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중앙 사법기구로는 형조 외에 포도청이 있는데 포도대장인 좌우포장은 각기 고유의 수사권과 옥사까지 가지고 있었다. 평민들은 대개 이 포도청에서 최종 판심을 받고, 항소하려는 양반들이나 제2심인 형조까지 갈 수 있다. 형조의 옥사는 더 중한 죄인들이 수감된다. 그러나 한양에 도착한 우리 포도청이나 형조의 옥사도 아니었다, 곧장 금부 옥사에 투옥되었다. 금부는 임금의 특별지시로 모반죄나 대역죄를 다루는 특별재판소로 현안에 대해서는 형조보다도 상위를 점하고 있엇다. 삼정승 회의인 의정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국왕이 주재하는 어전회의나 관여할 수 있는 일종의 국와 직속 사법기관! 그래서 의금부에 투옥되었다는 것은 살아 나갈 가망이 희박함을 의미한다. 먼 친척뻘 하나가 형조의 녹을 먹고 있어서 귀동냥한 적이 있는데 내가 끌려오게 될 줄은 몰랐다.
“죄인 김대건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이튿날부터 바로 공초가 시작되었다. 금부도사는 아직도 탁덕을 중국인으로 알고 있었다. 최초 조서를 작성한 순위도 현감이 그런 소견을 밝혔고 해주 감사 역시 반대하지 않자 심지어 영의정 권돈인마저 “사학도 김가라는 자가 우리나라 사람 같다는 말이 들리니 이 소문이 얼마나 믿음직한 것인지 모르겠노라.”고했다. 내가 봐도 김 탁덕은 왠지 이국적인 데가 없지 않다.
“조선 사람이라고 하지 않소.”
“그런데 어찌 그리 중국말과 서양말에 능통한가?”
“마카오라는 곳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 편지도 마카오에서 배운 글로 쓴 것이냐?”
그부도사는 증거물 1호로 해주 감사가 중국 배에서 압수한 라틴어 편지들을 흔들어 댔다. 편지를 보자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해주에서 이미 시인했소.”
“1839년 기해년에 김여상이라는 자가 있었다, 아는가?”
“이름은 들었습니다.”
“그자가 제보했었다.”
“….”
“너희한테는 밀고자겠지? 그자의 진술이 아직 공초에 남아있다.”
역시 중앙 법정이요 최고의 사법기관인 의금부다웠다. 최고급 정보를 망라하고 있었다. 금부도사는 서릿발 같은 눈빛을 날리며 바짝 추궁했다.
“김여상의 말로는 1836년 말이나 1837년 초에, 세 소년이 마카오로 유학 갔다고 했다.”
“….”
“죄인 김대건, 세 소년과 무슨 관계인가?”
“….”
“같은 시기에 마카오에 있었는데 그들을 아는가 모르는가?”
둘러대는 건 거짓이 아니다. 지금까지 탁덕은 둘러댈 것은 둘러댔고 ‘나는 답할 수 없소!’하고 묵비를 했다. 그러나 이번 질문은 피해 갈 수가 없다. ‘아는가 모르는가?’ 자백을 하든지 거짓 증원을 하든지 하나만 택하라는 흑백 질문이다. 이제 탁덕의 신분이 밝혀질 때가 온 것인가, 더구나 엄수 녀석이 고문을 못 이겨 중요한 것을 실토했다고 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탁덕도 이미 가늠할 터였다. 금부도사는 결정적인 것을 잡았다는 듯 송곳처럼 개진해 오고 있었다. 어차피 탁덕의 신분이 감추어질 가능성은 전무해 보였다.
“죄인 김대건, 그 세 소년을 아는가 모르는가?” 우룸쭈물한다고만 되는 일이 아니었다.
“….”
“그 태도는 안다는 뜻이렷다!”
“….”
“어허!”
“나요, 내가 세 소년중의 하나인 김대건 안드레아요!”
순간, 위세 차던 ra부도사도 주춤 물러섰다. 만약 의자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뒤로 넘어졌을 것이다. 탁덕의 한마디는 명백한 자백이었다. 같이 꿇려있는 내 입술이 꽉 깨물어졌다.
“….”
금부도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
탁덕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면…그게…사학괴수…네가 그 첫 신부란 말이지?”
금부는 세 소년 중 한 명이 신부가 되었다는 정황까지 잡고 있었다.
“그렇소.”
“….”
