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회원가입  |  로그인  |  사이트맵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일반자료실
일반자료실
제목 차쿠의 아침-짐꾼(4) 날짜 2015.04.06 18:47
글쓴이 관리자 조회 239

“이름?”

“어디에서 왔나?”

“이 서양인은 뭣하는 사람인가?”

“어떻게 만났고 왜 같이 다니는가?”

“여기 온 목적이 무엇인가?”

멀쩡한 사람도 이런 데 오면 정신을 잃고 말 것이 떼는 입부터가 다짜고짜 범죄자 취급이니 초장부터 무너져 내린다.

양업 부제가 대답하는 동안 머리끝이 쭈볏쭈뼛했다. 일행은 장춘에서 왔는데 조선의 수제품이 어떤가 보러 왔다. 같이 있는 양인은 얼마 전 중국과 전쟁을 한 영국과는 아무 상관 없는 프랑스인이다. 내가 듣기에도 조목조목 진술하고 있는데 취조관은 코만 계속 후비고 있었다. 일단 필요한 질문만 던져놓고 듣지도 않는 대륙 관료주의의 행태다. 그러더니 이내 시큰둥해져서 킁킁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별다른 사안이 아님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듯했다. 달리 취조할 것도 없으면서 잡고 늘어지는 속이야 빤하다. 그렇지만 우린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일 경원 시장에서 밀사들과 종일을 만나도 부족한데다가 그 전에 해야 할 채비로 조급해지기만 하는데 어디까지 우리의 사정일 뿐이다.

“그러면 당신들… 조선 물건은 얼마나 살 것인가, 돈 알마나 가지고 왔는가?”

역시 돈이었다. 지들끼리 한참을 잡담하다 돌아와서 본론을 꺼냈다. 우리의 돈은 넉넉하질 못해서 그저 소팔가자에 되돌아갈 여비와 비상금 정도였다.

“ ….”

“못 알아들었나, 그래 조선 수제품은 얼마나 사려고 하는가?” 양업 부제는 일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꺼내 보였다. 어느 정도 액수는 되어야지 진짜 도매상으로 여길 것이다.

“에게, 겨우?”

“….”

“장춘까지 갈 돈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이거 아무래도 장사군이 아닌 것 같아?”

“아이라예. 경비는 따로 있심더.”

몰리니까 범 요한이 거짓말을 다 했다.

“아니 글쎄, 이 돈 가지고 뭔 장사를 하나? dI 노잣돈도 안 되겠다.”

“….”

“아무래도, 수상해! 최양업 외 3명, 감금형 3일!”

즉결 판심, 말 한마디가 곧 법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추운 만주 칼바람 속을 한 달 이상 고생했는데 모든 걸음이 허사가 되려는 시각이었다. 굴걱, 하고 메스트르 신부가 마른침을 다 삼킨다. 그의 이런 얼굴색은 좀처럼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패배감 같은 것들이 감옥의 검은 창살처럼 사방에서 그늘지어 들고 있었다.

“신부님 안 추우세요?”

결국 우리는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임시 옥은 이틀이 되어도 먹을 것 하나 주질 않았다. 양업 부제가 걱정스레 메스트르 신부에게 물었다.

“난… 견딜 만하네…. 최 부제는?”

“저도 극한상황은 아녜요.”

사실상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억류된 지 이틀째니 조금 후면 경원장도 파할 거고 지금이라도 기적이 일어난들 조선 밀사들을 만나 무슨 성과를 얻기엔 늦어버렸다, 다 글러버린 일이다.

“범 요한 형제… 안 춥나?”

메스트르 신부가 ‘형제’라는 호칭을 다 썼다.

“예 신부님… 죄송합니더. 제 탓이라예. 전…추울 수도 없어예.”

“아니 아냐…. 내 잘못이 크네! 그때 기도하는 마음이었다면 잘 넘어갔을 텐데. 자넬 사랑하지 못해 이렇게 되고 말았네.”

“아입니더, 원인 제공은 지가 다 했지예!”

