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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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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김대건(3) 날짜 2015.04.22 15:26
글쓴이 관리자 조회 207

천주강생 1846년 6월 5일

“이보시오, 여기 배 주인이 누구요?”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오후 2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등산진 포졸 두 명이 느릿느릿 물어오는데 점심에 반주를 했는지 곡주 냄새가 확 풍겨왔다.

“난데 왜 그러시오?”

임성룡이 나섰다.

“처음 보는 밴데 초행이면 우리랑 안면은 터야쥐?”

키 큰 포졸은 다짜고짜 반말이었다.

“아… 또 그래야 하는 거요?”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공짜로 잡아가면서 말이야!”

“우리 바다에서 우리가 잡는 거야 어떻소? 되놈들도 잡아가는데….”

“아따 사람 말 잘하네, 말 잘해!”

두 포졸은 얄궃은 웃음으로 머리를 긁어대며 다시 선술집 족으로 사라졌다.

“놈들 밥값이나 뜯어내려는 거지!”

임성룡이 조금 예민해졌다.

“밥값 달라면 좀 주는 게 낫지….”

대건이 훈수를 둔다. 대쪽같은 성격이 변한 것이라기보다 다만 이 나라 저 항구 많이 돌아다녀 보니 일종의 통과의례가 있더라는 뜻이다.

“중국 배가 고기 다 잡아간다고 했던가?”

10분쯤 지났을까, 한 명이 증원되어 세 포졸이 부둣가에 늘어선다.

“보시다시피, 저 많은 것 중 절반이 중국 배 아니오?”

“말 잘했다, 그래서 배를 징발해 중국 것들 쫓아내야겠다!”

“안돼요! 지금부터 조기 실어 내일 새벽엔 떠나려던 참인데.”

돌연, 포졸의 눈에 독기가 일렁였다.

“무엇이? 아까부터 이것들이… 까라면 까는 거지, 양반의 배라도 된다는 말이냐?”

순위도 관아에서는 양반의 배 외에는 마음대로 징발하여 쓰는 관례가 있었다. 이 바닥 사정에 훤하다는 대건의 복사 베넨시오도 어제 오후 근방 친척을 찾아간다며 신신당부하기를 “처음부터 순위도 포졸들에게 얕보였다간 계속 당항 겁니다. 장래 신부님의 해로 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이니 아예 양반 배라 하여 찝쩍대지 못하게 해야 해요. 마침 신부님이 계시니 한양 양반 하시면 되겠네요.” 하며 떠났던 것이다.

“뉘신데, 한양 양반이?”

“이분 되시오.”

선주 임성룡이 대건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대건의 풍모는 말 않고 있음으로 양반의 그것이었다. 포졸들은 배 위에 선 대건을 뜯어보더니 수군덕대며 총총 사라져 갔다. 돌아서는 발끝의 기운이 섬뜩했다.

“자, 공기가 안 좋으니 야간 출항이라도 합시다. 눈에 띄게 서두르면 의심 살 테니 배 안에서만 비상입니다!” 조심스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보소, 한양 양반!”

조금 전 물러갔던 포졸들이 한 명을 더 데리고 와 도합 4명이었다. 복장을 보니 이번엔 포졸이 아니었다. 현감이었다. 무슨 낌새라도 챘는지 말투가 사뭇 정식이 되었다.

“제가 그 사람이오!”

대건이 직접 나섰다. 현감까지 나타난 이상 관망만 할 수는 없었다.

“배를 잠시 징발하여 중국 배를 쫓는다는데 왜 안 된다 하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베넨시오의 말이 옳았다. 이번만 넘길 게 아니라 차후를 생각해야 했다. 수년간 목숨을 건 탐색 끝에 가장 안성맞춤인 해로를 찾았는데 거머리 같은 포졸들을 골칫거리로 남길 수는 없었다. 첫 단추부터 잘 꿰어야 산뜻할 듯싶었다. 더구나 모든 사람이 이미 양반으로 정해놓고 있질 않은가? 대건은 담담히 말했다.