금부에 침묵이 흘렀다.
“….”
“그래, 그 겨울에…어린 나이에… 거기까지 걸어가서 공부했다는 말인가?”
공초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정적인 자백을 받아낸 금부도사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고생혓것구먼! 그러면…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아는가?”
“….”
“아깝도다, 아까워!”
혼잣말을 하던 금부도사가 잠시 본분까지 잊은 듯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었다. ‘얼마나 많은 신식 학문을 알고 있을 것인가.’하는 야 뜸을 들이다가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문초를 계속하였다.
“그러면 그때 같이 갔던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냐, 지금 어디 있느냐?”
“한 명은 바로 병사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애덕의 의무도 있고 제 입으론 말하지 않겠습니다.”
“듣거라, 나는 지금 임금님을 대신해서 묻고 있다!”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겐 사랑의 의무가 중합니다.”
“으음….”
금부도사는 갑자기 위엄 있는 자세를 버리고 머리를 쭉 내밀었다. 호기심 반 동정심 반의 표정으로 한 손으로 턱을 괴기까지 했다.
“그런데 너같이 똑똑한 사람이 왜 천주교를 한단 말이냐?”
“진리이기 때문에 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생은 유한한데도?”
“유한한 육체의 생명으로 무한한 영혼의 생명을 마련하는 것이 인생의 의미입니다.”
“영혼이 진자 있느냐?”
“영혼은 이웃을 위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때 존재를 드러냅니다. 흙속의 쇳가루가 지남철을 대면 드러나는 이치입니다. 다만 죄로 인해 숨을 뿐입니다.”
“죄가 무엇이냐?”
“소유하려는 것입니다. 관계가 파괴됩니다.”
“그렇다면 관계는 무엇이냐?”
“올바른 관계입니다. 사람을 물질에 우선하고 임자를 조물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금부도사는 흡사 제자가 스승에게 하듯 질문을 이어갔다. 물론 그도 다소 알고 있는 천주교 지식이겠지만, 저것이 탁덕의 사람 끄는 힘이라고 우리끼리도 얘기했던 접이다. 스스로에게 패해 본 적이 없었을 그것은 당당함이라기보다 천진하게 발산되며 주위를 사로잡았다. 나 같은 장사치들이야 저리 단순해선 살기 힘들지 하면서도 늘 이유를 만들고 돌려 산다는 비겁함을 일깨웠던 점, 탁덕의 이런 면이야말로 하늘이 비친 호수처럼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게 하는 흡인력이다.
“소에게도 영혼이 있느냐?”
“동물에겐 각혼, 식물에겐 생혼만 있습니다.”
탁덕은 되도록 또박또박 발음하려는 것 같았다.
“인간은 비참하지 않으냐?”
“영혼 덕에 본래는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럼 자네는 거룩한 인간인가?”
오히려 탁덕의 눈이 촉촉이 되어 금부도사를 굽어보았다.
“잘 들여다보십시오, 나으리 안에도 거룩한 씨앗이 있습니다.”
“허허… 영혼은 없어지지는 않는단 말이지?”
“비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소위 너희들의 하느님 나라에 가지 못한 영혼은 어찌 되느냐?”
“영혼의 태양인 하느님이 부재하시니 긑없이 어두울 수밖에….”
“끔찍하구나!”
“인생이란 한 번밖에 없습니다.”
“어찌해야 그 나라에 들어가느냐?”
“임자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으음….”
“육으로만 살수록 영의 생명은 줄어듭니다.”
“으음….
“영으로만 사는 이에겐 죽음이 죽음이 아닙니다.”
“으음….”
질문을 마친 금부도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땅바닥만 쳐다보았다. 고민이라도 생겼는지 어색할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탁덕에게 걸어와 이렇게 속삭이고 가는 것이었다.
“김 공, 잘 들었소!”
바로 옆 사람이나 들을 수 있는 귓속말이었다. 몸을 일으키면서는 한마디 더했다, 그래도 대대로 집안이 유학(儒學)을 하니…라고.
“평화를 빕니다.”
탁덕도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금부도사는 빠르게 제자리에 돌아가 앉더니 크게 외쳤다.
“이것으로 본관의 문초는 모두 마친다. 물리거라!”
자리를 파한 금부도사는 곧바로 공초 서기에게 갔다. 무엇인가 지시하는 투라기보다는 상의하는 모습이다. 아마 공초 후반부를 기록하는 데 조율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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