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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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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주교 페레올(2) 날짜 2015.03.18 10:44
글쓴이 관리자 조회 240

?어느덧 태양은 서북향 숭명도 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있었다. 곧 어둠이 깔릴 것이다. 저녁식사는 선상에서 하기로 했으니 이젠 정말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자, 이제 출발합시다.”

?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선 청년 최형(베드로)이 후다닥 배 위로 뛰어 올랐다. 그는 대건의 또 다른 벗, 그러니까 먼저 하늘나라에 간 최방제 프란치스코 신학생의 친형이다. 동생이 살아있다면 대건처럼 사제품을 받았을 것이라 여겼는지 몇 번이나 조선회장단을 졸라댔고, 천신만고 끝에 서품식과 첫 미사까지 참석하고 귀국하는 길이다. 더군다나 지금 금의환향하는 폭이 자국의 주교까지 모시고 감이니 그래 올 테면 와봐라 폭풍아 파도야 우리 주교께서 함께 계신다. 하늘이 보우하고 성모님이 지켜주시리라, 하면서 제일 먼저 뛰어오른 것이리라. 다블뤼 신부가 뒤를 이었고 열 명 정도의 사공들이 오른 다음 대건은 본 주교를 부축하여 맨 뒤에 승선했다. 도합 14명 되는 숫자다.

? “으흐흑…. 어찌아스까나 우리 잊지 말아잉! 김 신부님!”

? 루 선장이 울먹이자 대건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준다.

? “하늘나라 가면 아는 체해야 된당께? 우리 딸 루루도….”

??연거푸 딸을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 험상궂은 사람이 흐느끼니까 그런 것에도 기가 눌리는지 다른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볼뿐이다. 대건이 만셀ㄹ 부르듯 손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 “뿌우 웅!”

? “뿌… 웅… 배가 떠납니다.”

??박 바오로가 두 손을 입술에 대고 나팔 모양을 만들어 기적 소리를 흉내 내자 동시에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느 항구나 그렇듯 얼마간의 눈물과 얼마간의 희망이란 돛을 펄럭이며 말이다.

? “짜이찌엔! 김 신부님.”

? “짜이찌엔! 후 선장님.”

? 루 선장이 목청껏 안녕을 외친다. 짜이찌엔은 ‘다음에 또 봐요!’란 뜻이다. 그래요, 거기가 어디든 꼭 다시 봅시다, 라는 말 끝의 여운이 한참을 가시지 않는다.

? 배는 어두움이 깔리는 먼 바다 쪽으로 속도를 내었다. 봄가을로 바뀌는 계절풍을 중국에서 조선 쪽으로 타려면 이 가을이 제철이다.

? “김 신부! 소팔가자에 있는 최양업 부제, 고향이 어디랬지?”

? 늦게야 저녁식사를 마친 터였다.

? “충청도 청양입니다. 제일 매운 고추가 청양 건데 그래서인지 최 부제가 저보다 매운 데가 있습니다.”

? 최양업 부제야 순둥이 중의 순둥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 “그래? 그런 면이 있었어?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근데 김 신부님 고향도 충청도 아니랬나?”

? “예, 저는 당진입니다. 청양서 하루 거리 될 겁니다.”

? “김 신부 집은 어떤 곳인데?”

? “송산리 중에도 소나무가 많아 솔뫼입니다.”

? “당진이라, 내포지방? 그런데 말이야, 거기 말은 엄청 느리다며?”

? “주교님이 어찌 아십니까?”

? “조선 주교 되었다니까 사람들 인사가 다 조선 얘기야.”

? “하기는 주교님들이야 최고급 정보를 가지고 계시겠지요.”

? “그런데 김 신부는… 행동은 민첩한 것 같은데?”

? “아 그럼요, 충청도 사람, 아버지 돌 굴러가요! 말이 느려 돌에 치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우린? 말은 느려도 행동은 빠릅니다. 불나면 불도 잘 끄고요, 밥도 빨리 먹고요…. 주교님 충청도 사람 무시하면 안 됩니다.! 아마 내포 신자들이 제일 많을 겁니다.”

??“하긴 두 성직자가 다 충청도니까. 충청도 사람들은 어떤데?”