“실은… 이번에 나도 마귀 술수에 넘어간 것 같아…."

메스트르는 왠지 길게 말을 이어가려는 듯 보였다. 어차피 옥안에서 달리 할 거리도 없었다. 경원장이야 물 건너간 얘기고 범 요한과의 화해도 이루어지는 마당에 내일만 기다려 출옥하면 일 없었다.

“마귀의 술수야 무궁무진하지…. 홰 삼국지에 보면 술수가 많이 나오잖아? 미인계도 있고 공성계에 나중엔 골육계도 쓰지?”

“와아! 신부님이 어찌 삼국지를 다 아심메까?”

기회다 싶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한테 걸리셨잖아? 맨 처음엔 빵 가지고 했는데 이게 물질의 유혹쯤 되겠지. 다음은 세상의 모든 도성을 준다 했는데 권력 아니고 뭐겠어? 마지막으로 높은 데서 뛰라고 한 것은 과시욕쯤 되겠지. 돈, 권력, 명예 세 가지를 예수님은 한 말씀으로 물리치셨잖아? 그쪽으로 그만큼 깨끗하셨다는 거지.”

“그라모 요즘 마귀는 무슨 술책을 쓴답니꺼?”

범 요한이 또 나대기 시작한다. 사실 되도 않은 질문인 것이 마귀의 미끼야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망일 텐데. 그러나 뜻밖에 메스트르 신부는 우문을 기다렸다는 듯 곧장 말을 이었다.

“이거는 어떤 신부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최근 사탄은 이렇게 인간을 유혹한대요.”

옥 안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메스트르 신부가 학생들을 대하듯 교단에서의 온후한 어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거는 어떤 신부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최근 사탄은 이렇게 인간을 유혹한대요.”

옥 안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메스트르 신부가 학생들을 대하듯 교단에서의 온후한 어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지옥에서 회의가 열렸대요. 세상이 십자가를 믿고부터 문 닫게 생긴 거지. 대마귀가 부하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죄에 빠뜨려 지옥에 오게 할 수 있나, 의견을 말해보라!’고 했대요. 그러니까 한 마귀가 ‘대마귀님, 지금부터 하느님은 안 계신다고 하는 겁니다.’ 바로 거절되었대. 사람들이 하느님 계신지 다 안다는 거지. 둘째 의견인 ‘하느님은 공정치 않으시다.’도 기각되었는데 후손까지 가서 인과응보를 받는 걸 보면 공정하시다는 거지. 그런데 셋째 마귀의 제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대.”

“그기! 그기 뭔데예?”

초라니 방정은 범 요한 널 두고 하는 말일 거다.

“응…‘하느님은 공정하신데 워낙 자비로우셔서 우리를 한없이 기다려 주시는 분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좋은 결심을 할 때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겁니다, 구수한 사투리로. 아이 오늘만 날이가?’ 그때부터 마귀는 이렇게 속삭인다는 거지. ‘다음부터 잘하지, 이번 주일만 주일이가?’ 그러다가 어떻게 돼? 끝내는 한평생!”

“하! 하! 하!”

양업 부제도 따라 웃었다. 지어낸 얘기겠지만 그럴듯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번 일로 최신 수법을 알아낸 것 같아!”

뭔데요, 동그래진 눈들이 일제히 메스트르 신부에게 쏠린다.

“관계를 안 좋게 하는 것이지. 말부터 꼬이게 하고. 나하고 범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원래 사탄이라는 뜻이 이간질하다란 뜻 아니예요?”

“그러게, ‘샤’라는 소리가 ‘바보’로만 들릴지 누가 알았어?”

“맞습니더, 마귀 장난…. 저도 왜 그때 동북 방언을 했는지 몰라예.”

범 요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사이를 훼방하다 결국 자신과의 사이도, 나중엔 하늘과도 멀어지게 하는 것이 그치 같아.”

“그러고 보면 타인 사랑이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같아요. 결국 자신에게도 이간질해 오니까.”

