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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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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백가점의 밤2 날짜 2015.02.03 11:23
글쓴이 관리자 조회 238

? 한여름밤의 미역은 가장 좋은 피서법일 것이다. 대개 칠월 긴 장마가 한바탕 지나고 개울 바닥은 수정처럼 청량하다. 뽀드득 이끼가 씻겨나간 하얀 자갈들이 투명해진 물속에서 반짝거리면 개울물이라도 그냥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을 정도다. 아이들이야 대낮이고 뭐고 훌훌 벗어던지고 물장구를 쳐댔지만 어른들은 이슥해지기를 기다린다. 조금 깊은 곳을 보아두었다가 인목을 피해 들어가면 성가신 모기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종당엔 콧구멍만 빠끔 남긴다. 자갈 같은 것들이 아무리 깨끗해졌다고는 하나 코보다 입술로 먼저 느껴오는 적당한 물비린내, 처음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갑지만 하나 둘 셋까지만 세고 나면 오히려 냇물 쪽이 체온에 적응해 온다. 차지도 않은 게 시원하면서도 은근한 대자연의 온도, 이럴 땐 미동 않고 가만있는 것이 상책이다. 완전히 물결에 몸을 맡겨버리며…. 바깥으로 나오면 여름 바람이라도 으스스하고 또한 물속에서 움직이려도 물살에 부딪혀 썰렁하고…. 그렇게 꼼짝 않고 있다 보면 둔한 사람이라도 금시 알아차릴, 허벅지로, 등으로 전 방위로 잠방이 저고리를 헤집고 들어와 주둥이로 톡톡 건드려 오는 송사리 떼들, 양업도 대건도 하늘 높이 웃다가 녀석들이 간질이는 통에 잠시 말을 끊었고 그것은 이내 얼마간의 침묵으로 이어졌다.

? 가만 가만히… 양업은 지금, 대건이 말문 열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양업은 한 달 전 오랜 길잡이요 짐꾼인 범 요한으로부터 상해에 있는 디건이 급히 한번 만나자고 한다는 기별을 받았던 것이다. 양업이 있던 소팔가자와 대건이 머물던 상해의 중간 지점인 여기 백가점에서 8월 2일 전후로 보자는 급보였다. 그러면서 신신당부하기를 지극히 사적인 일이니 어른들께는 액면 그대로 말씀드리지 말고 서둘러 와달라고 했다. 누구의 부탁인가, 세상에 다시없는 벗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처럼 공과 사가 분명한 대건이 적당한 구실로까지 빠져나오라고 했을 때는 필시 보통 일이 아닌 듯했다. ‘무슨 일일까. 왜 갑자기 대건니 찾는 것일까.’ 궁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날이 밝는 대로 양업은 소팔가자 신학교 교장 메스트르 신부에게 달려갔다. 마침 신학생들도 여름방학을 맞았으니 휴가를 좀 얻었으면 좋겠다며, 어쨌든 백가점엔 꼭 다녀와야 한다는 청만 드렸을 뿐이다. 방학기간이라 그랬는지 교장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흔쾌히 허락해 주신 것이다.

? 그런데… 도대체 대건이 왜 나를 찾을까, 소팔가자에서 장춘을 떠나올 때만 해도 머릿속에 궁금증만 가득했다. 그러나 사평을 거쳐 심양을 지나올 때는 어느 정도 걱정이 덜어졌고 개주 양관을 넘어설 때는 그다지 개의치 않게 되었다.

‘다 맡기기로 하자, 대건이 어련히 알아서 불렀을라고.’

? 방금 전 대건을 만나고도 이유부터 다그치지 않았다. 몇천 리 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까닭을 말이다. 굳이 듣지 않아도 대건의 눈 속엔 자기를 배려하고 아끼는 빛이 그득했다. 그런데 지금 들어앉은 냇물 속 송사리 떼의 입질 끝에 침묵이 따라왔고…. 대건이 왜 나를 불렀을까, 소팔가자를 떠나 수천 리를 걸어온 이유가 새삼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 대건도 이제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필 이런 말을 양업에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여간 곤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입으로 듣느니 자기가 말해주는 편이 좋을 것이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직접 소팔가자까지 가서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기한이 꼭 백가점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급박하게 결정된 탓이리라. 자신의 사제서품 말이다.

? 두 달 전, 갑자기 붙은 서품 공시를 본 대건의 기쁨은 미루어 짐작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을 받기 위해 중국 대륙을 종단하여 마카오까지 가는 고생을 했다. 원래는 작년 예정이었지만 연령 미달로 연기된 탓에 지난 일 년을 얼마나 험하게 보냈는지 모른다. 변문에서 또 서해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던 중 마침내 때가 찼다는 뜻이려니 언제 어떻게 되어도 여한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다가 순교하신 아버님, 노심초사 오매불망 아들의 서품만 기다기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없이 기쁜 일이었다.

? 하지만 기쁨도 잠시, 대건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품자 명단에 의당 있어야 할 양업의 이름이 없고 달랑 자신의 석 자만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몇 번을 보고 또 훑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동갑이지만 양업 쪽 생일이 반년이나 빨랐다. 신학교 성적도 자기보다 우수했고 무엇보다 정식 신학생으로의 선발도 먼저였지 않은가 그런데도 파리 외방 전교회는 자신을 조선의 첫 사제로 결정한 것이다.

