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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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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소팔가자의 낮(1) 날짜 2015.04.08 16:59
글쓴이 관리자 조회 284

소팔가자의 낮

“파아란 하늘이 웃음 짓는 오~늘 우리는 환영하네….”

아이들의 성가소리가 소팔가자 성당 담장을 넘어 대평원으로 울려 퍼진다.

양업은 생각했다.

‘여기 어린이들 목청은 마을의 내력일까.’ 반주도 특별히 지휘하는 사람도 없는데 얼마나 높여 부르는지 듣는 마음도 붕~붕 떠오른다.

아이들만 200여 명, 저 요동의 백가점에 비교하면 두세 배나 큰 편이다. 백가점이나 인근 마가자, 도 북결 쪽의 서만자가 모두 산수로 둘러싸여 있다면 이곳 소팔가자는 그야말로 광활한 만주의 복판이다. 장춘에서 합륭쪽으로 50여 리즘 지나다가 서쪽으로 한 시간을 걸으면 나오는 소촌, 몇 년 전 저녁 무렵 만주교구장인 베롤 주교가 우연히 지날 때도 골목골목 집집마다 들리는 기도소리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베롤은 서둘러 돈을 장만하여 성당 당과 관련 없는 주민이 없을 정도로, 차후 여건이 된다면 학교나 병원까지 세울 요량으로 일대의 넓은 땅을 매입했다. 그 중심에 세운 것이 소팔가자 성당이다. 총주민 수 2천여 명 중 천주교인 95푼이 넘을 만큼 전형적인 교우촌이 되어있었다. 여느 교우촌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는 것은 공통의 이상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런 교우촌이야말로 아편 같은 어둠들이 언감생심 넘보지 못하게 할 최상의 방책이라 믿고 있다. 최근 장춘에도 대연관개점의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을 때, 그 외지인들에 반대하던 향토 상인이 실종된 며칠 후 도막 난 털북숭이 팔뚝을 개들이 물고 다녔다는 소문이 흉흉할 때, 가늘게 째진 독사눈이 시퍼레서 표창 주머니에 손이 가면 토비들도 막 대하지 못한다는 상이 아큐 같다고 했을 때, 양업은 작년 환푸에서 겪은 일로 몸서리부터 쳐졌다. 죽을 만큼 폭행당한 것도 있지만 피해 양민들의 오해가 더 깊은 아픔이었다. 당시부터 장춘에 관심을 보였다는 완푸 치들에겐 이런 소촌이야 눈에 띄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어린이들과 함께 가정에서부터 사수하겠다는 각오였다. 소중한 가족이야말로 아편에 대적할 수 있는 무기 중의 무기다.

어쨌든 소팔가자 어린이들, 글을 배워서일까. 간식도 주지 못하는데 아침부터 성당으로 몰려 정오쯤 부르는 성가는 인근의 명물이 되었다.

“맑은 하늘 오월은 어머님의 달♬~”

성당 주면을 산보하던 양업에게 오월의 행복감이 밀려왔다. ‘나만 이래도 되는 거야?’ 할 정도로 성모님 같은 미풍까지 불어주니 더욱 이국만 같지 않은 소팔가자. 1842년부터 살았으니 벌써 4년때, 나무 한 그루 돌 하나가 설지 않았다. 그때 만난 소학교 1학년 코흘리개가 어엿한 5학년이 되었고 6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처녀티가 났다. 양업은 특별히 친한 아이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원한 사이도 없는 편이다.

하기야 이네들이야말로 미래 교회의 주역이기도 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처럼 성당 마당에서 놀다가 나중에도 ‘한평생 주님의 집 있기가 소원입니다.’하며 신하교나 수녀원을 지망한다. 양업 자신부터가 그랬다. 충청도 청양 다락골의 고샅들과 언덕 전체가 놀이터요 성당이었다.

재작년 부제품을 받은 후에는 공식 직함도 생겼다. 소팔가자 소신학교 성소담당 부제(소신학교 입학생이란 13-14살 아이티를 벗지 못한 청소년이다) 양업의 지상소명이야 하루빨리 조선에 입국해 활동하는 것이긴 하나 그렇다고 현지 아이들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하늘의 어린 군대들… 마귀와 힘껏 싸워 승리 거두자.… 산도 바다도 넘고 건너서 앞으로 영생의 길 찾자!”

오뉴월 정오의 미풍 속에 실려오는 노랫소리가 점점 우렁차다. 몇 대째 물려 입었는지 모를 낡은 수단 속으로나마 묵주를 돌리며 하늘께서 주신 계절을 만끽해 보려는 것이다. 노곤한 5월의 햇살과 꽃향기 섞여 날리는 바람 속 벌 나비들ㅇ, 막 피어난 잎사귀들과 까치발 떠 담장으로 싹 틔워내려는 가지들….

‘대건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자신만 무탈하다 싶으니 또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지금쯤 부활 공소방문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대건의 성격상, 또 조선교회의 현안상 선교사 입국 해로를 개최하고 있을지 모른다.

양업은 대건의 적극적이고 대담한 성격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니었다.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 때 가슴에서 느끼곤 했다. 자기는 재차 고려해야 할 때엔 대건은 벌써 행동으로 옮겼다.

그래서 그러셨을 것이다. 한번은 페레올 주교가 푸념 조로 말했다. “대건과 양업이 반반씩만 섞였으면 좋겠다. 한쪽은 대담하고 한쪽은 신중하니….” 물론 아주 듣기 싫지는 않았다. 그 앞에 ‘너무’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주교가 언짢아하신 적도 있다. “대건은 시원시원해서 좋은데 넌 왜 그리 답답하냐?” 물론 그때는 고지식한 점이 없지 않았다.

페레올이 누구인가, 자신의 성직 생사여탈권을 쥐고 계신 교구장 주교가 아니신가? 겨우 부제의 신분으로 직언을 불사했던 것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몇 번을 고심한 끝에 “하늘은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 사랑하십니다.”고 공손히 건의 드렸을 분인데 역시 주교는 달갑게 듣지 않았다. 주교님도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으실 것이니 교구를 운영하고 선교 자금을 마련하는 일, 소속 신부들부터 배곯지 않게 해주는 일이 보통은 아닐 것이다.

또 교구라고 해봐야 고작 주교 1명, 신부 3명, 부제 1명이었다. 거기다 소팔가자에서 몇 년째 얼굴을 맞댔으니 어쩌다 기질적으로 부딪히는 소소한 불협화음들이란 불가피한 일인지도 몰랐다. “이 햄릿형아!” 페레올 주교가 마침내 욕 비슷한 것으로 역정 내셨을 때도 그 무렵이다. 감정의 기복이 없던 양업도 이 소리에는 풀이 죽었다.

그러 때 스승이자 동료처럼 지내던 메스트르 신부가 다가와 이렇게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괜찮아, 자네가 햄릿형이라면 가끔 대건 부제는 돈키호테 같으니까.”

네에? 이것이 무슨 위로인가요. 돈키호테라니 그렇게 벗을 깎아내리면 위로라도 된단 말인가요? 메스트르 신부님. 제가 소심하단 말을 듣는 게 낫지 대건이 무모하다는 표현은 거두시지요, 상한 속으로도 거의 입 밖에 내려다 만 말이었다. 그러면서 왔던 분명한 깨달음은 ‘그래, 대건과 난 상호 보완해야지. 마주하는 거울처럼 바라보며 살자.’였다. 그러한 대건은 지금쯤 무엇을 하는지…. 한가로이 소팔가자 정원을 걷는 양업의 손이 어느새 턱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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