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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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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백가점의 밤4 날짜 2015.02.05 18:22
글쓴이 관리자 조회 252

?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1839년 초부터 마카오 역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청제(淸帝) 도광(道光)은 전국을 황폐하게 만드는 아편에 강경일색이던 임칙서(林則徐)를 광동의 흠차대신으로 파견하며 전권을 주었다. 임칙서가 결국 영국의 아편을 소각해 버리자 광동 상권에 소요가 일어났고 지척인 마카오까지 민란으로 번질 태세였다.

? 이에 조선 신학생들을 염려한 대표 르그레주아 신부는 부대표 리부아 신부 편에 둘을 필리핀 마닐라로 피신시켰지만, 그 번화한 도시가 교육상 탐탁하지 않았던지 롤롬보이 농장으로 재차 이사했던 것이다.

? 대건의 안색은 마카오를 떠날 때부터 이미 좋질 않았었다. 출항하기 전날 누구를 만난다고 외출했을 때부터이다.

? 당시 마카오에는 북경의 상인까지 내려왔는데 대건이 어떻게 줄을 놓았는지 그들을 통해 조선 사신들이 북경에 흘린 국내소식을 챙겨왔던 것이다. 그때가지만 해도 조선은 1801년 신유년 이후 30년을 넘게 잠잠하던 편이었다. 샤스탕(Jacques H.Chastan.鄭)신부를 데리고 입국한 앵베르(L.M.Imberr.范世亭)주교님이 모방 신부님을 비롯한 정하상, 유진길 같은 분들과 더불어 성장일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거기다 우리가 사제수업까지 받고 있으니 더 희망적이었을 것이다.

? 그런데 역시, 열한 살 어린 헌종의 즉위와 동시에 수렴을 펼친 신정왕후 조 대비가 걱정이라고 했다. 그 오라버니 만영 인영 형제와 우의정 이지연이 장악해 가는 조정은 과연, 반천주교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식을 전해주던 안색부터 말이 아니었다. 필리핀으로 출발하려던 때가 대박해의 조짐이 일던 기해년의 이른 봄이었기 때문이다.

? 롤롬보이 농장에 도착하자 대건의 병색은 짙어졌다. 밤마다 웬 땀을 그리 흘리는지 한번은 자다 우두커니 이마를 훔치고 앉았기에 조선 걱정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때 덥석 손을 잡더니, “업아 우리 잘 살자, 조 대비가 모내기철을 틈타 척사윤음(斥邪?音)을 반포할 수도 있다는데 내일 모레가 망종이니 지금 조선은 어찌되고 있을까?”라고 했다. 그때부터 양업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둘은 자다 말고 십자고상을 보며 양팔기도를 하곤 했다. 그런데 키가 큰 대건은 허리가 약했던지 요통이 머리까지 올라온다고 했다. 쿡쿡 쑤시는데도 라틴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려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던 어느 밤, 신부님, 아버지, 하는 잠꼬대에 화들짝 깨어보니 대건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꺽다리가 귀퉁이에 틀어박혀 있었다. 대건아, 하며 손을 대자 축축한 몸이 미끈거렸다. “악몽이겠지. 모방 신부님과 아버지가 목이 잘리는 꿈이었다. 양업아, 개꿈이겠지 개꿈!”하면서 몸을 떠는데 당시만 해도 민첩하지만 과민하기도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 그날 이후 대건의 불면은 극심해졌고 음식 소화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3주일이 지나자 머리털이 희게 나오는데 불쌍할 정도였다. 스무 살짜리가 노인처럼 허리도 꾸부정해져서 돌아다니면 리부아 신부님이 여간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하루는 식사 하다 말고 문득 “신유년 이후 33년을 목자 없는 교회였다. 또 박해가 일어나면 워쩐다냐 우리 조선교회를.”이라고 하는데 그 걱정의 크기가 전해져 왔다.

? 걱정, 바로 그때의 걱정을 사명감 같은 것으로 대치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대건의 급한 성격이 더 몰아세워 가고 있음을 양업만은 정확히 알았다.

? 그래… 건아, 그 사명감이라면 좋아. 네가 첫 번째 신부가 되더라도 그거라면 받아들 수 있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 ‘누가 봐도 머리 허연 네가 형 같아 뵈지…. 먼저 돼라.’ 양업은 속으로 이런 말을 하면서 반백의 머리털을 올려본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개건의 손을 잡아 쥐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축하해 건아.”

대건의 얼굴이 상기되어 올랐다.

“하오!하오!팅 하오!”

? 깊은 시름에서 빠져나오듯 대건은 “하오”를 세 번이나 연발했다. ‘좋다 양업아, 니가 이해해 준다니 됐다 이젠. 둘이 있을 땐 니가 형 해라, 너무 좋다 업아 우리 함께 가는 길이라면….’

