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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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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소팔가자의 낮(2) 날짜 2015.04.08 17:02
글쓴이 관리자 조회 284

눈앞에 바로 소팔가자 소신학교가 들어온다. 만주교구에서는 소팔가자 성당 담장 안에 신학교를 지어 운영하고 있었다. 중급반과 고급반이 있는데 중급반에서 싹이 보인다 싶으면 고급반으로 올렸고 고급반까지를 마쳐야 대신학교에 정식 입학시켰다. 대신학교 과정이 철학 2년 신학2년 실습2년 도합 6년이니, 소신학교 6년까지 치면 도합 12년 이라는 짧지 않은 과정이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고 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런 집안일로, 학업이 부진해서, 이성 문제 때문에, 인간관계가 좋지를 못해서, 악습을 고치지 못해, 재수 없이 뜻밖의 말썽에 휘말려서 도중에 탈락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재수라는 것도 하늘의 거룩한 부르심(聖召) 판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한 학생은 알밤 주워먹다 기도에 안 들어가도 그냥 넘어가는데 한 학생은 어쩌다 한 번이 엄히 걸린다. 대개 40명이 소신학교에 입학했다면 사제서품까지 가는 수는 15명가량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어찌 증명할 수 있는가? 일단 12년 동안 산다는 자체가 선택받았다는 표지다.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 신학교만 한 낙원도 없으니 맨날 어울려 운동하고 기도하고 하늘공부나 한다. 고로 신학교에서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똥 잘 싸면 그것이 성소라고도 했다. 그렇지 못한 학생에겐 감옥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외출도 적은 데다 갖가지 규칙에 옭혀있지, 또 지겨운 기도는 얼마나 많은가. 맘에 들지 않는 동료들과 살려니 잠도 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성 교제는 엄금이지, 하여 징역살이를 포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너나 제적생의 대부분은 학기말 교수회의에서 결정되니 하늘의 부르심을 판별하는 일종의 사정회의다. 여기의 참석자들이 누구인가, 신학생들과 한 지붕 밑에 사는 교수신부들이다. 천주교 사제양성의 우월성일 수밖에 없음이니 아무리 숨기고 산다고 해도 10년 이상 합숙하는 눈을 피하기는 어렵다. 비용이야 적잖이 들겠지만 심장부요 교회 못자리에 대한 투자야 백년대계로 볼 때 낭비가 아니었다.

양업도 교육자가 되고서야 할게 된 사실 하나. 성소 판별 사정회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학생의 잘못이나 부족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 짐짓 피교육자들 생각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니 그야말로 복지부동하더라도 말썽만 안 부리면 살아남는다?

그러나 실제는 상반이었다. 교수신부 중 한 분이라도 ‘성숙 중인 이 학생은 성소가 있다.’고 적극 추천을 해줘야 다음 학기로 올라가는데, 이는 일찍이 예수께서 12사도들을 세울 때도 ‘마음에 두었던 이들을 뽑으셨다.’해서 그런다는 것이다. 놀라지 않은 수 없는 것이 철부지 소년 때부터(자신처럼 적극적이지 못한 성경에도) 주군가 계속 뽑아주어 부제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런 선택방식이야말로 이다음 최후의 시각,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저기, 부제님이다.”

주제님! 아직 소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네댓 살 동네 꼬마들, 아니 꼬맹이 숙녀들이었다. 언니들이 성가를 부르는 동안 소꿉놀이에나 빠져있다 양업을 보자 한걸음에 달려와 깡충 안겨버린다. 특별히 이 아이들은 양업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등나무 밑에서 몇 마디 주고받았더니 그 후론 와락 안기고부터 본다. 천진무구한 눈동자, 품에 안긴 아이가 따뜻하다. 이토록 신뢰해 보니 여기가 고향이 아니면 어디요? 누가 조선 사람이고 누가 중국 아이인가.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평일에도 보고 사니 고향이 따로 없다. 중국 교우들은 하나의 신앙이라는 울안에서 성직자들을 가족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품에 안긴 싱싱이라는 아이는 현재 소팔가자 어린이들의 최고 인기인인 양업을 무척이나 따랐다. 어쩌면 이 꼬마 아가씨, 아빠뻘 되는 부제님을 진짜 좋아하는지도 모를 일이 얼마 전 아이 엄마 왈, 집에서 그렇게 부제님 얘기를 한다고 했다. 어디서 노래 한 곡을 배워도 나중에 부제님한테 불러줘야지, 앙앙 울다가도 부제님이 울보는 싫어하지 하면 뚝 그친다고 했다. 생김도 인형같지만 무엇보다 똑똑한 애가 볼을 비비며 속삭이는데 대뜸 문초 식 질문이다.

