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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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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김대건(5) 날짜 2015.04.22 15:30
글쓴이 관리자 조회 370

저녁이 되자 한 무리의 주민들이 들이쳤다. 순위도에서의 대역은 처음인지 장터의 원숭이 구경이라도 난 듯 야단법석이었다.

“천주교가 뭐야?” “뿔도 안 났구먼!”

“양반들만 한다잖아?”

“사교도 밥 먹고 똥 누나.”

“막대기로 건드려 볼까?” 그들의 호기심 앞에 눈만 껌벅거려야 하는 모양이 견디기 어려웠다. 굴욕의 시간이라고 대건은 생각했다. ‘원숭이 신세가 괴롭기는 하지만 이제부터 귀찮게 여기지 말자, 그렇게 하기로 하자.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니 오로지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만 하자!’

안색의 편해짐이 스스로도 느껴오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천주교는 작금 세계 만민이 믿고 있는 보편종교요. 우리의 하느님은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라 가르치는 분이시오, 선인에게는 상주고 악인에게는 벌주는 분이시오. 부모께 효도하라 가르치고, 도둑질이나 거짓말은 금하는 분이시오.”

“지극히 정상이네, 근디 왜 나라가 막을까?”

“부부 아닌 남녀 사이에 부정함이 있어선 안 되고.”

“힘꼴 쓰는 양반은 별루겄네그랴!”

대건은 또박또박 말했다.

“만물의 임자이신 하늘을 섬기라 하셨소.”

“그래 나라님이 싫어하는 거구먼, 하늘을 더 섬기라니꺄!”

“나라님도 임자는 아니시오.”

“보소, 그리고… 또 다른 거 없는겨?”

구경꾼 중에서 식견 있어 보이는 인사가 나섰는데 다들 가만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대표였다.

“사람에게는 가축과 달리 영혼이란 게 있소!”

“죽으면 귀신 되어 구천을 떠돈다는 거?”

대건은 그 사람을 바로 보며

“부모님이 구천이나 떠돌다 제삿밥이나 얻으러 오면 좋겠소?”하고 말했다.

“아니 그라믄?”

“육은 흙으로 가지만 영혼은 원 임자에게 돌아가오.”

무슨 일일까, 싸늘한 호기심만 흘리던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자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었다. 옥 안팎을 오가는 시선들이 한결 따듯해졌다. 아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진리라는 힘일까, 대건은 생각했다. ‘앞으로 잘해야겠구나, 말 한마디 몸짓 하나 내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눈들이 있구나. 이게 증거로구나!’

“그러면 당신은 하느님을 본 적이 있슈?”

제법 그의 물음이 진지해졌다.

“그거야 기해년 박해 때 많이 듣지 않았소?”

“그건 그려…. 그러믄 천당은 진짜 있는 거유?”

“아직 나도 가보진 못했소.”

“사람, 솔직해서 좋네그랴!”

대건은 주위를 조금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렇지만 목에 칼이 두 번 들어와도 믿고는 싶소. 결국엔 천당이냐 무덤이냐 딱 두 길밖에 없는데 굳이 구더기 밥 신세만 믿을 게 뭐요? 어차피 가보지 못한 채 한쪽을 필히 가야 할 바엔?”

“그건 아니지, 무덤 속 구더기들… 아, 아녀!”

몇몇이 치를 떠는 것을 보고 그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거라고 말하려는데 그의 물음이 더 빨랐다.

“근데, 이담에 죽어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없다면 믿은것만 손해 아닌가 벼?”

“믿었으면…아마 악행은 덜했을 게요.”

“그럼 밑져봤자 본전이란 얘기네! 이름 하난 좋게 남겠구먼, 하느님이 없더라도.”

“하느님이 진짜 계신다면 어떻겠소?”

“땡잡은 거지, 영원토록 상 받을 것 아니유!”

“바로 맞소!”

이 시간이 야릇했다. 내 나라 겨레 앞에서 맘 놓고 하느님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서나 가능하다니.

“여러분, 내가 불쌍해 보이시오?”

왜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모른다. 그 학식 있어 보이는 사람도 머뭇거렸다.

“글씨유… 꽁꽁 묶여있으니 불쌍하긴 한데 뭔가 훤한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두고 보시오, 지금부턴 더 훤해질 테니.”

“웬일로?”

“평생을 생각해 온 분과 이제야 일대일 대면하는 기분이오.”

대건은 왜 불쌍하다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풀이 소에게 뜯어먹히면 불쌍한 것이오?”

“뭐 별로….”

