며 딴청부리는 것 같지만 마음속은 온통 이성으로 쏠려있는 청춘의 외곬이 보였다. 사랑이란 것이 질풍노도의 힘 덩어리와 합쳐져 엄청난 기쁨으로 분출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닥 모를 깊이로도 추락해 버리는 명암분명의 시기…. 어쩌면 그리 아파서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최 신부님 항상 기억하겠습니더.” 범 요한은 말끝마다 최 신부님, 최 신부님 했다.

메스트르 신부님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참석자이다. “그럴 줄 알았네!” 하면서 서품 성구 이야기를 꺼내셨다. 천주교 신부들은 사제로 태어날 때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짧은 문구 하나를 택한다. 성경 구절이나 성구 하나라도 좋다. 난 서품 성구를 ‘주님의 뜻대로!’라고 정했다.

내가 만약 다른 성구로 했더라면 메스트르 신부님은 의아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얼마 전 우연찮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제게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뿐예요.”하고 태를 냈었다. 그랬더니 덧붙이는 말씀이, 자네의 색채는 이미 순교의 영광 속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것과는 다르다네. 다르지만 신앙의 완성 국면에서는 한가지라 하시면서 “맞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이 원의의 결과가 피를 흘리는 길이 될지 아니면 땀을 흘리는 길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네. 중요한 건 ‘하늘의 뜻대로’행하는 거지. 소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적극적인 길이란 무엇하는 것인가.”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과연 그게 주님의 뜻인가를 성찰하는 것’이란 강조를 잊지 않으셨다.

실은 더 오래전에 나도 비슷한 말씀을 드린 적은 있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들어갔던지 메스트르 신부님도 숨죽이며 들으셨다. “신부님은 어찌하실 건데요? 저는 저의 교구장 페레올 주교님이 하라는 대로 할 거예요. 해로 말고 또 육로를 모색해 보라면 다시 변문으로 가볼 생각예요. 제게 중요한 것은 교회 장상에 대한 순명입니다. 장상의 명을 통해 하느님의 듯이 전달됨을 굳게 믿습니다. 이 거룩한 순명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하였더라면, 저는 벌써 제 포교지인 조선에 들어가 있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이미 순교하여 대건과 함께 하늘나라에 있을 거구요. 그러나 저는 제 뜻대로가 아니라 장상을 통하여 명하시는 뜻이 이루어지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메스트르 신부님은 한참을 무반응이셨다.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그리 더디었음을 알려준 한마디는 날숨 끝에야 나왔다. “그래, 최 부제 그거야말로 허(虛)없는 신앙의 경륜이지.” 이때부터 내가 이런 쪽의 성구를 택하려니 짐작하셨을 것이다.

‘메스트르 신부님, 감사해요.’ 마음속 깊은 인사를 올린다. 외국인이지만 현재 가장 오랜 시간을 지낸 막역 지기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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