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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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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백가점의 밤 1 날짜 2015.02.02 17:18
글쓴이 관리자 조회 295

백가점의 밤

“건아 같이 가!”

“어여 와 업아, 봐둔 곳이 있다.”

이제는 소년이 아니요 스물다섯 살의 장정들이었다. 1843년 요동(遙東) 개주(蓋州) 양관(陽關)에서 있었던 페레올(Jean Joseph Ferreol, 高)주교의 성성식 후 이태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재작년만 해도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걸음새 하나까지 의젓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앞서고 뒤따르는 청국(淸國)변방의 촌길에서도 서양 신사의 자태가 물씬한 조선 최초요 단 둘밖에 없는 성직자들이다.

‘존재가 그에 따른 행위를 낳는다.’고 했던가. 자식을 낳을 때 한 분의 어머니도 탄생

된다고 했다. 어머니 된 자로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기르다 보니 모친이 되어갔다고 했다. 작년 1844년 만주 소팔가자에서 동시에 부제가 되고 난 직후 본인들로부터 느꼈을 것이다. 가장 절친한 벗이 변화된 것을, 또 그 벗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된 것을. 단순히 상호존중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너를 대접해 줄 테니 너도 나를 대접해 다오.’ 이런 속내가 아니다. 바로 두 시간 전, 한 사람은 소팔가자(小八家子)에서 다른 사람은 상해에서 각자 수천 리 길을 달려와 지금 여기 백가점에서 손을 잡았을 때도 “대건아!”“양업아!”라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누가 먼저였을까, “김 부제.”“최 부제.”라고…. 왜 이런 호칭이 나왔는지 모른다 반갑기도 했지만 소중한 벗이 하늘의 성직자로서 같은 세상에 존재해 주심에 본인들도 모르게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두 시간 후, 그것이 단순히 옛 이름으로 되돌아간 것만은 아님을 두 사람은 안다. 지금 막 부른 짧은 애칭은 구태(舊態)가 아니라 새 차원의 관계로 열게 하는 무엇임을 피차 모르지 않았다.

“업아 발 조심, 웅덩이다!”

“알았어!”

백가점 앞 냇가에 밤 목욕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지난 한 달 가까이 양업은 소팔가자에서 수천 리를 걸어 남하했다.

대건은 상해에서 장하까지 수천 리를 북상했다. 손바닥만 한 배로 서두르는 바람에 재대로 씻어보질 못했다. 온몸이 소금절이로 조금만 움직여도 버석거렸다. 저녁을 먹던 두 눈이 마주쳤고 숟가락을 놓는 둥 마는 둥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가로 내닫고 말았다

언제부터였던가, 양업이 먼저 “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카오 신학교 시절 함께 유학 나왔던 최방제를 잃고부터 였을 것이다. 대건은 아무래도 민망한지 그 후에도 얼마간을 “최양업 최양업”부르더니 거의 떨어져 지내다시피 한 요 몇 년 전부터는 슬그머니 “업”이라고 입을 떼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닭살 돋는다고 둘이 있을 때만 살짝 부르는 애칭이다. 그런데 신통력이 잇는지 그렇게 먼 거리에 오래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둘만의 시간에 “건아”“업아” 불러주면 신기하게도 그간의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것이다. 열여섯 살 홍안으로 수만 리 타국살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밤마다 꿈마다 보이는 고향집 싸리문과 부모 형제들이엇다. 선잠 깨어 둘러보면 이름 모를 부둣가거나 낯선 만주 벌판 풀포기 옆이었고, 그럴 때도 마음 약해질까 풀어놓지 못했던 망향의 시름이었다. 그런데 둘이 만나 이렇게 “건아.”“업아.” 한마디를 불러주면 외로움과 고단함에 보상이라도 받듯, 아니 그 이상의 옹찬 생명력이 차오르고는 했었다. 방금 전만 해도 거의 일 년 만에 만난 것인데 부제라고 한 번씩 부른 것 빼고는 마법 같은 애칭을 두 번이나 불러댔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밤은 어쩐지 “건아!”“업아!”라고 절절히 불러댈 참들이다. 내일 아참 동이 트는 대로 다시 수천 리 밖 각자의 소임지로 떠날 참들이니까. 또 그렇게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어쩌면 지상에서 함께 보내는 최후의 밤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예사롭지 않은 길을 가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였다.

“건아, 계관산 좀 봐! 해 떨어지니까 진짜 검은 수탉 벼슬 같네.”

“야 진짜 그렇다. 저번에 리델 신부님도 그러시더니 정말이다!”

서쪽의 계관산(鷄冠山)이다. 이름값이라도 하듯 닭 벼슬처럼 봉을 치켜들고 있다. “지관산 지관산” 부르는 중국 사람들은 그쪽 방향으로 있는 심양이나 북경을 선망하며 자손들이 벼슬자리 하나 얻기를 빌었을 것이다.

반대편 동쪽으로 솟은 산이 용화산이다. 계관산이 영달 명리에 벼슬을 쫑긋 치켜든 세라면 용화산은 은거하는 용인양, 비껴가는 세월이라도 꿈꾸듯 비스듬히 누워있을 뿐이다. 뭇 사람들이 예를 선인 산 자락이라 했던 것도 과연 신선이 노닐법한 산수의 조화이거니와 명리엔 관심도 없다는 투를 두고 그랬을 터다. 서쪽 계관산 기슭을 서차쿠라 동쪽 용화산 자락을 동차쿠라 부르는데 차쿠라는 말도 계곡이 둘로 나누어지다 란 뜻이다.

