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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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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김대건(2) 날짜 2015.04.22 15:25
글쓴이 관리자 조회 237

“저것 봐! 백령도다, 산동 배들 판이네!”

“조선 조기 다 잡아가는 거 아녀?”

“바다 고기야 뭐 조선 거라고 쓰여있나?”

“징글징글한 놈들, 해상에서 배떼기로 사고파네, 완전 직거래네!”

“저러니 연평도에서 산 우리 것이 팔릴 리가 없지!”

“신부님, 그런데 순위도 우리 조기 괜찮겠지요?”

“….”

누군가 말머리를 대건에게 넘겼으나 일일이 대답하기가 싫어졌다.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더디기도 했을 것이다.

“소금에 절여 널어놨고 노 씨가 지키고 있으니 괜찮을 거야!”

대건 대신 선주 임성룡이 대답한다.

이 배는 임성룡의 조기잡이 배였다. 대건은 ‘해로 탐색’이라는 명령을 받고 마포로 갔었다. 이즈음 마포나루에서 서해5도에 나가는 조기잡이 배는 골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흔했는데, 계절이 좋아 그저 유람차 배 띄우는 양반들도 수월찮았다. 살랑거리는 늦봄의 바람결이 그만이었던 것이다.

대건의 목적은 제물포를 시작으로 백령도까지의 지형을 살피고 빠짐없이 지도에 그려넣는 것이다. 작년 입국 시 표류하는 바람에 제주도까지 떠내려간 것과 금강을 한강이라 착각한 것을 생각하면 이곳 황해도 해안의 지도가 절실했다. 중국에서 황해도를 목표지로 정하면 유사시 차선책을 택하기에도 좋을 것이 북쪽으로 쏠리면 평안도 어디엔가 닿을 것이고 저번처럼 남쪽으로 밀려도 충청도를 지나 최소한 전라도 어디쯤엔 걸릴 것이다.

“신부님, 백령도 다 와 가는데 닻을 어디다 내릴까요?”

이번에는 선주 임성룡이 직접 물었다.

“중국 배들과 최대한 가까운 곳.”

“네, 적당한 델 찾아보지요.”

백령도라는 말과 함께 사공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배에는 대건을 포함하여 8명의 젊은 선원들이 승선했다. 순위도에서 조기를 보다가 글피면 합류하게 될 노언익 외에 선장 임성룡, 주교 복사인 이재용 토마, 사공 엄수, 김성서, 안순명, 박성철이었다. 절반은 천주교 신자이고 나머지도 입교할 마음이 잇는 소위‘예비자’들이었다.

“저녁은 배 위에서 먹고 어두워지는 대로 중국 배에 갑시다.”

“왜요, 또 생선 사시게요? 순위도 것도 안 팔려 말리고 있는데…. 하여간 알았습니다. 신부님!”

“니 하오, 나는 소선 사람이오!”

밤이 되자 대건은 곧장 중국 배를 찾았다.

“어찌 그리 중국말이 유창하오?”

“시간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리다.”

“우리야 거래만 되면 아무 얘기라도 상관없소.”

“어디로 돌아갑니까?”

“이번 씨알은 굵어 제남(濟南)까지 가져갈 참이오.”

“제남 무성(武城)에도 성당이 있습니다.”

“허어! 그걸 어찌… 양놈들 기둥 하나 없이 지붕을 높여놔서 우리들 구경거리요!”

“무성 성당에 가서 이 편지를 전해주면 되오.”

“얼마 줄 거요?”

“돈은 섭섭지 않게 줄 테지만, 두 가지 약속을 해야 하오. 첫째 직접 성당 신부님한테 주어야 한다는 것, 둘째 봉인을 뜯지 말라는 것! 별다른 비밀도 없지만, 서양말이라 당신은 봐도 모를 거요. 조선 친구들 안부 몇 자 적었고…. 이 지도는 근처에 놀러올 때 암초에 부딪히지 말라고 그렸을 분입니다.”

“우리도 상도덕은 있으니까, 그래 얼마 줄 거요?”

“나 장사 한두 번 한 사람 아니오!”

“보기에도 딱 그렇네. 우리 중국사람, 돈 많이 주면 일 잘해요!”

“먼저 생각한 금액을 말해보시오!”

“열 냥!”

“편지 한 통 전하는 데 뭐 그리 많은 돈을 달라 합니까?”

“열 냥만 주면 일은 틀림없는데….”

“좋소. 내 조금도 안 깎고 달라는 대로 주리다. 열 냥….”

“하오, 하오!”

