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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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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배주인 임성룡(6) 날짜 2015.05.19 10:51
글쓴이 관리자 조회 258

열흘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사나흘 공기가 달라졌다 여겼었다. 매일같이 오던 조정의 심부름꾼이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옥리들이 유하지 않았다. 잔뜩 긴장하는 상이 변고라도 생긴 걸까.

“대역 김대건은 지체 없이 출두하라!”

라틴어 편지를 번역하라던 그 전담관이었다. 본시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상인 데다 오늘따라 범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사람 서넛 잡을 기세다. 필시 사단이 난 것이다.

“죄인은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삼족을 멸하리라!”

“바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함대 세실 제독이라는 작자가 누구이냐?”

“….”

꿀꺽, 탁덕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곁으로 끌려나간 내 귀에 크게 들렸다.

“귓구멍이 막혔느냐, 세실이 누구냐?”

“무슨 일입니까?”

“아느냐고 물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자가 영의정 대감한테 편지를 보내왔다. 기해년에 우리가 프랑스인 3명을 참수한 것에 대한 항의다.”

“….”

“앵베르, 모방, 샤스탕의 참수 이유를 밝히고 이런 일이 재발할 시는 프랑스 군함이 조선에 커다란 재해를 입힐 것이라 하니, 협박 아니고 무어란 말이냐?”

“….”

탁덕도 아무 말을 못하고 있었다. 문초관은 뭔가를 캐내려는 의도보다 ‘지금 너의 상황이 이렇다!’하고 통보하려는 정도였다. 이내 공초는 파하고 우리는 옥으로 되던져졌다. 요 며칠 경직된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세실 제독이 누구인가, 탁덕의 말로는 몇 년 전 에리곤 호에서 그의 통역관을 해주었다고 한다. 아편 전쟁을 매듭짓는 남경조약 조인식에도 대동했으니 일회성 고용만은 아닌 듯하다. 그 세실이 조선에 유간의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편지의 발신 일자가 6월 1일이라니 우리가 6월 5일에 체포된 줄은 까맣게 모른다. 만일 이를 알았더라면 신중했을 것이 여파가 바로 사형수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무슨 조화란 말인가?”

탁덕이 혼자 하는 소리를 다 낸다.

“이 민족을 살펴주소서.”

탁덕의 난감한 표정에는 한때 든든한 후원자였던 세실이 목을 죄어오는 상황 말고도 다른 고심이 더 짙어 보였다. 아마 천주교가 민족 앞에 외세로 오해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빛이다.

“신부님, 세실의 함대가 와서 구해줄 것이니 우린 이제 산 목숨이에요, 그렇지요?”

멋도 모르는 엄수가 지껄이고 있지만 천만에, 나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 편지가 가져올 결과를…. 사형수들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다. 운이 좋아 집행이 연기될 수도 있지만 관련사건이 터진다면 권력자들은 일벌백계를 쓴다. 그러지 않아도 중국이 서구외세들에 시달리는 쪽으로만 보는 조정이 프랑스의 유감스런 편지를 받앗다면 이는 십중팔구 우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의미한다. 탁덕이 다시 북족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 죽 보아왔지만 저런 표정 저 눈매일 때는 늘 같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진다.

‘양업아… 아무래도 때가 온 것 같다.’

하는 안색 말이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성호경을 그었다. 마치 하직인사라도 하는 동작이었다.

“두 사람 중 누가 글을 쓸 줄 아는가?”

엄수가 고개를 저었고 나도 손사래를 쳐버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섰다. 탁덕은 내일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니 이런 일은 미리 해두는 것이 좋겠다며 자기가 라틴어 한 줄을 쓰고 언문으로 일러줄 테니 그대로 받아쓰라고 했다. 만의 하나 원본이 분실될 것에 대한 대비라며 붓을 들자, 아버지도 따라 붓을 들었다. 탁덕이 아버지에게 일러주는 구절구절이 내 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베르뇌 신부님, 메스트르 신부님, 마카오에 계실 리부아 신부님,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여러 신부님께 본래는 따로따로 편지를 올려야 마땅하나 이렇게 한 장의 편지를 드리게 되어 큰 결례인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처지가 여의치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공경하올 신부님들에 대한 저의 뜨거운 마음이 이렇게 펜을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만 붓을 놓으며 공경하올 여러 신부님께 마지막 하직인사를 드립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베르뇌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지극히 공경하올 메스트르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지극히 공경하올 리부아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오래지 않아 천당에서 영원하신 천주 대전에서 만나 뵙기를 빕니다. 다른 공경하올 신부님들께도 저를 대신하여 인사드려 주십시오.

그리고…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양업 토마스여, 잘 있게…. 이후 천당에서 다시 영원히 만나세. 내 어머니 우르술라를 특별히 보살펴 주기를 그대에게 부탁하네.

라틴어 편지에는 이렇게만 쓰기로 했다. 공개 서신이라 위의 모든 신부님들이 다 보신 다음 마지막에갸 양업 부제에게 돌아갈 것이라 했다. 그러나 우리만 편지에는 몇 글자 덧붙였다.

