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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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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선장(3) 날짜 2015.03.03 16:49
글쓴이 관리자 조회 268

?천주강생 1845년 8월17일

?상해 금가항 성당 오전10시,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가 탄생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맨 앞에 앉아있는 대건은 며칠전보다 뿌옇게 피어있었다. 피정하는 동안 잘 쉬어서인지 기쁨이 뿜어나서인지 얼굴에 온통 광이 나고 있었다.

?“주여 당신 집에 사는 이는 복되도소이다.”

?장엄한 성가소리와 함께 드디어 서품미사가 시작되었다.

?천주교 의식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완전히 같다고 했다. 모든 민족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 대해서 보편된다는 뜻이 ‘가톨릭’이라는 말이라서 그럴까, 미사하는 몸동작, 주고받는 대화 하나까지, 심지어 앉았다 일어서는 것까지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식의 3대 특징이 단순 소박 장엄이라는데 루 선장 같은 문외한도 듣자마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어떻게 단순 소박하면서 장엄까지 할 수 있을까, 서로 상반되는 분위기인데 말이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례가 중반을 넘어선다. 루 선장은 맨 앞에는 못 앉고 뒤쪽은 더욱 싫고 그저 중간 정도에 엉거주춤 앉아있었다. 식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서야 며칠 전 딸 루루를 선보인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웅장한 성당에 이렇게 빼곡한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색유리 빛살로 보이는 대건의 얼굴은 가히 백마를 탄 왕자도 울고 갈 무엇으로 가득 서려있다. 서품식으로 혼인서약까지 한다고 했다. 배우자란 그의 하늘이 내려준 제단이라 했다. 평생 저 제단을 반려자로 삼아 남성 전체를 깨끗이 봉헌할 것이다. 저 제단이 있는 곳이 원앙 침방이요 세상 끝 어디를 가도 고향의 품이다. 그런 대건의 얼굴이 빛난다. 하도 수려해 같은 남자인데도 아깝다 못해 공연히 슬퍼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이런 사제서품이나 수녀원의 종신허원식에 가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꽃봉오리 같은 처녀가 붉은 입술로 ‘한평생 하늘만을 정배고 삼아 온전히 바치겠습니다.’며 보이지도 않는 하늘에게 시집가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도 극에 달하면 슬퍼진다는 소리일 게다.

?루 선장이 만난 젊은이 중 가장 멋진 청년이 아니던가. 어떻게 해서든지 사윗감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바닥에 완전히 엎드려 한 줌의 흙처럼 되겠다는 예절을 하고 있다. ‘이제 나는 세속에 죽었습니다.’ 아깝다가 안타까웠고 그 끝에 부아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 대건의 티 없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에는 아예 거룩하다는 기운에 눌려버렸다.

?거룩함의 본질이 무엇인가? 이것도 근자에 대건 덕분에 귀동냥한 것이지만, 거룩함이란 합리적인 교환에서 오는 게 아니라 불합리한 교환에서 오는 정서란 것이다. ‘정말 이런 거래는 말도 안 된다.’고 심리적인 불편을 느끼다가 불공평한 사랑을 더 크게 보았을 때는 급히 역전되어 ‘왠지, 저것은 거룩한 것 같다.’는 신성의 정까지 간다는 것이다. 가령 펠리칸이라는 새는 새끼에게 줄 먹이가 떨어지면 부리로 날개 속을 쪼아 피를 주는데 새끼들이 맛있다고 보챌수록 생명 일체를 내어준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루 선장도 지금 대건에게 유사한 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러니 며칠 전 숭명도에서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던가.

?“이 사람들이… 진리 위해 몸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끊임없이 울리는 성가소리는 자연 머리를 하늘로 들게 한다. 루 선장은 사실 천주교가 있다는 것조차 몇 달 전 대건 때문에 알게 되었다. 사월 초파일에 불교 사찰엔 가본 적이 있다. 거기 승려들도 진리를 위해 평생 남성 전체를 수도의 희생물로 내어놓지만… 그렇지 않은 종파도 적잖다고 들었다. 천주교는 왠지 공식적인 모습이다. 뭔가 정식으로 봉헌하고 공적으로 선포된다는 느낌이다.

?“저를 보내주소서! 저를 보내주소서!”

?“엑체 에고 미떼메 엑체 에고 미떼메…저 여기 있으니, 저를 보내주소서!”