“와… 아! 적 좀 봐!”

대건의 얼굴이 상기되어 올랐다.

“하오!하오! 팅 하오!”

?깊은 시름에서 빠져나오듯 대건은 “하오”를 세 번이나 연발했다. ‘좋다 양업아, 니가 이해해 준다니 됐다 이젠, 둘이 있을 땐 니가 형 해라, 너무 좋다 업아 우리 함께 가는 길이라면….’

? 대건의 “하오!”소리가 너무 컸을까. 순간, 주변에 있었을 반딧불이들이 일제히 날아오른 것이다. ‘햐, 희한한 일도 다 있지. 어디서 날아온 반딧불이일까.’ 마치 거짓말처럼…, 반딧불이들이 머리 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기가 차고 막혀 어떻게라도 될 노릇이 수십 마리가 아니라 수백 수천이 대건과 양업의 머리 위에서 화관처럼 띠를 두르며 반짝이는데 대건의 모습은 이미 지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

? 대건이 보기에 양업도 하 사랑스러워 그를 위해서라면 생명이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남자끼리 멋져 보이는 건 반딧불이 탓이겠지.

? 일순 둘은 이제 서로를 마주 보지 않았다. 거기, 아직까지 무언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인간의 멋들어짐이, 인간의 고아함이, 인간성의 거룩함까지 전해와 동시에 그것들이 분출되는 시원을 향해 눈을 들었다. 하늘과 더불어서나 맺어지는 천상관계였다. 두 사람의 내면에 이런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사람아, 본시 너희는 그렇게도 아름다운 조물이었도다,’다른 사람의 귀에는 이런 소리로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벗, 내 마음에 드는 너로다!’

?이제 갑자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수천의 반딧불이는 볼거리도 아니었다. 그것들이 두 사람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반짝이는 일도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일제히 하늘로 치솟으며 비상하는 두 마리 새의 형상으로 군무를 펼치는 것도 한낱 배경에 불과했다. 무대의 중심은 다시 벗의 눈동자였다. 대건의 눈동자에서 보았던 양업의 하늘, 양업의 눈동자에서 찾앗던 대건의 하늘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세상 무엇으로도 방해받지 않는 하나 됨이 여름밤의 중심무대였다. 거기 관계의 낙원에서 사람이 창조 이전으로 되빚어지는 것 같았다.

“건아, 사제수품 축하! 감사! 감사!”

“고맙다 업아, 니가 있어 내가 이렇게 있다!”

밤이 깊어갔다.

“별 하나 반딧불 하나, 별 둘 반딧불 둘, 별 셋 반딧불 셋.”

? 갑자기 유치해진 것 같다, 대건이 말이다. 만주벌판 안방 삼아 만리장성 베개 베던, 서해 파고 배 달리고 성남 바람 호령하던 기백은 어디 가고 별 하나 반딧불 하나라니…. 그래도 좋다. 누가 뭐래도 우선 벗과의 공간이 따뜻해서 최고였다. 그러면서 수면 위는 시원만 하니 언제까지라도 이만 같았으면 좋으련만, 대품피정을 앞두었다는 대건의 말마따나 날이 밝는 즉시 상해로 떠나야 했다.

? 그래서 양업은 한창 서품 선물 구상 중이었다. 갑작스런 통보이니 달리 준비할 것도 없고 만부득이 ‘이따 대건이 잠들면 축시 한 편이나 적어줄까 보다.’하며 시구(詩句)를 고르고 있는데 대건은 유치하게 “업이 별 건이 별, 업이 별 한 개 더, 업이 별 두 개 더….” 여전히 시시한 별타령이다.

“잘 가 업아, 먼저 간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내가 가장 가깝게 있는 거다!”

“응 알았어…. 이달 17일 금가항이라고, 오전 10시라고 했지?”

“….”

? 여지없이 밝아온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뒤로하고 말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듯 대건이 대답 대신 까닥 머리질만 한다. 한순간이라도 벗의 눈동자를 놓칠세라 뚫어져라 보고 있다.

“….”

“….”

대답은커녕 숨조차 쉴 수 없는 뜨거운 응시만이 백가점의 아침을 정지시키고 있다.

“나도 멀리에서나마… 서품미사 함께할게. 그리고 이거…."

양업이 내민 것은 작은 편지였다. 간밤에 옆방에서 대건이 문을 붙이는 사이 공들여 쓴 것이다.

? 원래 양업은 문학에 소질이 있었다. 특히 시를 쓸 때는 주변에 감상적으로 보일 만큼 몰입하곤 하였다. 신학생 때부터 주면에 감상적으로 보일 만큼 몰입하고 하였다. 신학생 때부터 그랬으니 웬만한 지인들은 다 아는 바다.