“양반의 배는 부역에 동원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래? 한양 양반이 후줄근한 곳은 어이 오셨나?”

현감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오뉴월 강바람에 끌리다 보니 이 바다까지 오게 됐소. 해안 유람 중이오!”

“유람객이 무슨 조기를 다 잡소!”

“물이 하 좋다 하여 연평도에서 좀 샀소.”

“하여튼 당신 배를 좀 써야겠소!”

“양반이라 안 하오.”

배 안에는 상본들과 예비자들을 위한 요리문답이 있었다. 종전의 낌새 때문에 급히 치우긴 했어도 성물들의 흔적은 남을 수 있다.

현감은 이제 배의 징발 여부보다 일종의 자존심 문제가 되었는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한양 양반이라도 순위도에서는 내 말을 들어야 하오!”

“관장께서도 나랏법 아래 계시는 줄 아오.”

“순위도에서는 내 말이 곧 법이라니까?” 하는 눈에 쌍심지가 켜지더니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사람아, 순위도에서는 내가 왕이라니까? 왕!”

대건도 정색으로 말했다.

“뭐 이런 말이 다 있나, 순위도에서는 당신이 왕이라니?”

“야, 이놈 봐라!”

현감의 억양이 거의 옥지거리 직전까지 고조되었다. 대검은 참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며 불쑥 고개를 드는 것이란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지고 순위도를 왕국처럼 여기다니, 탐관보다도 못한 횡포에 얼마나 많은 민초가 당했을까? 하는 정의감이었다.

현감의 거들먹거림이 본색을 드러냈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순위도라는 한직에서 썩는 동안 멋대로 놀아보자 했을 것이 일개 어촌 관아에 적을 둔 기생이 스무 명을 육박하고 있엇다. 그간의 방자함에 꼬리를 잡은 것 같았으나…. 그러나 쓸데없는 것만 잡고 늘어지다 대사를 그르칠 순 없었다. 솔직히 대건 자신도 한양 출신은 아니었다.

“아, 그만합시다. 말실수는 누구나 있는 법이니, 아무튼 배는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일단락되려는 순간이었다. 관장이 단념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그러나 눈에 독기가 일렁였던 포졸이 쓱 한마디 던진 것이다.

“그런데 말이오, 유람 왔다고 했습니까?”

“그렇소.”

“유람선에 술병 하나 안 보이고?”

“….”

“아까부터 이상하다 했어, 배 안을 볼 수 있겠소?”

“그게 잘못이라도 되오?”

그건 아니고…, 하며 그자는 힐끗 배 안을 보며 말했다. 대건은 따지는 투로 물었다.

“아닌데 맘대로 수색해도 되는 거요?”

“말투도 이상한 것 같고 말이야. 봉성(鳳城)이나 의주 사는 변경(?境)사람 말투 같아….”

“….”

“아까부터 이상하다 했어. 배 안을 볼 수 있겠소?”

“그게 잘못이라도 되오?”

그건 아니고…, 하며 그자는 힐끗 배 안을 보며 말햇다. 대건은 따지는 투로 물었다.

“아닌데 맘대로 수색해도 되는 거요?”

“말투도 이상한 것 같고 말이야. 봉성이나 의주 사는 변경 사람 말투 같아….”

“….”

“사또, 일단 돌아가서 얘기하심이 어떨런지….”

말실수 때문이었는지 현감도 고분고분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포졸, 자세히 보니 복장이 달랐다. 그가 단념한 것이 아니다, 수하에게 명령했다.

“저 두 사람, 끌고 와!”

추 아무개 포교라는 이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무래도 직업상 일감을 발견한 듯했다. 사냥개는 사냥감을 그냥 좋아주지 않는다.

“이름이 무엇이냐?”

“임성룡입니다.”

“연행해!”

“너는?”

“엄수라고 합니다.”

“두 사람 다 끌고 와! 거 양반 나리, 이놈들 몇 가지만 물어보고 바로 보내드리리다.”

추 포교는 번들거리는 이마 밑으로 이리 같은 눈빛을 흘리며 두 사공을 끌고 갔다. 아무래도 사단이 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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