“부제님, 어제 낮잠 잤지요?”

“어?”

“낮!잠!”

귀청 떨어지기 직전이다.

“니가 어떻게 아냐? 책상에서 조금 졸았지.”

“앵! 이 잠꾸러기!”

“앞으로는, 낮잠 안 잘게.”

“알았져….”

이 꼬마 아가씨에겐 비밀이 없다. 이렇게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날엔 더 다그쳐 올 것이다. 앞으로 낮잠 같은 것은 정말 안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아래 있는 두 꼬맹이가 눈망울을 굴려댄다.

“부제님… 그런데 남자애들 말예요?”

“어.”

“고추 달렸던데….”

“뭐? 뭐라고?”

“어제 봤어요, 사촌이 오줌 쌀 때!”

“그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그게 고추래요!”

양업은 안고 있던 싱싱을 내려놓고 나머지 두 아이의 머리도 쓰다듬었다.

“그런데 부제님?”

“엉?”

“부제님도 고추 달렸어요?”

아무리 꼬맹이들 앞이라도 양업의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야아, 부제님은 장가도 안 가는데 왜 고추가 달렸냐?”

거들어 주는 아이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참…상관이 없나? 이따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요것들이 정말! 너희들 나중에 시집 장가 갈 때쯤 아무 데나 소변 본 것 다 이야기할 거다, 며 양업은 속으로 웃었다.

“부제님, 우리 놀아요?”

“좋지, 뭐하고 놀지?”

“옛날얘기 해주세요.”

해주세요! 세 꼬마 아가씨가 일제히 소리를 높인다.

“옛날에 다윗이라는 꼬마가 살았대.”

“힘세요?”

“아니 꼬만데 힘이 세냐? 하루는 나쁜 사람들이 쳐들어왔는데, 그 장수가 완전 괴물 같았대. 키도 엄청나고.”

성경을 이런 식으로 풍어준다면 밑천 떨어질 염려가 없었다. 점심 휴식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가버린다.

“근데… 별로 재미없다! 다른 이야기 없어요?”

“그래?”

“응!”

“좋아! 그럼 다른 거로…. 어떤 신부님이 미사를 하는데 그날 따라 소화가 안 돼 더부룩하신 거야!”

“그래서요?”

“방귀 나오려는 것을 참았지! 나중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뽀옹’하고 몰래 뀌었대!”

“호!호!호!”

“그런데 미사 끝나고 나오는데 웬 대못 하나가 떨어진 거야. ‘살짝 뀌었는데도 어디가 부서졌나?’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부서진 곳은 없는 거야.”

“그래서요?”

“에이 모르겠다. 예수님한테 인사나 드리고 나가자 하고 십자가를 바라본 순간!”

“순간?”

“예수님이 이러고 계신 거야!”

양업은 양팔을 벌려 십자가에 못 박힌 시늉을 하다 한 손은 자기 코를 막아 쥐었다. 순간 폭탄 같은 웃음이 터진다.

“꺄르르르!”

“그 못은 어디에서 떨어졌게?”

“예수님 손바닥!”

이렇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하는 이갸기는 효과 만점이었다.

“어이, 부제님이다! 부제님, 우리가 놀아줄게요!”

언니뻘들, 다 자란 6학년 아이들이었다. 성가가 끝난 모양인지 한 떼가 몰려나왔다. 남자아이들도 섞였지만 요만한 때는 여자애들이 더 극성이다.

“뭐? 내가 니들이랑 놀아주는 거지.”

“무슨… 우리가 늙은 총각이랑 놀아주는 거지.”

녀석들은 이제 예의를 알 마난 나이도 되었는데 양업 앞에서는 마냔 어리게만 남고 싶은 모양이다.

“무슨 놀이? 나 이제 니들이랑 물놀인 안 간다.”

“무슨? 지금 5월밖에 안 되었는데 물놀이예요?”

“어쨌든….”

지난해 여름이었다. 여름방학도 되고 해서 성당에 나오는 아이들 전부를 데리고 물놀일 간 적이 있었다. 백가점은 물 좋은 곳이 천지지만 대평원의 소팔가자는 벼르고나 가야 물가가 나왔다. 부모들에게 알려 간식도 둘러메고 내내 노래를 부르며 갔었다. 한창 신이 나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는데 뒤쪽으로 요 왈패가 몰려왔던 것이다. 평소보다 장난기가 심하다 햇을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다. 이 말괄량이들이야 어떡하면 양업을 골려줄까 궁리했기 때문이다.

“부제님!”

뒤에서 한 아이가 득의양양하게 불러왔다.

“왜에?”

