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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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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배주인 임성룡(7) 날짜 2015.05.19 10:55
글쓴이 관리자 조회 300

부디…청컨대…영원대사를 경영하라, 하루살이처럼 살지 말고 이상을 가지고 살아라! 백 년을 대계하라. 영원을 대계하라. 꿈을 포기하지 마라. 천주와의 끝없는 굼을 키워가라! 이런 말들도 쓰고 싶었으나 가능한 절도 있게 쓰자고 했다.

할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입 맞추노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이 대목에서 또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매다. 이마에는 양업 부제라고 쓰여 있다)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몸 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영원한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안드레아 김 신부가….

9월에 접어들자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바뀌었다.

나느 올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준비도 없던 출항이었다. 한강변에 봄이 가득하던 날 백령도를 다녀오자던 탁덕과 함께 뱃놀이나 할 겸 닻을 올렸는데, 그길로 이리되고 말았다. 죽을 길이다. 옳게 결심해 본 적도 없이 당해야 했던 다그침들, 순교를 할 것인가 배교를 할 것이낙. 그래도 에누리 없는 현실은 이 대담 한마디를 하기 전에 있는 가공할 고통이다. 일체를 망각시켜 버릴 만큼 지독하다.

어제 엄수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를 시인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쌀 한 가마니와 고기를 끊어가지고 나가는 뒷모습이 아직 마음에 길게 남아있다. 신자 집안의 많은 가산을 몰수한 양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만 그래도 금싸라기 같은 쌀을 가마니째 척척 내어주는 포졸들을 보면서 나는 질려버렸다. 최근 들어 그들은 제발 배교의 몸짓 하나면 된다며 통사정을 해왔다. 어떡해서든지 자기들의 뜻을 관철하려고 나긋나긋하다가 갑자기 흰쌀보다 하양게 눈깔을 까집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구 하나라도 배교를 인정하면 누런 이빨을 바가지로 드러내면 쾌재를 부르는데, 맹신교도가 따로 없다. 직급이 높은 자일수록 더 그러한데 승리감과 더불어 사교를 교화시켰다는 긍지가 비쳤다.

이럴 때일수록 정말 절대자께서 한마디만 해주시면 나 같은 사람도 확고해질 것이다. 모든 인내를 동원하여 갈 데까지 가볼 거다. 그러나 묻고 되물어도 답은 여전히 내 쪽으로만 돌리시니, 완전한 믿음으로도 다잡을까 말까 한 통증을…. ‘네에….’딱 이 대답 하나로 집으로 돌아간 엄수가 자꾸 눈에 보인다.

실은 오늘 오전에 형이 또 면회를 왔었다. 아버지와 나를 회유한다니까 포졸들도 반색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를 번갈아 보다가는 눈물만 쏟고 갔다. 아버지는 나를 걱정하시면서도 당신은 모든 준비를 마치신 것 같았다. 내가 문제였다, 내가. 아버지가 어떻게 하시든 형이 뭐라고 하든 엄수가 나가서 어떤 생을 살든 모두 제삼자이고 이젠 내가 문제다. 내가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니 결정은 했지만 끝까지 견지해 내느냐가 문제다.

“임성룡 출두하라!”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횃불을 밝혀놓기는 했지만 왠지 몽롱해지는 것이 아득한 어린 시절 횃불놀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들은 다짜고짜 의자에 묶더니 잠방이를 걷어 허연 허벅지를 깠다. 시커먼 체구 둘이 명주실 한쪽을 잡더니 톱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명주실은 피를 튀기며 시뻘건 살 속을 쓱싹 썰어들고 있었다.

쏴악, 찬물 뿌려지는 소리에야 기절해 있었음을 알았다. 혼미한 시야에 누런 이빨들만 보일 뿐, 배교할 것인가는 아예 물어주지도 않고 다시 그 짓들을 해댔다. 그 질긴 놈의 실이 뼈까지 파고들어 갔을 때 나는 또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주 깊은 밤이었다.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공초관인데 상은 엄수의 것을 있었다. 그가 아직 멀쩡한 내 다른 허벅지를 걱정하듯 은근히 입을 열었다.

