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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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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백가점의 밤3 날짜 2015.02.04 10:38
글쓴이 관리자 조회 208

“업아, 사실은…할 말 있다.”

“….”

“이거, 안 되겠다, 물속에서 해야겠다.”

“하오.”

? 이번에도 양업은 일부러 중국말로 대답한다. 어쩐지 머쓱해질것 같은 밤공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잠수했다.

“업… 아…,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너와의 관계가 첫째다!”

? 물속이라 반절 이상은 그냥 심중으로나 외쳤을 것이다.

“푸우…, 뭐라고 했는데 건아?”

“못 들었구나! 그렇다면 다시….”

? 말이 필요 없는 두 살람은 거의 동시에 한 번 더 입수했다.

“미안하다, 업아!”

? 수중에 들릴 리 만무하였다.

“퓨… 휴…. 야, 뭐라고 했는데 건이 너! 혹시 물고기한테 주의 기도문 가르쳤니? 그렇지?”

? 샌님 같은 양업이 뜻밖에도 대건의 겨드랑이 근처를 간질였다. 전에 없던, 가히 도발적이다.

“어찌 알았쥐? 하하하! 이번에 사도신경 가르친다.”

? 와중에 대건도 장난기로 맞섰다.

“푸… 우….

?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수면 위로 머리를 들었다. 그 위로 별들이 천지다. 대건은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업아…, 내가 먼저 신부 된다…. 내가 앞정설게…, 뒤를 부탁한다.”

“….”

“날짜 잡혔다. 8월 17일, 금가항 성당….”

“….”

“그게…있잖여…, 널 아껴두는 건지도 모른다.”

“….”

“….”

“응…그랬구나…그랬었구나….”

? 양업은 벗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안엔 조금 전 개울가를 걸어오면서 보았던 등짝보다 듬직한 것이 들어있었다. 그렇긴 해도, 동시에 하늘에 계신 분께 투정 같은 것이 일어 시선은 여울 쪽으로 돌려지고 말았다. ‘에이 참, 조금 전 대건이가 형님이었으면 좋겠다… 속으로만 그랬는데 엿들으신 거예요, 하여간 귀도 밝으세요!’

? 양업은 금시 알아챘다. 얼마나 역사적이요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들을 때부터 즉시 파악했다. 이제 세상은 두고두고 대건을 1번이라, 자기를 2번 신부라 할 것이다. 대건도 이를 모르지 않음이니 여북하면 그 없는 시간을 쪼개 한달음에 왔겠는가. 오죽하면 얼굴도 못 들고 저러고 있겠는가.

? 이럴 때 친구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의당 답은 정해져 있다. ‘서운하다. 그렇지만 축하한다.’ 대개 두 마디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양업은 그리 인사하기가 싫었다.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누구도 없는, 지상에서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서운하지만… 축하한다.’란 인사치레는 생략되고 불쑥 이런 말부터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이구… 그러시오, 김대건 선배 신부님? 그런데 말야…, 니가 형이 된 건 아니다. 둘이 있을 때는…기대도 하지 라라.”

? 대건이 상해를 출발할 때 평정심을 잃었던 것처럼 지금 양업도 인간적인 감정에서 나온 흔들리는 말투였다. 참으로 모를 일이 그렇게 크고도 중대한 시험들은 영웅적으로 이겨냈으면서 사소한 유혹에는 집요히 따라잡힐 줄이야, 양업은 아차 싶었다.

? 어쨌든 기대도 하지 말라는 대답은 영 그랬다. 그러나 어떻게 말하든 언어란 것은 둘째일 뿐, 마음이 문제였다. 아니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서 마음까지 쥐락펴락하는 것이 잇다면 그것이 관건일 텐데, 밑동이 무엇일까?

? 생각에 잠기자 어쩔 수 없는 침묵이 흘렀지만 그래도 양업은 계속 그래보기로 했다. 대건만의 서품, 무슨 근거로 해서인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 사모의 정이야 차가운 백설(白雪)위에 다홍으로 불붙는 연정인단들 어떻게 그 수줍은 비교치를 낼 것인가. 다만 그분 안에 숨겨져 있는 우리네 생활을 세상에 드러내는 거야 전권을 맡겨드릴 수밖에.

? 우정? 우정가지고도 안 될 것 같다. 자신만의 보류가 달갑지만은 않다. 사촌인 최방제 못지않게 대건을 위했었다. 9년 전 셋이 압록강을 건너 유학 나왔을 때부터 한 몸이나 다름없이 살아왔다. 목마르면 같이 참았고 배고프면 같이 주렸고 추우면 같이 떨었다.

? 물론 단동(丹東)에서 봉황산으로 이동하던 밤길, 이리 떼 앞을 나서며 횃불로 휘두르던 대건을 다시 보게 된 적은 있다. 시종 한 살 많은 방제 형보다 솔선해 왔었다. 나이도 어린 편에 사촌지간도 아니지 신학공부나 세례도 상대적으로 늦어져 일부러 더 그럴 거라는 방제 형의 말이었지만 동시에 본능적인 공포에 맞닥트렸을 때의 기개 앞에선 ‘아니로구나.’하고 새로 보게 된 계기였다.

? 그래도 이 점만 가지고 서품 건을 흔쾌히 받아들이란 말인가? 다지고 보면 서두르는 대건을 도와준 적이 더 많았을 것이다. 대건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하지 나중에 후회할 일 생기면 어찌하니, 하고 서만자(西滿子)교우촌과 북경 사이의 주막에서 시비를 면하게 해주었는데 그 패거리가 산적 잔당이었을 줄이야. 또 물이 새는 줄도 모르고 먼저 올라탄 마카오행 배에서 내리게 해준 일 등등이다.

? 종내는 서품 건을 결정했을 페레올 주교님의 문제 역시 아니다. 스스로의 마음이 문제였다.

? 양업은 대건의 머리털을 올려보았다. 전보다 많이 거뭇해 가기는 하지만 아직 회색이었다. 피부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나았지만 두발 색깔로만 보면 쉰 살이 넘어 보일 정도로 은발을 만들어 버린 이유. ‘그래 그거라면 하늘의 섭리로 받아들일 수 있겠네.’대건의 머리가 하얗게 된 원인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건 사명감이었다. 팔도 전역이 피 흘리는 시대의 본국인 사제로 불림 받았다는 사명감. 이 진짜 이유는 당시 마카오 파리 외방 극동 부대표로서 필리핀 피란 시절 임시교장을 맡았던 리부아 신부도 잘 모르신다. 마닐라에 머물 때 그저 화분인가 큰 꽃병인가를 들다 허리를 다쳐 요통이 두통으로 올라가 하얗게 센 줄로만 아실 텐데 ‘아니다.’ 머리가 두어 달 사이에 왜 그리 되었는지 양업만은 알았다.

? 양업은 지금 여울의 물이 멈췄다 가는 소처럼 대화가 끊기는 것이 어색했지만 계속 생각에 잠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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