“그런데 조건이 있소. 선금으로 다섯 냥 줄 테니, 나머진 수취인한테 받읍시다, 그리 써놨으니까.”

“하 참, 젊은 사람이 노련하네!”

“한두 번이 아니라질 않소.”

출항의 본 목적이었다.

매년 조기잡이 철 백령도 근해에 중국 배들이 많다는 것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처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수월한가. 기해년 후 사신단 일행에 짐꾼 자리 하나 꿰차기도 힘들어졌다. 조정에서는 정하상 바오로 등이 사신단에 끼어 천주교 연락원 노릇한 정황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본다면 괜찮은 산동 어부 몇과 거래를 튼다면 보편교회나 파리 외방 본부에 연락하기에 여기만큼 매력적인 곳도 없을 것이다. 지난 5년간 대룩과 해상에서 그 고생을 하며 얻은 최종답안이구나, 싶을 정도로 쉽고도 안전한 방법이었다. 매년 이맘때 백령 바다에 북적대는 수백 척의 중국 배야 만인주지의 사실이니 조금도 의심받지 않을 수 있다. 공해상의 야음만 틈탄다면 선교사 입국 역시 문제없었다.

‘그렇지, 양업도 이리 오라고 하자!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겠지만,’ 대건은 무릎을 쳤다. 수년간의 수확을 얻은 듯해 회심의 미소가 절로 나왔다.

백령도는 서해 5도 중 최북단이다. 그저 조기 열댓 두름 잡는 배로 치면 한강 어귀에서 연평도까지가 사흘거리고, 연평도에서 순위도가, 또 순위도에서 백령도가 각각 사흘 거리였다.

“여기까지 온 김에 이틀 더 둘러봅시다.”

관헌의 눈도 있는 순위도에 조기 마르기만을 기다리며 죽치기보단 기왕 나온 김에 유람하는 척하며 서해 5도 지도를 완성하려고 한다. 대건은 해안선 근처의 암초 하나까지 샅샅이 그려놓았다. 이곳저곳 수면 위로 내민 바위섬에는 물개들이 한창 자리 쟁탈전이다.

“훠이 훠이.”

사공들은 할 일 없이 물개들한테나 시비를 걸다 그도 시큰둥해지면 졸기나 하고, 유독 대건 혼자만 분주했다. 꼼꼼히 살피다가 지도를 수정하거나 덧그리는 식이다.

“이제 순위도로 돌아갑시다.”

일단 대건의 서해 5도 지도가 완성되었다. 한양에 돌아가 종합하기만 하면 이야말로 선교사 해로 입국의 결정적 길잡이일 것이다.

“조기가 다 말랐을까요?”

“날씨만 도와준다면.”

“팔면 얼마나 받을까요?”

“영광과 여기 것이 상품이니 임자 만나면 이번 경비는 빠질 걸.”

아무래도 선장 임성룡은 조기 값으로 항해비용에 충당할 생각뿐이다.

그런데 대건은 다시 그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기분이 묘한 항해라는 것, 서해 5도 탐색이라는 분명한 목표로 출발했지만 지금처럼 사공들이 무료해한 적은 없었다. 예전의 항해들은 그럴 겨를조차 없을 만큼 바다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점이 더 이상야릇해진다. 폭풍의 전야 같은 정체감만이 밑 빠진 독처럼 침전했다.

“여러분, 순위도 가면서 묵주기도를 합시다.”

사공들이 하도 무료해하기에 대건이 건넨 제안이었다.//

“야, 순위도다!”

“저기, 노 씨 보이네!”

“조기 옆에 아예 누웠네그랴!”

배는 어느덧 순위도 포구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조기는 대충 말랐을까?”

대건은 내리자마자 노언익에게 눈인사를 하며 조기부터 만져본다.

“아이고, 이거 이틀은 더 말려야겠는걸?”

엄수도 만지며 얼굴을 찌푸린다.

“요 며칠, 날이 흐렸잖아요?”

“별수 없지, 더 기다리는 수밖에….”

강령강 하류를 막고 있는 순위도는 매년 오뉴월 가장 성시를 이루었다. 연평도부터 백령도까지 나갔던 어선들이 돌아와 조기를 팔거나 대건 일행처럼 여기저기 해안에 널어 말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개 섬으로 치면 지나치게 큰 등산진(순위도의 소재지)관아임에도, 조기 철에는 도리어 포졸 증원까지 해야 했다. 어부들 쪽에서 볼 때는 불시에 들이닥쳐 귀찮게 구는 것이기도 해서 서둘러 뜨고 싶었지만 조기가 마르지 않으면 팔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틀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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