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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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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배주인 임성룡(2) 날짜 2015.05.19 10:43
글쓴이 관리자 조회 328

“으악 아아 악!”

드디어 올 것이 오고 있었다. 엄수 차례였다. 이미 백 수준의 실토를 했어도 한양까지 보고된 이상 해주 선에서 풀어줄 수는 없을 것이고 또한 이용가치가 남았을 수 있다. 처음부터 만만하게 보였는지 즉시 고문이 가해졌다. 순위도에서는 주교 복사 이재용 토마의 이름만 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저 앞에서는 장사가 없을 것이다. 옥으로 몰아치는 비명소리가 대기하는 마음을 더 오그라들게 한다.

고문의 방법은 칠 년 전 기해년에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곤장 중의 제일 혹독한 것이 치도곤인데 서너 대만 맞아도 엉덩이의 살점들이 튀면서 정신을 잃었다. 학춤과 판봉, 삼봉장과 주뢰질도 악질적이지만 그중에 실톱질이란 형벌이 가장 잔인했다. 많은 교우들이 이 실톱질에 희생되었다. 주뢰나 곤장처럼 뼈를 으스러뜨리거나 골수가 튀어나오지 않아 여러 번 가할 수 있다. 수형자도 깊이 기절하지 않고 가물가물한 상태만 되기 때문에 배교를 끌어낼 가능성이 높았다. 맨살 위에 사기 조각을 먹인 명주실로 톱질을 해대면 살을 뚫고 뼛속까지 파고든다. 뼈가 썰릴 때도 정신이 있는데 실을 확 밖으로 빼버리는 것이다. 이때 집행자가 ‘천주를 배반하여라.’고 명하면,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어야한다. 그런데 부러 ‘천주를 배반하지 말거라.’로 바꾸는 것이다. 고개라도 잘못 저었다가는 ‘분명 배반한다고 했으니 너는 자격도 없다. 쌀 한 가마에 고기 끊어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배교를 선언해 버렸다. 기해년 치명자들의 기도가 ‘고개를 가로저어야 될 때 세로로 끄덕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였다니 순교는 애초부터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지금 엄수도 실톱질을 당하는 모양이었다. 정신을 잃었다 차렸다 반복하고 있었다.

“임성룡 네놈이 그 배의 주인이렷다!”

엄수가 아주 의식을 잃자 그들은 나를 끌어다 패대기치더니 건장한 두 형리가 발목을 거꾸로 집어 들어 올렸다. 예리한 대꼬챙이가 내 왼 엄지발가락을 쑤시고 발들 쪽으로 나오고 말았다. 나도…참을성깨나 있다는 소릴 듣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눈빛도 없는 자는 작고 더 예리한 대꼬챙이를 손톱 밑에 갖다 대려고 했다. 중지를 쑤시려는 순간 솔직히 뭐라고 했는지 모른다.

“사, 살려주십시오!”

“너는 김대건을 어떻게 아느냐?”

“배 빌리러 한 달 전 마포나루에 왔습니다.”

“김대건의 집이 어디냐?”

“모릅니다.”

“이놈이! 삯 떼일까 봐 주소까지 적어놓는 관례를 아는데도?”

“예, 석관동입니다. 석관동.”

“진즉에 바른대로 대지 못할까?”

“살려만 주십시오.”

“네 이놈, 배가 연평도, 순위도 말고 또 어디를 갔었느냐?”

“백령도 갔었습니다.”

“백령도에서 뭘 했느냐? 김대건이 말이다!”

“중국 배에 가서 편지와 지도를 주고 왔습니다.”

감사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돌았다. 한번 터진 말문은 이제 묻기만 하면 술술 나간다. 탁덕의 신분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배교 여부를 묻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여봐라, 비상조를 백령도에 보내 그 중국 배를 수배하라!”

예이! 추상같은 명령에 번개 같은 시행이었다. 10분도 채 안 되었는데 말굽소리가 요란한 것이 일단의 부대가 백령도로 출동하는 게 분명했다. 옥에 앉아있던 탁덕이 ‘아!’하고 탄식하는 듯 했다.

“이재용 말고 또 누가 더 배에 있었느냐?”

“동생 마태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성서, 박성철, 노 씨, 임 씨….”

내 더러운 입술은 이미 발바닥을 관통한 대꼬챙이와 금방이라도 손가락을 둟으려는 새 대꼬챙이 사이에서 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용서하소서.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더 악랄하고 당신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속수무책이옵니다, 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나도 엄수처럼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나으리, 이 늙은이가 그저 하느님 믿은 죄밖에는 없습니다요.”

얼마동안이었을까. 나는 죽어버린 듯 널브러져 있고만 싶다가 한 노파의 소리에 혼절해 있었음을 의식했다. 어제 늦도록 엄수와 나를 문초한 감사는 오후에야 공초를 시작한 듯했다. 환갑줄을 넘긴 노파인데 첫마디가 하느님을 믿은 죄밖에는 없다니 분명 교우였다. 황해도 부근에 다시 박해의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기해군란을 명한 헌종 임금은 최근 잠잠한 편이었다.

문득, 이마에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져 왔다. 동시에 배신의 수치가 다시 부스럼처럼 돋아난다. 갈기갈기 쥐어뜯고 싶은 면상을 탁덕의 손길이 천천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고개까지 끄덕여 주며 괜찮다 괜찮여 많이 아프지,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주둥이를 잘못 놀린 바람에 중국 배를 수색하러 간 비상조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공초장의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안 보이는 하느님을 어찌 믿느냐?”

감사는 어제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매일 온순한 사람들의 피를 보는 것도 지겨울 것이다.

“영감, 저는 아직 나라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나라에 나라님이 계시기에 지금 저를….”

이것은 교우들끼리 미리 옥 안에서 ‘공초장에 끌려가면 어떻게 답할까?’하고 짜놓은 일종의 답안이라 들었다.

“그만 그 소리, 기해년에 많이 들었지. 너희 서학쟁이 입들은 못 당한다니까, 그러면 이건 어찌 답하겠느냐?”

“….”

“듣기에 너희는 사랑이 으뜸이라 들었다. 근데 너나없이 천당만 가려 하지 도통 양보는 없단 말이지. 그건 이기주의 아니더냐?”

“….”

“듣기에 너희는 사랑이 으뜸이라 들었다. 근데 너나없이 천당만 가려 하지 도통 양보는 없단 말이지. 그건 이기주의 아니더냐?”

좀 머쓱해했지만 그래도 이 질문을 어찌 피해 갈까, 감사도 호기심이 동하는 듯했다.

“영감께서는 이때것 읽으신 책이 몇 수레는 될 겁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셨다 해서 머릿속이 비좁아졌더이까?”

“그건 아니다.”

“천당도 그런 곳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감사가 포기하는 듯했다.

“그래…이름 석 자나 적어놓고 옥으로 가거라!”

“아직 제 이름을 못 쓰옵니다.”

감사의 노발대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식군이 어찌 서학을 한다 하느냐, 천주교 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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