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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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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배주인 임성룡(1) 날짜 2015.05.19 10:41
글쓴이 관리자 조회 216

배 주인 임성룡/새남터 오후3시

아이구 아버지 아이고, 닷새 동안 순위도 등산진 옥에 갇혔던 우리는 6월 10일 진짜 황해도 수부인 해주 감영으로 이송 중이다. 탁덕과 사공 엄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검은 자루가 머리에 쓰인 채 이중 삼중의 경계 속에 성내에 도착했다. 해주 시장 떠들썩한 소리가 몽환적으로 들리면서 아스라이 어릴 적 술래잡기할 때의 생각이 다 난다. 그때도 앞이 가려진 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차디찬 현실이다. 이 해주 다음은 어디일까, 한양까지 갈 것인가. 그렇다면 한양 다음은 어디일까? 갑자기 사타구니 아래쪽이 흐물흐물 낙지발처럼 풀리더니 오금까지 저려온다. 쿡, 끌고 가던 포졸이 가차 없이 옆구리를 쑤셔왔다. 헉,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공포가 더 아프다. 아버지…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번 술래잡기는 아무래도 아버지 아니라 할아버지가 오셔도 끝내 줄 수 없을 것 같다. 졸지에 대반역도가 된 처지가 실감되지 않는다. 자꾸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나란히 걷고 있는 사공 엄수는 나보다 심하게 떨고 있음이 분명하다. 순위도 등산진 동헌에서도 엄수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다. 녀석이 무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하도 벌벌 더는 통에 곱절이나 의심을 받았다. 물론 아직까지는 김대건 신부의 ‘신’자도 발설하진 않고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거짓을 댔다가는 사지를 찢을 줄 알아라, 너는 천주교 신자냐?”하고 물었을 때 사색이 되어버린 것이다. 침을 질질 흘리더니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상이었다. 그러자 형리들은 느닷없이 곁에 있던 나를 치기 시작하였다. 들개라도 때려잡듯 얼굴 가슴 머리마저 가리질 않는 육모 방망이에 대여섯 대까지만 기억이 나고 의식이 들었을 때는 이미 옥 안이었다.

면상이야 멀쩡했지만 녀석은 기절했던 나보다도 더 창백해 있었다. 크크, 큰일 났다는 것이다. 내가 쓰러진 뒤 포졸들이 자기한테 덤벼들어 족치는 바람에 신자라고 한 적은 절대 없는 할머니 얘기는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추 포교가 비릿한 웃음으로 사라졌고 고문도 바로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 후 포졸들의 무리가 대거 출동하는 모양인데 포구 쪽에 계신 김대건 신부님한테 갔으면 어찌하느냐는 거였다. 자기는 김 신부님에 대해서는 조금도 입을 연 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때는 실성한 자 같았다. 결국 새벽녘에 끌려오셨을 탁덕이 점심이 다 되어 투옥되었을 땐 녀석은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모서리에 머리까지 쑤셔 박으며 떠듬떠듬 보태는 말이 “사공 중 천주교 신자가 한 명도 없단 말이냐? 나중에 밝혀지면 사지를 찢을 것이다.”하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이재용의 이름을 불었다고 했다.

후회가 밀려온다. 괜히 내가 조기를 매매해 배삯에 보태자고 했다. 아무래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일 것이 옆에 계신 이는 지난 반세기도 넘게 전국을 피바다로 물들인 사학의 괴수, 유일무이한 조선인 신부다. 사실 마포나루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영광스러웠다. 사실 마포나루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영광스러웠다. 물론 아직 아버지께 완전히 상속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내 배나 다름없었다. 어머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그 자랑스러운 조선인 신부가 내 배를 쓰신다고 찾아왔을 때 “네 탁덕.”하고 흔쾌히 대답했다. 나도 어머니와 함께 천주교에 입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생활은 어디까지나 종교생활, 솔직히 한몫 잡으려는 내 스물세 살의 젊은 눈가에 재롱떠는 딸내미가 자꾸 어른대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발밑으로 막 커다란 문지방이 지나는 것을 보니 해 관아에 도착한 듯싶다.

이번 건은 임금에게까지 장계가 올라갈 사안이었다.

해주 감사 김정집은 이미 순위도 관장이 올린 ‘초기 조서’를 훑었는지 대뜸 한다는 소리가 천주를 배반하면 살 수 있다는 회유였다. 김대건 탁덕은 순위도에서보다 오히려 안정된 목소리가 되었다. 해주 감영은 옥과 이웃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초하는 소리가 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또렷했다. 나와 엄수는 옥 안에서 김 탁덕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는데 6월 한낮의 땡볕에도 으스스 어깨가 떨려왔다.

“감사님, 하느님은 만물의 임자이십니다. 나라님의 임자요, 부모의 임자신데 어찌 불충불효 두 가지를 하라 하십니까?”

감사는 힐끗 고문 형구를 보더니 탁덕에게 말했다.

“그러면 너 말고 다른 교인들의 이름을 대라!”

“천주교에서 으뜸 가르침이 사랑입니다. 제가 이름을 대는 것은 그들을 고통 속으로 끌어들일 것이니 사랑의 계명에 어긋납니다.”

“너는 중국인이냐?”

“애초 순위도 관장이 잘못 본 것입니다.”

“고향이 어디냐?”

“충청도 솔뫼입니다.”

“거기서 천주교를 배웠더냐?”

“아닙니다.”

“그럼 어디서 배웠더냐?”

“그곳도 말할 수 없나이다.”

“그렇게 협조치 않으면 고문할 수밖에 없다!”

“예, 준비되어 있나이다!”

탹덕은 당황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올 것이면 빨리 와라.’하는 태도로 갖가지 형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것들을 집어 들었다. 형구들을 보듬어 안는다. ‘이것들이란 말인가, 바로 이것들이 수십 년간 우리 교우들을 괴롭혔다는 말인가.’하는 몸짓이다가 감사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고분고분하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만주벌판 달리고 황해 파고 넘나들던 기백이 이런 것인가 싶다.

“마음대로 하시오!”

“고문이 얼마나 혹독한 줄 아시는가?”

그러자 감사 김정집이 존대 비슷하게 나왔다. 원래 김 탁덕은 사람을 제압해 버리는 데가 있다. 머리색도 희끗희끗해 감사의 눈에도 거물로 보일 것이다.

“나는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니 칠 테면 치시오. 내가 당초 두려웠던 건 고통이 아니었소. 우리가 오해받는 거였소. 그래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던 것이오. 치시오!”

낮은 음성이었지만 영내를 압도할 만큼 단호했다. 한 포교가 포졸들에게 형구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하고는 탁덕에게 가까이 갔다.

“감사님 앞에서는 ‘나’라고 하는 게 아니고 ‘소인’이라 하는 법이다.”

“그러게… 처음엔 얼마나 예의를 갖췄소, 소인이라니? 우리가 아직 어린애란 말인가, 키도 마음도 다 자란 대인이란 말이오!”

판이 깨졌는지 감사는 주위 사람만 들리도록 작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말이야, 고문으로 될 사람이 아냐. 방법을 바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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