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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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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주교 페레올(4) 날짜 2015.03.27 17:32
글쓴이 관리자 조회 234

?‘피이~이웅.’

? 오싹한 여음까지만 파악이 되고 어찌 된 영문인지 혼미해졌다. 어마어마한 괴물이 두 배를 치켜올리자 라파엘호가 180도 회전한 것 같은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팽팽하던 예인줄이 끊어지며 배가 튕겨 나갔음이다. 이제 예인선이 보이지도 않게 되어서는 각자의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 ‘뿌지직 꽈당.’

? 이번엔 돛대였다. 광풍을 이기지 못한 것이 뚝 부러져 내리는 소리, 그야말로 우리는 망망대해에도 돛대도 삿대도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고물 쪽 난간을 잡고 있다 정신을 차렸는데 저만치 이마의 피를 훔치며 주위를 살피는 대건부터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 배 밖으로 튕겨 나간 선원은 없고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이 서넛. 기절을 했을 것이다. 다블뤼 신부도 비실비실 일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 “주교님, 괜찮으십니까?”

? 대건 신부가 황망히 물어온다.

? “그런 것 같네, 다블뤼 신부는….”

? “저도 괜찮습니다.”

? 대건 신부는 곧바로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갔다. 박 바오로와 또 한 명은 심하게 부딪혔는지 의식을 잃었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정 서방과 오 서방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누워버린 것같다.

? “잠깐… 배를 점검해 봅시다.”

? 대건의 말에 즉시 대여섯 명이 동참했다. 작은 배였지만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펴보려는 것이다.

? 다행히 바람은 한고비를 넘겨 개벽하던 파도도 잦아들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 뒤로 빛살까지 퍼지고 있었다. 대건의 지휘 아래 사공들은 배를 손보았다. 이제 라파엘호는 비를 가려줄 지붕도 없고 좌우 난간이 붕괴되어 뗏목이나 한가지였다. 언제 분해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바닥보다 심각한 것은 돛대도 없이 해류에 그냥 밀릴 수밖에 없어졌다는 것이다. ‘바다에 떠있긴 해도 얼마나 오래갈까.’ 당장 양식과 마실 물이 문제다.

? “현재… 위치가… 어떻게 되나?”

? “산동반도에서 동쪽으로 250리 지점 같습니다. 중국보단 조선쪽에 가깝습니다.”

? 내 유창하지 못한 조선말 물음에 보고하며 대건은 즉시 주위를 독려했다.

? “자, 기력 있는 분들부터 끈 같은 것 만들어 바닥을 동여맵시다. 부서진 부분부터.”

? 어느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다.

? “배가 이 꼴 되고 며칠째지?”

? 나 역시 하릴없이 동쪽만 바라보는데 다블뤼 신부가 대건에게 말꼬를 텄다.

? “보름은 족히 넘습니다.”

? “양식은 얼마나…?”

? “사나흘 버틸 양입니다. 그래도 배 위에 얹혀있길 망정이지….”

? “태풍은 완전히 끝났나 보네? 잠잠하네.”

? 다블뤼 신부의 잠잠하네, 라는 말에 멍하니 사위만 둘러들 볼 뿐이다. 나침반으로 볼 때 동쪽으로 가줘야 할 텐데 자꾸 남쪽으로만 떠내려간다.

? 그 후, 우리는 지나가는 비라도 뿌리면 옷가지를 펼쳐 빗물을 받았었다. 보름 동안 모아놓은 양이 제법 되었다. 그리고 최형 베드로와 교우들은 벌써 며칠째 동쪽으로 노 젓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었다. 나뭇조각이면 좋고 아예 엎드려 손바닥으로라도 젓고 있지만 공해상에 마음만 급했지 목표 없는 동작들은 매가리도 없고 효과도 시원찮았다.

? “제기랄, 주교님이 타서 하늘이 돕는다며?”

? 기어코 정 서방이 분통을 터트렸다. 엊그제부터 혼자 식식거리던 터였다. 아직 조선말 듣기가 온전하지 못한데도 필시 내 얘기만 같아 언어 장애인으로 가만히 있기로 했다.

? “하늘은 개뿔…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천주학쟁이 근처도 안오는 건데….”

? 이럴 땐 주교가 조선말에 서툰 게 다행이라는 듯 대건 신부는 그와 나 사이의 눈치를 살피는데 그새 내 얼굴이 붉어지기라도 했던가.

? “아이, 느그들 잘한다는 기도나 해봐! 아니 그런 거 하지도마, 언제 들어준 적 있냐고…. 젠장 이러다 괴기밥 되고 말지. 아이고 내 팔자야…. 제기랄, 책임져 책임!”

? 통제 불능상태가 된 정 서방이 대건을 노려보았다. 천하의 김대건도 시선을 떨어뜨리다 한쪽에 잘 모셔둔 물통으로 가 깨진 사발에 담아 정성껏 내민다.

? “다 제 탓입니다. 정 씨…. 제가 죄인이라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 탁, 그 아까운 물을 정 서방은 발길질해 버렸다.

? “미안하다면 다야, 다냐고?”

? 그러자 최형 베드로가 나섰다.

? “정 씨… 신부님이 무슨 죄신가? 내 잘못여 다, 내가 박복한 인간인가 벼….”