“임성룡, 나이가 아깝지도 않느냐, 기해년의 정국보 알지? 그자도 일단 배교했었다. 지금은 너희들도 다 순교자라 하질 않나? 김대건이 아버지 김제준도 그랬고, 최양업이 엄마 이성례도 마찬가지지. 너도 최소한 그네들 나이까진 살아야지 안 그래? 뭘 너만 잘났다고 그래. 다음 기횐 얼마든 있다고….”

그 엄수 같은 포교는 창창한 허벅지를 계속 안쓰러워했다.

“이 사람아… 오늘만 날이가?”

경상도 말투라 더 친숙하게 들린다. 느닷없던 출항에다 갑작스런 체포였으니 다음번에나 제대로 해보라는 말만 윙윙거린다.

“그래, 그때 해도…늦지 않아.”

“….”

성룡아, 하며 친형처럼 어깨까지 다독거려 준다.

“아이 참, 오늘만 날이냐고?”

으흐흑,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자는 재빨리 내 등을 쓸어내리며 확인할 것을 재차 확인해 왔다.

“그래그래, 배교는… 하는 거지?”

내 머리는 분명히 끄덕이고 있었다.

천주강생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아 안 된다, 나에게는 갠 하늘이 제일 싫다. 만날 천둥번개에 폭풍우나 몰아쳤으면 한다. 아침마다 오는 태양 때문에 미칠 것 같다. 좋은 음식에 막 물려받을 유산이면 뭐한, 언젠가 내가 모른다고 한 분 앞에 서게 되면 그분도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보름 가까이를 방구석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했다. 물 한 모금도 넘기기 어려웠다. 잠을 청해 누우면 가슴에 불길이 치받아 일어서게 되는데, 이내 무너져 내려 호흡조차 하기 힘들다. 영원하신 분을 고백할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아침에야 형한테 김대건 탁덕 이야기를 들었다. 오후 3시에 새남터에서 형이 집행된다는 소리엔 내 성치 않은 다리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분노가 아직 꼿꼿한 죽음을 보존하고 있는 자에 대한 부러움으로 사무쳐 현장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많은 사람들 주위를 기웃거리지도 못하고 한옆에 버려진 채 기다려야 했다.

오후가 되자 저만치 군사들 속으로 김 탁덕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풀어헤쳐진 머리 위가 곧바로 가을 창공이었다. 하얀 백사장에 내려온 파란 하늘…. 그래 하늘까지 닿아보자 발돋움하고 하늘까지 닿아보자 까치발 뜨고! 내 임께서 왕하시는 곳이 아니가. 곧 그분 향한 일생이 완성될 곳이라는 듯 창천을 응시하는 탁덕의 더운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내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을 단번에 살라버리는 불이 일었다. 그것을 열애였다.

열애…. 불꽃 같으나 결코 꺼지지 않는 것, 시들지 않는 욕망의 줄기. 한 인간 안에 저토록 오래도록 늘 새로운 분출. 영혼의 바람 타는, 그 술렁이며 오시는 그리움. 시원의 언덕에서 내리얼서 그리로 되솟구치는, 되타오르는 갈망의 줄기. 온 세월을 품안에 함께하고도 영원마저 탐내하는 인간의 더운 본질적인 요망, 깊어져 고양된 생명… .

이런 두서없는 언어들로 머릿속은 다시 뒤죽박죽되었으나 그 끝만은 개운한 것이었다. 탁덕 한 사람의 열애라기보다 인간이면 누구나 지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는 듯해서 더 후련했다.

형의 말로는 이번 선고와 집행의 절차가 일사천리였다고 한다. 8월 말, 세실 제독의 편지가 영의정의 손에 전달된 후 몇 번의 어전회의가 있었고, 어제 9월 15일의 최종결정이란 오늘 새남터에 대중을 동원해 군문효수하라는 것이었다. 사형집행을 위해서는 임금의 재가가 필요한즉 어제부로 국사범을 임금의 호위군인 어영청으로 인계했다.

‘그래도 육시나 능지처참보다는 낫네.’ 귀가 닳도록 들어온 끔찍한 사형법들이었다. 군문효수라는 소식을 듣고 탁덕은 그동안 좋게 대해준 대신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원래 군인들의 연무장이던 새남터는 중범의 처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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