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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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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주교 페레올(3) 날짜 2015.03.25 10:29
글쓴이 관리자 조회 170

?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환담을 나누는 사이에도 라파엘호는 동북진, 거침없이 내닫고 있었다. 그런데… 배의 속도가 빠르다 싶다. 아니, 너무 빨라졌으니 바람이 그만큼 세어진 것일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다만 이때쯤 불어오는 초가을 태풍이다. 조선은 6-7월경 우기가 온다는데 장마는 대단치 않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의 편지엔 가을 태풍 때문에 누렇던 벼 이삭이 썩어나갈 땐 백성은 울도 못한다고 했다. 아예 기진맥진해지는 걸 보며 아, 불보다 물이 훨씬 무섭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고 쓰고 있다. 만약 항해에 이 유사한 거라도 걸린다면 라파엘호야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바람결을 보건대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는 않다. 대건 신부도 15년을 살았으니 분명 이 불청객을 경험했을 것이다. 서서히 굳어지는 빛이 주머니 속에선 벌써 묵주알을 굴리는 듯하다.

? “이거 날씨가…아무래도 이상한 거 아녀?”

? 박 바오로가 잔뜩 키를 움켜쥐며 중얼거린다. 오송항을 떠나온 지 나흘째, 앞으로 이만큼만 가면 한강을 타고 수도 한양에 도착할 것이다. 야간을 틈타다가 정 급해지면 배야 버려도 무방하다.

? “주교님, 상의드릴 것이 있습니다.”

? 드디어 대건 신부가 입을 열었다.

? “바람이 이상합니다.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만.”

? “일단 태풍이 올라온다면 우리 배로는 도저히 안 되고…. 혹시 산동항에 조선 가는 배가 있을지 모릅니다. 돈을 좀 주더라도 예인해 달라는 방법이 어떻겠습니까?”

? “근해 바닷길엔 제일 밝으니 김 신부 의견에 따르겠네.”

? 내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대건이 키잡이를 돌아보았다.

? “바오로, 거기 나침반 있지?”

? “그럼요, 제일 중요한 건데.”

??"바람이… 일단은 산동항이다. 북서쪽으로 조금 가면 바로지.”

? “넷, 선장 신부님!”

? 말 많은 박 바오로가 금시 찬동하는 것을 보면 제 딴에도 몸이 달았던 모양이다.

? “진짜 바로네.”

? 한마디씩 하며 산동항에 내린 우리는 배부터 물색하기로 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대건의 장점인지는 익히 알고 있다. 그는 일견 부두 한편에 있는 사무소를 찾았고 조선으로 가는 가장 이른 배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명일 출항하는 배가 있다는데 라파엘호의 몇 곱절에다 새 기선이라는 것이다. 아 하늘게 감사! 이럴 때는 감사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하면서 대건 신부는 숨을 내쉬며 보고하였다. 놀랍게도 그 선장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열심한.

? 사무소 소개인의 말로는 원래 그의 부인만 성당에 다녔는데 한번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다. 커다란 배도 가랑잎처럼 떠밀리자 다급한 김에 뱃머리에서 소리나 질러봤단다. “마누가가 믿는 하늘이시여, 이번 딱 한번만 봐주시면 조도 믿겠습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거짓말처럼 바다가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급거 회항한 밤으로 성당에 몰려가 마침내 사공의 절반이 세례를 받게 된 일화는 산동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대건 신부가 마치 아이처럼 들떠서 보고했을 때 나도 무릎을 쳤다. 기묘하신 안배로고.

? “오늘이 9월 8일 성모탄신 축일인데, 주교님 신부님들 저희 배에서 미사 드려주시면 더없는 영광이겠습니다.”

? 이튿날 만난 하 선장은 독실해 보였다. 어떻게 성모탄신 축일을 기억하는 중구 뱃사람이 있는가 싶다. 나 역시 반색하며 그의 배에 올랐는데 규모가 있는 것이 제대로 된 기선이었다.

? “주교님, 조선 한양까지 편히 모셔다 드리지요. 제 배에 오르시죠? 저 배는 주교님이 타시기엔….”

? 뜻밖이라 더 감칠맛 났던 선상 미사를 마치고 하 선장이 잠시 마련한 다과회 자리였다. 나는 정중히 사양하였다.

? “그렇지만…우린 한 배를 탄 사람들인데 내 몸 하나만 빠져나와서야 말이 안 되지요. 선장님 말씀이 고맙습니다.”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건 신부가 말을 이었다.

? “하 선장님, 점심 먹고 바로 출항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지만 내 생각에도 산동에서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바람도 잦아들었고 언제 만들져 소멸될지 모르는 태풍만 걱정하기엔 가을 하늘색이 워낙 좋았다.

? “뭐, 저희도 출발할 참이었습니다. 그렇게들 하시지요.”

? 뿌~웅! 이번엔 사람 소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적소리였다. 하 선장의 배가 이렇게만 정동진하여 닷새 후 조선의 한강 유역에 진입하면 일단 선교사 입국은 성공이다.

? “어기야디여-차 뱃놀이 가-잔다. 부딪히는 파돗소-리 잠을 깨-우니 들려오는 노 젓는 소-리 찬 처량도 하구나.”

? 박 바오로가 우리 쪽을 보고 씩 웃더니 다시 흥을 내기 시작한다.