“문드러지는 것보단 적당할 때 여물 되는 것도 괜찮다 보오.”

잠자코 그는 대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면 소는? 늙고 늙다 쓰레기보다 못하게 썩는 게 나으오, 귀한 인명 살리는 쓸모가 나으오?”

“글세 뭐… 그럼 풀 소 다음은, 사람인가유?”

“내 생각이 그렇소. 풀은 소 안에서, 소는 인성 안에서, 사람은 신성 안에서 더 가치 있소.”

“그러면 먹히는 쪽만 불쌍하잖유!”

“사랑으로 하면 불쌍하지 않소.”

“뭐가 그럴까, 풀이 소를 사랑해서 먹힌다구?”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할 수가 있소.”

“그럼 하느님이 인간을 잡아먹는 거유?”

“인간이 완전한 생명에 참여하는 쪽이오.”

“소나 사람 쪽에선 자살하는 꼴이네.”

“해서… 그 때와 장소를 스스로 정하면 안 되오.”

“허면 누가 정해유?”

“생명이신 분!”

“그러면… 자살하고 확 다른 게 뭐유?”

“사랑이오. 하느님에 대한, 세상에 대한, 자신에 대한.”

“하느님만 욕심쟁이네?” 대건은 어조를 강하게 했다.

“아니! 나 같은 사람이 진짜 욕심쟁이지, 어설픈 데 주지 않고 하느님께만 전부 드리려니까.”

“지금, 마음이 좋으신 거유?”

“행복하다면 제정신 아니라 하겠지만 난 사랑의 근에 묶여있다오.”

“행복이 뭔감유?”

“자기를 잊을 만큼 어디엔가 푹 빠지는 것!”

“주색잡기 같은 것도?”

“그건 아침을 두렵게 만드는 거고.”

그가 멈칫하는 사이 대건이 계속 입을 열었다.

“받을 때보다 주려 할 때 더 빠질 수 있소. 나의 너가 아니라 너의 나가 되려 할 때.”

“맞어, 내 마누라도 완전히 내 께 안 되니께…. 자꾼 요구하면 싫은 소리만 나지유!”

밤이 얼마나 깊어가고 있을까, 장시간 이어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침을 삼켜야 했다.

“사랑할 너가 필요하오. 고상한 널 사랑해야 고상한 나가 되오.”

“기왕에 어여쁜 낭자를 사랑하면….”

“어여쁨도 변하오.”

“바꿔버리면 되지유?”

“행복은… 함께 산 역사와 비례하오.”

“그럼 누구를?”

“영원히 먼저 나를 사랑해 오신 분!”

“그분이 누구신데?”

“지금 내가 선택한 최상의 너!”

“그가 어쨌게?”

“나를 완전히 차지하셨소, 먼저 나에게 완전히 주심으로! 완전히 ‘너의 나’가 되셨소. 너의 것이 되어줌이 너를 차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오.”

“그럼 당신이 가겠다는 길도?”

“나를 다 드릴 작정이오, 그분을 다 차지하기 위해….”

“영원한 분을 ‘너’로 삼겠다는 거라? 거, 최고의 거래네?”

“아직도 내가 불쌍해 뵈오?”

아니 똑똑하네유, 하며 둘은 서로를 지그시 여겨보았다.

“보아하니…당신도 순위도에 있을 사람은 아니신데?”

“낙향해서 작은 서당 하나 차리고 있슈!”

저녁부터 시작한 대화는 이튿날 해가 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솟아났다. 그리고 거기, 한 마디도 빼먹지 않고 들으려는 청중이 있었다. 그들도 무에 목말랐던 것일까, 밤이 깊어갈수록 구경꾼들은 더 모여들었다. 식구를 찾으러 왔다가 눌러앉기도 했다. 나중에슨 옥리들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은 가금 고개를 끄덕이다 대건을 쳐다보고는 만족한 얼굴이 되어 머리를 숙이곤 했다. 자기들끼리 수순거리는 소리가 대건의 귀에도 들려왔다.

“천주교인, 말만 들었지 이번에 처음 보네!”

“우리도 믿어볼까?”

“뭔 경을 치려고! 살인보다 엄하잖아.”

그 시간만큼은 순위도 옥사 안팎에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침 교대 옥리가 “훈장까지 나서 이게 뭐하는 짓들이오.”하고 해산시켰을 때야 귀가할 생각들을 했다. 흡사 막 떠오른 해를 한 아름씩 품고 가는 것 같았다. 대건은 스스로도 짐짓 놀랐다. 밤새도록 이야기한 것이 꼭 자기 혼자만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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