인간관계에 대한 말을 하면서 양업 부제의 오른손이 다시 턱 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차분히 대건 신부 이야기를 꺼낸다. ‘작년 여름밤 백가점 냇가에서 대건의 모습이 참 근사했었다.’그런데 더 근사했던 건 그의 눈동자에 반사된 본인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상서로운 데서 되 빚어지는 듯 싶었단다. 그러고 보면 나 같은 일자무식꾼도 알 만한 것이 세상엔 독불장군 없다는 거다. 양업 부제가 상대방의 눈에서 자기를 봤다는 말처럼 뭐라도 대상이 있어야지, 하다못해 강아지라도 사랑해야지 그 관계 안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받는 것이다. 바로 ‘너’를 통해 ‘나’가 있고 ‘너’가 불러주어야 ‘나’의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배운게 짧으니 눈치코치 다 동원해 어려운 말들을 쫓아가는 사이, 메스트르 신부의 손은 범 요한을 잡고 있었다. 눈앞의 환해지는 상대에게서 자신까지 비춰보는 듯했다.

“저도… 이런 이야길 들었지 않슴메까?”

춥디추운 감옥에 이야기꽃이 핀 바람에 덜컥 입부터 열고 봤는데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해봐라!”

의외다 싶었는지 범 요한이 추궁해 왔다.

“하루는 어떤 애가 산에 갔질 않슴메까? 산꼭대기 올라가 ‘야호!’하고 소리치니 저쪽 산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려오지 않캈슴메까? ‘너, 누구니?’ ‘너, 누구니?’ ‘왜, 내 말 따라서 하니?’ ‘왜, 내말 따라서 하니?’ ‘이, 나쁜 놈아!’ 결국 화가나 집으로 와버렸슴메다. 엄마한테 왈 ‘엄마, 나 이제 산에 안 갈래, 산에는 나쁜 놈이 살고 있어.”

“하!하!하! 문디 재밌네, 계속해 봐라!”

범 요한은 완전히 어린애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칭찬하는거니 나 또한 일없다.

“그러니까 엄마 왈‘아니란다, 그 친구는 메아리인데, 니가 먼저 좋게 인사하면 친구도 좋게 해줄 거야.’ 이 애가 또 산엘 갔어요. ‘안녕, 잘 있었냐?’ 하니까 ‘안녕, 잘 있어냐?’ ‘저번에는 욕해서 미안!’ ‘저번에는 욕해서 미안!’ ‘잘 있어, 다음에 또 올게!’ ‘잘 있어 다음에 또 올게!’ 그렇게 신나게 내려왔고 다음번에도 산에가고 싶었담메다.”

“맞아, 어제는… 범 요한한테 좋은 말부터 했어야 했는데….”

메스트르 신부는 계속 자책을 해댔다. 빈틈없는 얼굴에 저런 구석도 있었나 싶다.

“아이라예, 신부님….”

“이왕 이리된 것 그만하시지요. 내년에 한 번 더 오지요 뭐?”

양업 부제가 끼어들며 밝게 웃는다. 또 분위기가 되니 나도 모르게 양업 부제의 말허리까지 끊게 된다. 나 같은 게 막 지껄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분 째지는지 모른다.

“누가 알갔슴메까? 오늘 정상적으로 밀사 만나러 갔다가 진짜 붙들려 죽게 됐을지…. 큰 거 면케 해주실라고 작은 거 주셨는지도 모름메다.”

종종 기막힌 말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좋은 분위기가 혀를 시키는 것만 같다. 내 입에서 이런게 나올 줄은 몰랐다. 범 요한도 시시덕대며 나를 추어준다.

“와아! 문디 요셉이, 오늘 말 문 팍 터졌는 기라. 아주 금구네 금구!”

“하!하!하!하!”

더 이상 일없었다. 어쩌면 자유로운 바같에서 서로 못마땅해하던 지난 보름이 사람 환장하게 하는 감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목록 쓰기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이용약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10번지 충무빌딩 313호    Tel:02-2269-2930    Fax:02-2269-2932    Email:wonjuse@hanmail.net
COPYRIGHT DOMA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