? 이틀을 정동진하는 동안 그나마 날씨가 도와주고 있었다. 간간 바람이 심상치는 않지만 구더기 무서우면 장 못 담근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조선에 들어가야 한다. 세 분의 사제들이 순교한 것이 1839년 기해년이니 6년 동안 성사 한 번 못 본 신자들은 주린 젖먹이가 어머니를 찾듯 목자를 기다리고 있다. 신앙 하나 때문에 백년가옥 문전옥답 버리고 야반도주 산속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김대건 부제에게 서둘러 신품을 준 이유도 들어간 사람들이다. 김대건 부제에게 서둘러 신품을 준 이유도 부제로서는 성사 집행을 못하니 신부를 만들어 올 계절풍엔 반드시 조선땅을 밟으려는 뜻이었다. 바로 출발하자는 김 신부 말이 은근히 고맙기도 했던 이유다.

? 그러나… 또다시 바람이 문제였다. 바다에 대해 ‘바’자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점점 심상치 않다.

? 그렇다고 라파엘 호와 화물들을 포기하고 큰 배로 옮겨 타야 하는가. 한강 어귀부터 우리끼리만 신속히 움직이려면 짐들을 예인선에 실을 수도 없는 노릇, 결정을 내린다는 건 결정을 따르는 일보다 언제나 힘이 든다. ‘쉬~이이잉.’

? ‘쉬~이이잉.’

? ‘쌔~애애앵~쌩.’

? 더더욱 거세진 바람에 배가 뛰놀기 시작했다. 사흘을 더 나왔기 때문에 산동으로 회항할 수도 없다. 누구 하나 비명 같은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격해지는 진동에 그나마 천주교인들만 주교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쉴 뿐이다. 나 역시 내심 그분에게만 집중하려 한다.

? ‘우우웅.’

? 바람은 이내 라파엘호의 몇십 배 되는 가공할 파도를 만들었나 보았다. 모든 것을조각내 버릴 세(勢)로 순식간에 배 안을 궤짝처럼 흔들다 빙빙 돌려대도 차마 어지럽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정말 이러다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만 싶은 눈치들이다.

? ‘후두두둑.’

? ‘쏴~아아아.’

? 이제는 바람만 부는 것이 아니었다. 빗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 “빨리빨리.”

? “저쪽도!”

?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물을 퍼내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퍼내도 들이치는 양을 당해낼 수가 없다. 나 역시 체면이고 뭐고 뱃고물 쪽에 자리를 잡고 팔을 걷어붙였다. 삐걱거리는 갑판의 판자들을 더 단단히 묵는 중이었다. 그러다간 다시 물을 퍼내곤했다.

? ‘우루르르 꽈~광.’

? ‘우지지지 쩌억.’

? 9월인데 무슨 천둥번개란 말인가, 갑판에 있던 대건 신부가 그답지 않게 허둥지둥 뛰어들기 전까진 분명 천둥소리뿐인 줄로만 알았다.

? “주교님…갑판 한쪽이…부서져 나갔습니다.”

? 아뿔싸! 더 이상 배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락 4분의 1가량이 떨어져 나갔는데 나머지도 겨우 붙어 있는 상태다.

? “안 되겠네. 김 신부, 하 선장한테 예인선에 갈아탄다 하게!”

? “알겠습니다.”

? 이 정도까지 돌풍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견딜 만했던 파고가 거대한 산맥들이 되어 끝없이 덮쳐왔다.

? “하, 하 선장님, 줄을 던져요!”

? 대건이 소리쳤다. 아직 예인줄에 연결돼 있다고는 하지만 라파엘 호 갑판 자체가 없어지면 무용지물일 뿐,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모선에서 던진 구명줄로나마 옮겨 타는 수밖에 없다.

??결국… 하 선장의 고함도 겨우겨우 들리게 되었다. 지금부터 밧줄을 던져 라파엘호 전원을 구조한닷! 그러다 어어, 으어아. 어찌한다! 하고 부르짖는다. 바로 코앞에서 우뚝 솟아 곧장 돌진해 온 검은 산이 내 눈에도 꽉 차고 있었다.

? “주교님, 꽉 잡아요!”

? 노련한 하 선장마저 초주검이 되는가. 그것 앞에서 자기 하나 어찌 되는 것보단 사제들이 타고 있지 않은가, 하며 절반에도 못 미치는 구명줄을 죽기로 던져보고 있지만, 그러나 아 다 틀린 일. 쓸데없는 짓! 라파엘호에서는 밧줄 하나도 잡지 못하였다. 그냥 어! 어! 하고 있는 찰나… 산은 두 척 사이에서 부우~우웅! 하고 솟고 말았다. 대륙이 송두리째 융기하던 순간, 두 배는 사람 인자로 급경사되어 하나는 고물 쪽이 하나는 이물 쪽이 공중에 쳐들렸다.

? ‘뚜두둑~ 피이웅.’

? 날카로운 끝소리, 두 번째 파도가 솟고 몇 초 만의 일이었다. 굵은 동아줄이 끊어져 버렸다.

? 불가항력적인 일.

? 아악, 갑판을 때려대는 물보라가 외마디마저 삼켜버리자 숫제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아이고 주교님 신부님, 내 책임도 있지…, 하는 울부짖음만 들을 수 있을 뿐 주교의 간절한 기도로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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