동서 차쿠의 계곡이 합수된 물은 그저 보통의 시내라 불리면 서운하리만큼 제법 큰 줄기를 이루고 곧장 근방의 소재지인 백가점을 통째 휘감아 흐르고 있었다.

지금 대건과 양업은 백가점 앞 냇가로 밤 목욕을 가는 중이다. 백씨들이 모여 산다고 하여 명명된 백가점, 3년 전 대건이 메스트르(Joseph A Maistre, 李) 신부와 에리곤호라는 프랑스 군함을 얻어 타고 장하에 급 정박했을 때 두 요셉이라는 회장이 내륙 쪽으로 70여 리를 인도해 짐을 푼 적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백 씨와 두 씨는 대대로 혼인을 맺어서인지 오랜 부부처럼 어딘가 닮아있었다.

백가점은 전형적인 천주교 교우촌이었다. 주민수의 90문 이상이 신자여서일까 마을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무엇보다 대건에겐 신분상 안전한 곳이었다. 조선 의주 쪽으로 들어가는 입국로 탐색차 요동에 올 때마다 거점으로 삼았는데, 며칠 가만가만 몸을 추스르면 마카오에 있는 지도신부 리부아(N.Libois)와 장상 르그레주아(Pierre Louis Legregeois)신부께 펜을 들 수 있었다. 이제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눈인사를 나눌 정도로 반주벌판 떠돌뱅이에게는 고향만큼이이나 고향 같았다.

일요일 오전 정한 시간, 깨끗한 차림으로 싸리문 고샅마다 일제히 한 방향으로 오르는 행렬을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이 손을 끌어 경당으로 향하는, 평화롭다 못해 상서롭기까지 한 광경이다. 계관산과 용화산의 그것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곤 하였다. 아마도 주일 오전, 예절 전후의 정경을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사람이라면 흰옷 입은 사람들의 행복감에 바로 취하고 말 것이다. 온 가족이 온 동리와 함께하는데 집집마다 한 주간 살아 온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집이 화요일에 부부다툼을 했다가도 금요일 저녁 정도엔 화해를 시도하니 마을의 분위기가 무언의 재촉이 된다. 이렇게 평화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들이란, 대건은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하루속히 고향 솔뫼나 은이에서도 마음껏 이런 세월이 왔으면 했다.

“업아, 얼추 다 왔다, 저 앞이다.”

“하오!”

양업은 일부러 중국말로 대답했다. 스스로도 긴장이 풍어지고 있다고 느끼며 앞서 가는 대건의 등짝을 바라본다. 저 낮익은 등짝, 늘 이런 식이었다. 대건이 앞서 가면 두서너 걸음 뒤따르며 등짝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페레올 주교님 성성식차 여기서 몇백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양관 성당에 갓을 때도 그랬었다. 양관 또한 개울이 하나 흐르는데 유난히 추웠던 밤에도 얼음을 타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도 미리 봐둔 곳이 있다면서 거기로 가자고 하더니만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먼저 도착한 대건은 밤 미역할 곳을 봐두었다고 했다. 어떤 때 보면 홀린 듯 앞장서 간다. 그럴 땐 둘도 없는 벗의 등짝도 설어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 경이로워 보인다는 것이 맞다.

‘진짜… 이럴 때 보면 재가 형 같단 말이야.’

실은 양업보다 6개월 동생이었다.

남자들 사이에 나이가 얼마나 얘깃거리인가? 누가 아우고 형이냐는 문제는 평생을 간다. 어릴 때 고향 느티나무 아래 어른들이 노시면서 한번은 큰소리가 났었다. 바로 나이 때문이었는데 동네에서 어른입네 하는 두 분이 으르렁거릴 때는 도시 체면이고 위신이고 없었다. 그러니 함께 있던 사람들의 판까지 깨질 수밖에. 요는 자기보다 한 살 어린데 왜 반말이냐는 것이다. 칠십이 넘은 노인들이.

물론 대건의 그것엔 분명 다른 데가 있었다. 솔선수범하는 데는 정말 형님 같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래 뭐… 나도 네가 형이었으면 좋겠다.’ 양업이 속으로 중얼거릴 즈음 막 덮쳐 내리는 어둠을 째는 우렁찬 소리, 과연 대건다운 기백이다.

“와! 여기다. 업아 봐 봐, 끝내준다!”

두 사람이 어둠을 뚫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한 곳은 제법 수심 깊은 소였다. 바로 흐르는 여울의 경쾌한 소리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적당히 한적한 곳이 두 사람이 밤 미역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첨벙! 첨벙!

대건이 따라오는 양업을 기다렸다가 둘이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보름 동안 온몸에 버석거렸던 소금기, 칠월 무더위 속의 끈적거림들, 거머리처럼 머리 겨드랑이 발가락 속에 붙어있던 쉰내 같은 것들이 스물스물 떨어지자 쌓였던 피로감도 일시에 씻겨 나간다.

“으… 으흐… 시원타!”

“하! 하! 하!”

얼마나 오랜만인가, 벗과 함께 아무 걱정 없이 물을 담가본 적이….

“푸! 하! 하! 하!”

웃음소리가 거의 박장대소에 가깝다. 이국의 밤하늘에 두 부제의 웃음은 켜켜이 깔리는 어둠보다 낮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뚫고 그 아래부터 치솟았다. 높이 높게…, 그래서 이제 밑에 있는 것들일랑 아무 문제도 안 된다는 듯, 그것들이 설령 힘들게 하는 것이든 외롭게 하는 것이든 조금도 상관없다는 듯 “푸 하 하 하”지상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만큼 높게 높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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