“자알… 가….”

? 친구가 간다. 혈육 이상이 떠나간다. 지상에 하나밖에 없는 영원의 동지가 떠나간다. 같이 있으면 거기가 곧 하늘이요 구름 위의 동행 같은 나의 너가 떠나간다. 아니 너의 나는 이렇게 서있기만 하고 이리 보기만 하는데 너 또한 그 자리 가만있기만 한데. 땅이 우리를 벌려놓는 것이리라. 시절이 우릴 벌려놓는 것이리라. 잘 가라 건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사제품이 필경 너를 새로운 곳으로 보낼 것이니 새 임지는 늘 생과 사의 경계일 것이니….

? 잘 있으시라. 그대, 이승에서 마지막 모습일 수 있는 그대. 지금부터는 우리 시간과 공간 안에서 만나지 말고 나 안에서 너를 만나리. 아니 나마저 너 안에서 만날 터이니 그러면 우리…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을 수 있다.

더운 눈동자들은 이런 말들을 나누고 있었다.

“잘 있으시게… 업아!”

둘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만일 물기 같은 게 어렸다면 그것은 필시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 아니다. 우리 때문도 아니다. 우리 함께 어울리던 시간 때문도 아니다. 내가 떠나서도 아니다. 네가 남아서도 아니다. 이제 혼자 되어서도 아니다. 눈물이 날 때에는 단순히 인간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아무래도 저 하늘 위에서나 흐르시는 물길이 우리에게도 내리셨던 모양이다. 너와 나를 한 통 속에 푹 잠그셨다. 지금 물 빠지시는 모양이다. 하여 하늘 물 빠지심이 지상의 티끌까지 눈 맑게 눈 밝게 씻기시는 모양이다.

대건의 마음속에선 계속 양업의 이런 인사가 들리는 듯했다.

“니 하오?”

“니 하오.”

장하항에는 마치 오랜 지기인 듯 중국인 루 선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푹 잔 모양이다.

? 대건은 가득 웃음만 머금은 채 말없이 배에 올랐다. 이내 먼 바다만을 바라볼 뿐이다. 아니 바다를 본다기보다 거기 적당한데에 시선을 고정시켜 두었다는 쪽이 맞다. 머릿속에 봇물처럼 솟아난 양업의 잔영이 가슴까지 자꾸 밀려와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럴 때는 장하 근해에 잔뜩 낀 연무가 고마울 뿐이다. 희뿌연 속에 숨어서나 마음을 가라앉힐 수 밖에. 그런데도 막 피어오르는 연무 한줄기 속에 양업이 또 맑게 있다.

“참, 편지가 있었지.”

대건은 양업이 사제서품 선물로 준 시 한 편을 읽고 또 읽었다. 나중엔 시를 보는지 지면에 어른대는 양업을 보는지…, 하여간 시는 이런 축하를 전하고 있었다.

길…

내 담약한 마음이 바람 타는 대로 흐르고

흐르다 지독히도 높고도 단단한 둑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던 중

천만 요행으로 이 물가슴보다 무른 지반을

얻어 만나 빗방울이 대기 속을 곤두박질하듯 지하로

수직으로 사무쳐 내려가

거기서 시원의 샘에 다다를 수 있다면

거기부터 맑고 차운 시내가 되어 흐를 수도 있겠지만,

이 천만 요행 끝의 흐름이 다시 천 길 바위를 솟구쳐

얼음장 같은 물이 가는 자리마다 파놓는

깊고도 어두운 마음의 골짜기에

초목이 빽빽이 들어서고

새들과 짐승들이 찾아들어 몸을 숨긴단들

머물다 가는 바깥 것들의 검누른 독물을 받아낸단들

심곡(深谷)의 이 흘러내림마저 그대의 강에 나가지 못한다면

그대 나란히 손잡고 바다가는

같은 길이 아니라면,

차라리 나는 예전으로 돌아서겠네.

바람 부는 대로 오가다가 오도 가도 못하겠네.

벗이시여

네 굽이쳐 흐르다 서신 자리

서럽고나

아름답고나.

??????????????? 1845년 8월2일 사제서품을 받는 벗에게…

“뭐여… 자칭 물가슴이라니? 담약하다니? 자기가 더 단단하면서….”

‘어쨌든 지난밤 상당히 감상적이었나 보다. 그 차돌멩이가 물가슴이라고까지 한 걸 보면…. 나 듣기 좋으라고 그 바윗돌이 바람 부는 대로 오간다니?’

? 이제 바위 같고 태산 같은 정도가 아니라 물 같고 흙 같은 경지가지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업아, 나를 굳세다 말해주려 물가슴을 자칭하다니, 나도 네 앞에선 물가슴으로 있어야 바위처럼 굳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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