? 배에 오르니 마음이 바빠진다. 며칠 후면 고대하던 포교지 조선이려니 하니까 하나라도 알고 싶은 마음은 체면도 잊게 한다. 배는 여전히 동쪽으로 쾌속 항진 중이다.

? “이 얘기가 충청도 기질을 잘 나타낸 것일 겁니다!”

? “그래?”

?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한테 멍청도 하는데, 멍청한 거 같아도 속으론 계산에 밝습니다. 유순해 봬도 어떤 때 더 욱하구요. 충청도 사람들 금방 화나게 하는 방법 알려줄까요. 말끝마다 ‘아, 그랬시유? 아, 그런 거유?’ 해보십시오, 대번 목소리 높아지지. 충청도 사람이 어떤지 잘 보여주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한양 깍쟁이 씨가 충청도 촌길을 지나다가 수박 파는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한 통에 얼마예요?’ 물으니 충청도 씨 왈, ‘글씨… 그게… 그런디유….’ ‘그럼! 한 전에 가져가도 돼요?’ 하니까 갑자기 욱해서 하는 말, ‘냅더유, 집에가 여물이나 주게!’ 여물은 소먹이입니다.”

? “허! 허!”

? “제 생각에 옛날 충청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번갈아 차지하던 국경지대니까 섣불리 한쪽에 가담했다간 삼족멸문이라 속내 드러내길 신중히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말도 느려진 것 같습니다.”

? “일리 있네. 하여간 나도 조선말 빨리 배워야 할 텐데. 모방 신부님이 봤다는데, 그뤼기에르 소 주교님 일기를…, 그 조선말 배우려고 험청 노력하셨대….”

? “예에….”

? “그 양반 열정적인 나머지 무모한 기질도 있으시잖아!”

??“그건… 저도 좀 그런데….”

? 무모라는 말에 대건 신부가 멋쩍게 얼굴을 붉힌다. 언젠가 그에게 넌 추진력은 좋은데 마구 밀어붙이기만 하면 어쩌냐, 며 핀잔 주던 일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나 역시 하던 말을 밀어붙이려고 한다.

? “국 샴에 계실 때 그레고리오 16세 교황님, 당시 카벨라리 포교성이실 때지. 조선 지원하라고 했는데 한 명도 없었잖아? 그때 이이가 조목조목 이유를 따지더니 자기가 가겟다고 세게 나오셨다고! 유명한 말씀도 하셨지. ‘나는 여기에 영원히 살 것처럼 머무르고, 내일 곧 떠날 것처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란….”

? “실은! 그 말씀 듣고 저도 조선 지원한 겁니다. 선교사로서 최고 멋진 말씀예요.”

? 다블뤼 신부도 소 주교님을 좋아하나 보았다. 나는 요사이 부쩍 자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데…말씀처럼 바로 출발하셨다고! 조선교구 설정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다음 날 ! 당연히 여비가 없으셨겠지. 태국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가는 돈만 되더래. 그래 필리핀 주교님들이 돈을 걷어주었다네. 한데 바다에서도 돈 냄새가 났던지 복건성 오시다가 해적들한테 잡힌 거야! 돈도 다 빼앗기고 며칠을 배 밑에서 중국 신학생 출신 길잡이 거 누구더라?

? “왕 요셉 씨요!”

? “그래 그 와 씨… 그이하고 같이 해적선 밑창에 갇히셨는데, 거기서 줄곧 뭐 연습했는지 아나?”

? “조선말이겠지요?”

? “응, 언어는 물론이고, 조선은 의자 없이도 양반다리 하고 앉는다고 그걸 연습하셨대. 근데 엉거주춤 자꾸 뒤로 넘어진다는 거야. 허!허! 그리고 뭐까지 연습하셨는지 아나?”

? “뭔데요?”

? 대건과 다블뤼 신부의 귀가 쫑긋해졌다.

? “어디서 들으셨는지, 조선에선 코를 풀 때 한쪽 콧구멍을 막고 킁 하고 바람을 내면 콧물이 저만큼 날아간다고, 그런데 당신은 번번이 실패해 얼굴에 묻기가 일쑤였대.”

? “하! 하! 하! 하!”

? “하여간에 그 양반, 아무리 피곤해도 일기는 꼬박꼬박 쓰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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