?라틴어라는 말과 중국말이 섞인 성가가 시작되자 대건의 눈에서 그동안 맺혔을 물기가 주룩 흘렀다. 루 선장의 시력은 아직 최상이고 줄곧 거기만 보고 있었기에 이를 놓치지 않았다. 동시에 루 선장 같은 사람의 코허리도 매워지다가 두둑 뜨거운 액체를 떨어뜨렸다. 대건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가사의 내용으로 보아 자기를 어디로 보내달라는 소리 같은데 그렇다면 조국에 보내달라는 것인가. 아직도 진리를 미워하고 박해의 위협만 을러대는 제 민족 제 겨레에….

?딸 루루를 소개시켜 주려 숭명도에 들렀다가 오송으로 귀항하는 선상에서야 대건의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린 나이로 외국에 나와 한줄기 복음의 통로를 뚫어보려 그토록 애썼다니. 겨울 여름 가리지 않고 만주다 백두다 육로에 해로에 더 이상 흘릴 땀도 눈물도 없을 것이다. 쏟아부을 만큼 다 쏟아부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쏟을 것이 있다면 피밖에는 없을 것을…. 그러나 정작 피를 쏟을 때는 울지 않을 것이다. 하여 그때를 대신하여 울 것이다. ‘고난받는 어둠 속의 민족이여, 그를 위해 나를 보내 주소서.’

?본디 선각자는 외롭고말고. 먼저 깨달았기에 앞장서야 하는 숙명이다. 대건도 지금 제 민족의 선각자요 선구자로서 길을 가려는 것이다. 어떤 길인지 알면서도 가야 한다. 끝나도 거기 가서 끝날 것이다. 식을 마치면 바로 조선에 파견될 것이라 했다. 거기는 어느 한 곳도 안전하지 못할 터…. 그래도 저를 보내주소서. 고난받는 민족을 위해 저를 보내주소서. 엑체 에고 미떼메!

?그 순간잉었다. 북쪽 하늘로 들어 올린 대건의 눈매에 장하항에서 가판에 오를 때의 딱 그 표정이 겹치고 있었다. 아니 아까부터 줄곧 같은 눈매인데 필시 이리 말하는 듯하다.

?‘업아, 내가 먼저 앞 장 설 게, 뒤를 부탁한다!’

?‘네가 이 자리에 없지만 가장 가까운 데 앉아있을 너를 통해, 나의 사제 됨을 보고 있다. 거울 같은 업아, 내가 먼저 간다. 엑체 에고 미떼메, 저 여기 있으니 저를 보내주소서!“

?조선의 3대 교구장이라는 페레올 주교도 예절 위치상 가장 가까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평화의 인사 시간이 오자 페레올 주교는 대건을 꼭 꼭 안아주었다. 한 번이면 될 것을 두 번이나, 한 번은 주교의 자부적인 사랑으로써 또 한 번은 그 유일한 친구라는 양업을 대신해서 꼭 꼭 안아주는 듯했다.

?“김 슨상, 아니 김 신부님, 거시기 좋은 일에 보태 쓰시소잉!”

?루 선장은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대건에게 내밀었다. 중국인의 결혼식장은 온통 빨간색이다. 옷도 빨갛고 장식도 빨갛고 예물봉투도 빨갛다. 서품미사도 첫 강복도 끝낸 대건이 하객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루 선장 생각에도 서품식은 결혼식과 한가지로 여겨졌다.

?“이 돈을 돌려주는 것이지라! 지난봄 난파되었을 때 받은 돈에서 조금도 빼도 보태도 않은 꼭 그만큼이랑께.”

?당시 돈을 받고 예인해 준 것은 당연지사였다. 대건 역시 공짜를 바랄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요 며칠 부쩍 께름칙해지는 것이 자기 인생에도 대건처럼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이 하나 있었으면 해진 것이다.

?“거시기 당신의 하늘에 기도나 한번 해주이소잉! 우리 딸 루루를 위해서도…, 그러면 족해브러.”

?대건은 대답 대신 루 선장의 손을 꽉 잡았다. 좋은 일에는 이렇게 선의의 협조자들이 생기는구나, 하는 표정이다.

?“제 첫 미사는 8월 25일 횡당(橫堂)소신학교 성당에서 합니다. 별일 없으시면 오십시오!”

?“알겄소잉! 김 슨상… 아니 김 신부님!”

?루 선장은 천주교의 ‘천’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오늘의 미사는 참으로 볼 만했다. ‘8월24일 김 신부 첫 미사도 볼 만할 거셔…. 첫 번째로 내몸이니 받아먹어라! 내 피니 받아마셔라! 하면 월매나 거시기할까?’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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