양업아, 나는 지금 내밀한 편지를 별도로 보낸다. 나의 벗 토마스여 잘 있으시게, 벗을 만난 것은 나의 완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네. 동반이여 더디 오시려나, 천당에서도 없어선 안 될 반쪽이여! 형제여 잘 있으시게, 형제라는 말의 뜻을 알게 해주신 이여. 어늬 나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곳에 앞서 감이니, 부탁하네. 내 다 못한 뒤를 당부하네. 네가 나만 믿으니 나도 너말 믿고 감이네. 부디 너의 모든 관계 속에서 모든 일속에서 나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말아주게! 너의 그리스도와 나의 그리스도가 한 분이듯 너와 나도 하나임을 기억해 주시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결박당한 저는 그분의 권능을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가 이 혹독한 형벌을 긑까지 이겨내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시면, 누가 감당할 수 있나이가!

추신. 산동의 조기잡이 어선들은 4월에 6월에 돌아갑니다.

탁덕은 마지막 임무였던 해로 개척의 보고를 잊지 않았다.

옥중 첫 편지를 스고 일주일이 지났을가, 그동안 탁덕에게 일어낫던 일들이 객관화되어 간다고 했다. 탁덕이 다시 붓을 들엇다. 자신의 상급자에게 일의 전모를 사실대로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조선인 신부를 잃고 슬퍼하실 가엾은 페레올 주교님이라고 하였다. 경위 보고이기 때문에 사건일지처럼 딱딱하게 쓰자고 했다.

공경하올 주교님,

우리가 주교님을 떠나온 후 한양에서 일어난 일은 이미 잘 아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쯤은 제게 닥친 일에 대해서도 들으셨을 줄로 압니다.

이상으로 지금까지의 일들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저의 모친 고 우르술라를 부탁드립니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위로해 주십시오. 간곡히 청합니다. 이제 저는 진정으로 주교님의 발아래 꿇어 하직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베지 주교님께도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다블뤼 신부님께 지극히 공손한 하직인사를 드립니다. 이다음 천당에서 뵙겠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탁덕 김대건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탁덕은 저번에 빠진 신부들의 이름까지 곰꼼히 챙겼다.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서양 탁덕들이라 생각된다. 자신이 못 다한 업무를 부탁한다는 뜻으로 인사를 채기는 듯한데, 얼핏 천상까지도 이어지는 끈끈한 소속감 같은 것이 느껴져 왔다.

교우들 보아라.

8월 29일, 탁덕은 교우들에게 쓰려던 편지를 잠시 멈추었다. “왜 우리말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왜 우리말은 모든 말끝마다 이리 깐깐한지 모르겠다. 왜 우리말은 첫마디부터 ‘너’가 ‘나’의 ‘손위’냐, ‘손아래’냐는 결정을 에누리 없이 물어오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잦은 대화 중에서, 얼마나 많은 관계 안에서 우리말의 저 존댓말 반말 때문에 분심이 드는가. 그래서 어떤 때는 중국말로 대신하고 서양말로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존댓말로 해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달아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도 신부는 귀신 신자 뒤에 아버지 부 자가 붙었지 않은가? 어부 할 때 부 자가 아니고, 농부 할 때 부 자가 아니다. 신앙상으로는 어린애부터 연세 드신 분에게도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 어떤 것이 사목적으로 좋을까? 어떤 표현이 효과 있을까? 그렇다. 아직 우리 조선은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다. 이 영향은 향후 백 년은 족히 갈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과 가부장적 전통은 희박해질 수 있으나 아직은 아니다. 내가 좀 욕을 먹더라도 이 땅에서 더 사목적인 표현을 쓰자. 관계란 것도 질서가 잡힌 다음일진대 삼강오륜이 저토록 뼛속 깊은 겨레가 아닌가? 가족 안에도 질서는 있어야 하는바, 어릴 때부터 되어야 할 학습이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당장은 외롭더라도 질서를 잡아주는 부성 본연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조선의 질서다. 질서를 무시했다가는 교회에 이로울 것이 없다. ‘교우님들 보십시오!’ 이것보다는 다른 표현이 낫겠다고 했다. ‘교우님들 보십시오!’는 양업 부제가 해도 될 몫이라고 했다. 김 탁덕과 나의 아버지 임치백, 이미 순교를 각오한 두 사람의 대화는 추호의 허물도 없어 보였다. 탁덕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의 붓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탁덕은 우리 벗이라는 말을 택했다. 첫인사 ‘교우들 보아라.’의 강한 어조가 조금 부드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리라. ‘생각하라!’도 ‘생각할지어다!’라고 누그러뜨렸다.

…실이 없으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며…주의 은혜만 입고 죄를 지으면 아니 남만 못하리. 추수 날에 영근 자는 주의 자녀로 천국을 누릴 것이고 만일 영글지 못하였으면 주의 원수가 되어 영원히 벌을 받으리라. 이런 박해를 당하여 부디 마음 약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의 보호를 빌어, 삼구(三仇:욱신,세속,마귀)를 대적하고 박해를 참아 받아 주께 영광을 드리고, 여러분의 영원대사를 경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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