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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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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길잡이별 요한(1) 날짜 2015.02.11 16:42
글쓴이 관리자 조회 221

? 길잡이 범 요한(완푸 오전5시)

?“부제님, 김 부제님이 뭔일이랍니꺼, 대체?”

?이글거리는 중복(中伏)의 태양, 그늘 하나 없는 길바닥도 덩달아 이글이글 올라온다. 가만히 있어도 주르륵 땀이 흐를 판이지만 불볕더위를 걷는 것보다 더 못 참을 것이 궁금증이다.

?나는 지금 최양업 부제와 함께 소팔가자로 귀환중이다. 오늘은 완푸까지만 도착해 여장을 풀면 된다. 원래 길잡이로 나섰지만 이번 길은 양업 부제도 훤하니 길동무나 해주는 중이다.

?양업 부제는 오늘 아침 백가점에서 대건 부제와 헤어지자마자 서둘러 돌아가자고 햇을 때부터 좀 이상했다. 이왕지사 백가점에 온 김에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며칠 쉬며 오랜만의 휴가를 즐겨도 무방할 일이었다. 혼자서만 물고길 잡아 어탕 끓여 먹는 상상을 한껏 했는데, 고마 날 새삤다. 만일 대건 부제가 새벽같이 가지만 않았다면 양업 부제 족이 먼저 그러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분명, 어젯밤 냇가에서 뭔 얘기가 오간 것이다. 오늘 아침 헤어지는 빛들이 짠하니 여느 때와는 영 달랐었다.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1842년 파보리트호에 동승한 이래 벌써 4년째 같이 먹고 살고 하는데 척 보면 모르겠는가.

?그러고 보면 대건 부제는 더 이상했다. 두 달 전 상해에서부터 소팔가자에 잇는 양업 부제를 봐야 하겠다고 그래 재촉이더니 정작 먼 거리를 와서 하룻밤도 옳게 보내지 않았다는 건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 늦은 시간이도록 뭘 하고 있다가는 자는 사람까지 불러내 밑도 끝도 없는 말로 정신 사납게 그래쌓트만 결국엔…. 정 어른 신부님들 눈치가 보이면 까짓 이틀 정도 자연 피정이나 한다고 하면 될 일이다. 부제님들이야 피정하는 시늉만 하고 천렵해서 어탕 끓이는 몫은 다 내 차지로 하면 될 거 아이가. 나 같으면 그리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어젯밤 둘 사이에 중한 얘기가 오갔음이 틀림없다. 나는 한번 궁금해지면 답을 들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와예, 김 부제님이 또 뭐라 카는데예?”

?“….”

?멍할 정도로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좀 심하다. 한 번만 더 대꾸를 안 해주면 들을 테면 들어보라고 요래 지껄일 참이다.

?‘아니 갑자기 귀를 잡수셨나, 사람이 묻는데 죄 씹으시네?’

?솔직히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성인도 악인도 못 되는 보통이다. 그러나 신장 하나는 족히 6척이 될 것이다. 키가 크면 싱겁고 서글서글하다는데 난 그렇지도 못해 욱했다가 언제 그랬냐고 “히! 히!”거리는 식이다. 이러는 나도 싫다.

?얼마 전 허물없이 지내는 작자에게 들은 말인데… 내 머릿속에 어던 생각이 떠오를라치면 금시 징후가 포착된다는 것이다. 미간 위로 퍼지는 신경선의 가는 떨림이라는데 대수롭지 않을 때가 그 정도지 웬만한 발상일라치면 가관도 그런 가관이, 부리부리한 눈이 사각으로 벌어져 동공이 튀어나오기 일보직전이다. 물론 과잉반사가 초기의 주도권을 잡기에는 효과 만점인 것이, 일단 청중은 눈빛에 압도당할 테니까 그러나 어눌한 말주변이 탄로 나는 것은 일 분도 못 가서다. 이야기 도중 홀로만의 세계에 빠져버리면 듣는 사람이 통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청위자들이 식상하다 싶어지면 제풀에 더듬거리는 식, 한마디로 단순 다혈질이다. 거기다 온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경향이 보태졌다고나 할까? 기탄없이 해보라고 했던 녀석의 말을 들으며 억수 자세히 관찰했다 싶으면서도 등 뒤로는 땀이 다 났었다.

