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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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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소팔가자의 낮(4) 날짜 2015.04.13 17:16
글쓴이 관리자 조회 185

‘대건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작년 가을 페레올 주교와 조선 입국에 성공했다는 소식 이후에는 깜깜소식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난리 통엔 더욱.’하면서도 자기만 무탈해도 되는 것인가. 벗은 사지에서 어떤 곤란 중에 있을지 모르는데, 하는 생각은 버릇처럼 묵주를 돌리고 또 돌리게 했다.

암흑천지가 된 소팔가자에 멀리 개 짖는 소리만 간헐적일 뿐 밤이 깊다. 양업은 묵주를 내려놓고 지난겨울 남기고 간 발가락 동상의 상흔을 만지다가 창가 쪽으로 섰다. 비장하게 올려다본 조선 쪽 밤하늘에는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아버지.”

낮게 아버지 별을 불러보았다.

“어머니.”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별도 불러본다.

“아저씨.”

그 옆으로 대건의 아버지인 김제준의 별이 있다.

“모방 신부님.”

자신을 신학생으로 선발해 마카오 신학교로 보내주신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님, 이분들이 모두 별이 되셨다. 세상의 것들이 다가 아니고 하늘의 것들이 있음을 분명한 빛으로 증거하셨다. 눈빛은 속일 수가 없다. 그분들의 눈은 부셨다고 했다. 고통을 당할수록 명(明)해졌고 세상의 것을 앗길수록 정(淨)해졌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도 빛나기 마련인데 ‘내 장한 겨레요 부모 형제들은 처참한 순간’ 단박에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부신 눈빛이었다는 것이다. 눈빛은 더하거나 뺄 수도 없다.

아버지 최경환은 곤장 300대를 맞으면서도 맏아들이 훌륭한 사제로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천상을 주시하면서도 지상의 아들 사제를 기대하는, 여전히 두 눈빛이셨습니까?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 처음에는 배교하셨다고 한다. 유복자를 안고 투옥되셨는데 굶주린 젖먹이의 목줄이 꺼뭇 타들어 가자 모성에 눈이 뒤집히셨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 두 번째 체포되었을 때에는 동생들을 모아놓고 이리 말씀하셨다. “희정아, 핏덩이는 하늘의 안배에 맡기자. 너희 4명은 흩어지지 말거라. 머잖아 큰형이 신부 돼서 돌아오면 다 알아 해줄 것이다.” 그러나 동생들은 되레 동냥으로 어머니에게 사식을 넣어주었다. 거기다 마지막 날 회자수에게 엽전까지 내밀며 부탁하길 “우리 어머니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해주십시오.” 하더니 마침내 어머니의 붉은 피가 뿌려지자 흰 저고리를 파란 하늘에 던지며 “울 엄니 드디어 천국 가셨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가족사는 이미 팔도에 회자되고 있다고 했다. 3년 전 대건에게 전해들을 때보다 가슴 먹먹해 오는 동생들 이야기…. 아직도 쫓겨 다닐 생각을 하면 양업은 소팔가자에서의 무고함이 차라리 부끄러웠다.

부끄러울 때마다 밤하늘의 별을 보게 되었을까. ‘어머니 아버지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내일도 거리낌 없이 살겠습니다.’ 서러우나 그 가없이 다가오는 별을 우러러 매일의 각오를 곧추세웠다.

그래서였다. 작년 이맘때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쓴 편지에는 온통 부끄러움에 대해서만 썼었다. 당시만 해도 라틴어 실력이 지금만 못해 연습 삼아 써놓은 편지가 따로 있었다. 양업은 서랍속에 고스란히 있는 것을 꺼내 들었다.

‘지극히 존경하올 그르레주아 신부님…. 우리나라의 딱한 상황을 생각하면 한숨과 눈물만 쏟아집니다. 아직 부모들과 형제들을 따라갈 공로를 세우지 못하였으니, 제 신세가 참으로 딱합니다. 그리스도 용사들의 그처럼 장렬한 전투에 아직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저는 부그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듯 훌륭한 내 동포들이며 이렇듯 용감한 내 겨레인데, 저는 아직 너무나 연약하고 미숙함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misericordiarum pater! 자비하신 하늘 아버지, 당신 종들의 피가 마치 아벨의 피처럼 호소하는 이 소리를 들으소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의 크신 자비를 보이소서. 전능하신 팔을 드소서.

언제쯤이면 저도 신부님들의 그 엄청난 노고와 제 형제들의 고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 수난의 부족한 잔을 채워 이 구원 사업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휴우, 양업은 편지를 접고 한 번 더 하늘을 보았다. 조선 쪽 하늘에서 눈물의 바다 같은 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비하시니… 그 자비하심 때문에라도 결국은 우리 겨레를 좋아 하시리라 믿나이다. 피의 골짜기에서 벌써 자비하심에 눈을 듭니다.

저로 하여금 아드님 수난의 잔을 마저 채우게 하소서. 흠도 티도 없지 않지만 또 어리지도 않지만, 당신의 고양(羔羊)으로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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