? “그만둬, 이것들이 착한 꼴통 시합하나? 척하기는…. 다 집어쳐!”

?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저쪽으로 머리를 떨다간 수그러들고 만다. 그래도… 아직 살았다는 게 어딘가, 누군가는 또 그런 말을 한다.

? “해볼 것도 없는데 물고기나 낚아볼까나!”

? 역시 박 바오로, 천성이 낙천적이다. 이 사람은 막 파선되었을 당시의 참담함도 모르는데 아주 기절해 있었다.

? “예끼 사람아, 여가 도랑인 줄 알아? 고기가 널 잡겠다.”

? 오 서방이 핀잔하듯 뇌까렸다.

? “나중에 한 점 달라고나 하지 마쇼!”

? 9월, 아직 한낮의 태양이 따갑다. 몇 시간째 노 같은 것들을 젓다 잠시 쉬는 참이었다. 대건도 배 귀퉁이를 잡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해류의 방향을 직접 파악하고 싶었다며,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향인 해류가 동쪽으로도 흘러준다는 보고였다. 조선반도가 워낙 길쭉하기 때문에 이대로만 가면 서해안 어디에라도 걸릴 테지만 장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조급해진 사공들은 다시 부러진 판자라도 휘적휘적 저어보지만 관건은 해류의 방향이다. 이러다간 일본까지 떠내려갈 수도 있고 그 전에 선상에서 아사하거나 식수난에 처할 것이다. 대건 신부는 시간만 나면 기도하는 것 같다. 나도 내심 그러다가 대건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겠느냐는 눈빛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 얼마만큼 떠내려왔을까, 어디까지 떠내려가는 걸까….

? “앗! 저거 봐요, 저거! 어… 어… 고래!”

? “정말로! 고오래 아녜요?”

? “등신아, 여가 무슨 동해냐?”

? “아냐, 이 손가락 방향!”

? “아주 실성을 했나?”

? “어 정말 저거 뭐여? 저 무지~무지한! 집채만 한!”

? 고래였다. 진짜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이 경악할 만큼 커다란. 하늘 맙소사! 무슨 고래가 다 나타난다는 말인가, 잠시 표류하는 처지도 잊은 입들이 딱 딱 벌어졌다. 사실은… 며칠을 더 떠 내려왔을까? 하루 한 끼에다 평상시의 절반도 못 먹던 식량마저 바닥이 났다. 종일을 고작 바다 위에 떠있는 일뿐, 인간이 이리도 무능해질 수 있단 말인가. 지도자가 돼가지고 도대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주교의 기도에만 매달리는 시선들이 가시바늘처럼 찌르다가 말았다가 했다.

? 이런 와중에도 잠시 휴식하던 박 바오로가 대나무를 뾰족하게 갈아 낚시를 만들었고 바닥을 기는 벌레를 끼워 줄에 달아 던졌다. 그랬더니 웬 우럭이라는 물고기가 두 마리나 낚인 것이다. 팔뚝만 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본 사공들도 대나무를 깎아 바늘을 만드는 중이었다. 나도 다블뤼 신부도 눈이 멀었다는 이 물고기의 회를 처음으로 한 입 먹어보는 참이었다.

? “와, 저거 잡으면 한 달은 먹겠다.”

? “그 전에 목말라 죽으면.”

? 어쨌든 크기의 위용 덕에 떠들썩한 순간이었다.

? “육지다 저기, 육지… 저건 육지다, 고래 뒤로!”

? 대건 신부가 흥분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 끝으로! 기 적처럼 나타난 고래가 아니었으면 자칫 연무 속 깜박이는 점을 놓쳐버릴 뻔했다는 것이다.

? “어디? 바다밖에…안 보이는데.”

? 다블뤼 신부가 그러건 말건 대건 선장은 분명히 봤다고 한다. 육지 같은 것을. 다른 사공이 그랬으면 핀잔이나 받았을 일이다.

? “아닙니다. 여러분, 저를 믿고 최선을 다해봅시다. 해류로 떠내려가는 방향도 계산해야 하니까, 지금부턴 아예 북동쪽으로 저읍시다.”

? 그래도 선장의 명령이었다. 빈 그릇도 좋고 맨손이라도 좋고 사공 전원이 노 저을 만한 물건들을 찾아 쥐었다. 본 주교만 한손에 나침반을 들고 나머지 손으로는 방향을 가리켰다.

? “영차! 영차!”

? 그리고 입으로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써 박자까지 넣어주었다.

? “하나 둘 셋 넷.”

? 서툰 발음이 점점 정확해질 즈음이었다.

? 과…연….

? 산이다, 산이었다. 산이 보였다. 마침내 육지! 살았다, 이젠 살게 되었다. 상해 오송항을 떠나 얼마 만에 보는 땅인가…. 열흘이면 족한 거리를 한 달이나 걸렸다.

? “봐요 봐! 육지라니까!”

? 열 명 이상이나 보인다고 했다. 선명해지고 점점 가까워지는 땅, 노 비슷한 것들을 젓는 팔뚝에도 힘이 들어갔다.

? “와! 저기가 한강 어디일 테고, 쭉 들어가면 한양일 겁니다. 고생 끝, 행복 시작!”

? 대건의 우렁찬 음성에 동시에

? “앗싸!”

? 하는 환호성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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