하고 입을 벌린 것이 잘못이었다. 그순간

“찌익.”

물총이 발사된 것이다. 양업의 입안으로 정조준되어 있었다.

“와아!”

주변의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부제님 뽀뽀했대요! 물뽀뽀, 물뽀뽀!”

아니 이 녀석은 어찌 된 녀석이길래 여자아이가 그런 장난을 개발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의 앞니 사이는 정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어 물 한 모금을 물고 양볼을 눌러대면 그리로 물총이 발사되는데 꽤 정확하고 멀리 나갔다. 그녀의 입에서 발사된 물이 고스란히 양업의 입안에 작렬했다. “뽀뽀했대요, 여자아이랑! 물뽀뽀 물뽀뽀!” 양업이 난처해하자 더 큰 소리로 합창을 해댔다. 남자 녀석들까지 합세하자 여자애는 결국 자기도 연루된 공범자를 놀리는 일에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가세하고 있었다. 소문이 메스트르 신부에게까지 들어갔는지 한번은 저녁을 먹다가 싱거운 소리를 하셨다. “최 부제는 좋겠어. 여자아이랑 물뽀뽀도 다 하고!”

작년 일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아이들이 부쩍자라 왠지 소녀티가 났다. 마냥 애들이라고 하기에는 스스로도 뭔가 수줍음이 생긴 듯 한 몸가짐들이다. 그런데도 끼리끼리 뭉쳐있을 때는 4년 전 처음 만난 아홉 살 시절로 돌아가고는 했다.

“아이 부제님, 우리하고도 놀아줘요!”

역시 그 물총 녀석 징징이가 제일 적극적이다. 양업의 팔짱을 끼고 늘어진다.

“왜? 조금 전에는 니들이 나랑 놀아준다며, 뭐 노총각?”

“에아, 꽁하기는….”

6학년 아이들, 이 녀석들하고는 더 친한 것 같다. 여자이들도 남자애들도…. 그렇게 4년 전의 궁합이 좋았다. 양업이 갓 스무살을 넘겼을 때이고 아이들은 한창 명오(明悟)가 열리는 아홉 살이었으니 첫 만남부터 극적이었다. 원래는 ‘학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상례였으나 그것은 기분 좋을 때이고 ‘오빠’‘아저씨’‘형’ 심지어는 까만 수단을 입는다고 ‘까마귀!’하며 도망치는 애들도 있었다. 첫영성체반을 맡았던 인연에 이름도 없는 그냥 ‘우리 부제님’인데, 요는 사제품을 받아도 영원히 그렇게만 불릴 형세다.

그래도 재작년 12월의 부제품 때는 합창단을 만들어 축가까지 불러주었던 애들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선곡하고 화음까지 넣었는데 대도시 마카오나 상해에서도 듣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친구’였다. 대건과 양업… 새 부제들을 앞에 세우고 80명의 어린이들이 ‘친구’를 합창했을 때는 이상하게 젊은 아줌마들이 슬쩍슬쩍 눈물을 춤치는 것이었다. 그때 서로에게 머리를 기대었을 대건 양업은 남녀지간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여느 식장의 신랑 신부보다 화사했다. 영생의 동반 같은 찬연함이 둘 사이에 서렸고 아이들의 합창이 거기 공기를 불어냈을 때 즉시 청중들의 눈시울을 자극했을 것이다. 친구라는 노래의 가사가 그랬다. “지금부터 우리 함께하리 영원까지 우리 함께하리….”

양업은 갑자기 대건 생각이 간절해졌다.

“유징징, 너 대건 부제님, 아니 대건 신부님 안 보고 싶냐?”

“보고 싶다고 말해도 돼요?”

“이게 무슨 소리?”

“우리 엄만 내가 아빠 더 좋다고 하면 삐지시던데?”

“나하고 대건 신부님하곤 그런 거 없어!”

“서운하지요, 대건 신부님만 신부님 돼서?”

“다 니들 탓이야, 난 니들의 영원한 부제라며?”

“부제님이 좋더라, 신부님 하면 왠지 늙은 것 같다니까?”

“너 유징징!”

순간, 징징이 윗입술을 들더니 이빨 사이 그 공포의 작은 물총 구명을 내보였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닌 일에 무시로 웃음바다가 되어서인지 이 반은 성소자도 많다. 남자아이들이 다른 반 두 배나 넘게 신학교을 지원했다. 관계가 좋으니 성소 계발이라는 일도 절로 풀리는 것 같다. 행복이란 게 따로 잇을까. 이렇게 관계와 일들이 잘 엮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양업의 심중에 감사가 솟아났다. 고마운 교우들! 고향처럼 대해주는 중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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