?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만 잘 보여서일까. 아니면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의 모방(P.P.Maubanr. 羅)신부에게 직접 세례를 받고 친히 선발된 사람이라 그런가. 그도 아니면 성정상 첫 사제의 길을 가기에 적합했을까? 도무지 하늘의 계획을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일로 양업이 조금이나마 실망하면 어쩌나, 그것이 오로지 그것만이 두려웠다. ‘어쩌면 좋은.’ 어쨌든 분명한 것은 직접 양업을 만나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다. 양업이 축하해 주지 않는 서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들었다.

? 그나저나, 서품일이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으니 먼저 소팔가자에 있는 양업에게 연락부터 해야 했다. 뱃길에다 육로에 도착하는데만 암만 못해도 한 달이 따듯한 거리인데 칠월의 우기가 오고 있었다.

? 그런데 하늘께 감사드릴 일인지 양업의 길잡이인 범 요한이 상해에 내려와 있다는 소문이었다. 십중팔구 소팔가자 신학교의 물품을 구입하려고 잠시 왔으리라.

?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상해 바닥이지만 번 요한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범 요한 같은 신학교 종사자라면 매일 미사를 보러 올 것이 틀림없었다. 상해 전체에 몇 되지도 않는 성당에 들러 미사시간을 전후로 살피면 쉬이 찾을 수 있었다.

? 대건은 그렇게… 범 요한을 만나자마자 긴급한 부탁을 했다. 되도록 빨리, 내일 아침이라도 서둘러 소팔가자로 출발해 양업을 백가점에 오게 하라. “백가점에서, 8월 2일” 날짜에서는 꼭꼭 씹어 발음을 했다.

? 그러고는 내친 길에 상해 오송항까지 내달았다. 상해 중심을 흐르던 황포강이 양자강 본류와 만나는 지점의 동쪽, 그러니까 바다 방향 항구인 오송항에는 지난 5월 강남 부근부터 환파 직전인 배를 끌어다 준 중국인 선장 ‘루’씨가 여전히 성업 중 일 것이었다. 이름도 없이 루 씨만 찾았는데 이 역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으니 중국에서도 희귀성이었던 까닭이다. “루” 선장은 대건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손을 잡았다. 죽을 지경에서 맺어진 연은 국적을 초월해 끈끈한 것 같았다. 대건은 그 자리에서 무작정 루 선장과 함께 “내달 23일 장하항에 함께 가자.”는 구두 계약을 맺었다.

? 7월 22일, 저녁부터 쓰기 시작한 장상 페레올 주교께의 편지를 익일 새벽에서야 서명 봉인하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대건 역시 어른 신부님들께는 짧은 보고만 드렸다. 사제생활 기쁘게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다녀오는 대로 피정을 받아야 하니 경황없이 떠남을 용서해 달라는 한마디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평정심을 조금 잃었던 것 같다.

? 실은 이런 모습은 대건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폭풍우 속 완파 지경에서도 “살아도 성모님 품 죽어도 성모님 품인데 무에 겁들을 내시는가?”하며 뱃사람들을 독려했었다. 3년 전 겨울, 의주관문을 통과한 것은 정말 김대건 배짱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삼엄한 검문을 조선에서 수입하는 소 떼 틈에 뚫고 들어갔을 때도, 또 주민들에게 쫓긴 설산에서 뻣뻣하게 얼어갈때도, 이렇게 조급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나름대로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혼자만 사제품을 받아야 한다니.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까.’ 대건의 머리에는 온통…여하한 일이 있어도 서품 전에 양업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열흘 되는 뱃길이 더디기만 해 갑판에서도 전속력으로 뛰고 싶었다.

“업아, 저 별들 좀 봐 봐!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대건은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말을 돌리고 말았다.

이를 모르는 양업이 아니었지만 기다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게. 이젠…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다 별이 되셨네.”

? 양업에겐 실상 더 이상 놀라운 소식도 없었다.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부음에도,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장렬한 순교를 접했을 때도, 하늘이 무너져 내리긴 했으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무너지는 하늘을 뚫고 솟아오르는 그 무언가가 오히려 강렬했다. 그때 누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면 양업의 눈동자가 이상했을 것이다. 중심에서 빛나는 두 개의 색이 완전 딴판이었을 테니까. 한쪽은 부모의 운명을 접한 장남으로서의 비통한 색이겠고 다른 쪽은 달릴 길을 다 달려내셨음을 자랑스러워하는 색이었다.

? 그런데 사실이지 이 두 가지 눈빛은 양업에게 익은 것이다.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 십여 년 전, 자신이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그를 고향의 뒷산으로 데리고 갔다. 아니 뒷동산에 올라간 바람에 입을 떼게 됐는지도 모른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이상항 정도로 아무 말씀 안 하시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셨다. 그때 양업은 아버지의 눈에서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아, 한 눈에 두 가지의 빛이 공존 할 수도 있단 말인가.

? 그게 그랬다. 아마도 한쪽은 마음이 눈이었던 것 같다. 이제 아들을 잃게 되었다는 아비로서의 슬픈 눈빛! 다른 쪽은 영혼의 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늘의 사제로서 되얻게 되리라는 기쁜 눈빛! 어떻게 한 사람의 눈에서 두 빛이 따로 나면서도 저리 어우러질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네 인간관계라는 것이 마음의 단계만이 아니라 영혼의 단계까지 진입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리라, 아버지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 언제였던가. 양업이 동급생들과 밥을 먹다가 이 두 가지 눈빛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해본 것도 사실은 아버지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기가 마음으로는 슬플 수밖에 없지만 영혼으로는 얼마든지 기쁘게 등 떠밀 수 있다고….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나름대로 개똥철학까지 붙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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