?나는 예전에 천주교 신학생이었다. 자랑 삼아 떠벌리기도 했으니 엑스세미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사천의 고향집 대대로 천주교를 해왔기 때문에 성당은 으레 다녀야 하는 것인 줄로 알았다. 신학교를 나오게 된 사유는 아직도 명확히 알지 못한다. 자퇴했다고는 말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보따릴 싸서 나온 건 아니다. 입학할 때도 자의 반 타의 반이더니 나올 때 역시 애매한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지금에 와선 그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렸느냐? 그렇지도 못한 것이 성탄 같은 때 대중 앞에 서는 사제들을 보면 절로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껏 소팔가자 신학교의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또 이번처럼 길잡이를 해주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 외에 보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것은 최근에 귀동냥 한 것인데 내가 신학교를 나오게 된 사유 중에, 당시 교수 신부들이 “범 요한은 다방면에 끼가 많아 사제의 길을 잘 갈 수 있을까?”란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재주가 많으면 장점일 텐데 왜 걱정들을 하셨을까, 하는 거다. 도대체 사제직 수행에 잇어 장단점이 무엇인지 기회가 되면 양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

?어쨌든 나는 단점 많고 성질 급하나 부지런하고 신체 건강한 중국인으로서, 조선인 부제 양업의 곁을 지켜주려는 마음 하나는 진심이다.

?“요한 씨….”

?내가 한참 생각에 빠져있자 양업 부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와예?”

?본래 말투가 퉁명스러운 데가 있다.

?“요한 씬 대건 부제가 더 좋지요? 남자답고… 난 샌님 같아 뭐….

? 양업 부제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나를 본다.

?“아이고 찐짤로 뜬금없이… 이거 지금 무슨 젖먹이 어루는 기라예? 어머이가 좋냐 아바이가 좋냐, 이런 기라예?”

?우리 외엔 인적이 없는 산길이었다. 나는 양업 부제가 갑자기 심각해지는 것 같아 그의 코앞가지 얼굴을 들이대며 장난스럽게 말꼬리를 받아쳤다. 나이야 내 쪽이 두어 살 많았지만 양업이 부제가 되고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떠받들어 주려고 한다.

?“음, 3년 전 장하 갯벌에서부터 김 부제보다 나랑 더 많이 다닌 것 같은데…글세 왜 그런다지? dyks 씬 아무래도 내가 좋은 가봐?”

?저런 땐 본인도 귀여울 것이라 여기며 말하는 것일까, 양업 부제 말이다.

?“내는 그런 말 몬 한다.”

?나는 한술을 더 떠보았다. 입술을 실룩거리며 갈지자로 껑충 껑충 앞장서 나간다. 이런것이 길동무를 하는 요령이다. 걷기조차 힘들 때 한 사람이라도 재밌게 나가야 덩달아 활력을 받는다. 우리 둘이야 워낙 많은 동행을 하다 보니 이젠 나우세스러울 것도 없다. 좀 전의 목까지 차오르던 궁금증은 ‘아직 갈 길이 천 리인데 천천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봅시다.’라는 식이 되어버렸다.

?“요한 씨…사실은….”

?양업 부제는 머뭇거렸다.

?“김 부제가 사제품 받는대요, 보름 후에….”

?“뭐라 캤어예?”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걸음에 다가서며 휘둥그렇게 양업 부제를 쳐다봤다.

?“예? 지금 뭐라 캤어예, 김 부제님이 신부님이 된다꼬예?”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8월 17일 날.”

“그라믄 우리 최 부제님은예? 아니, 두 분이 함께 받는 거 아이고?”

?"글쎄…난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지…. 하라는 대로 해야지요.”

?“뭐라 카예? 세상에, 이게 말이 됩니꺼, 아니 최 부제님이 김 부제님보다 못한 게 뭐 있습니꺼?”

?소용없는 줄 알면서 식식거렸다.

?“지는요 일찍부터 알아봤다 아임니꺼? 더 신중하시지, 공부도 잘하시고…. 그래서 최 부제님 뒤엥 붙은 건데 이게 말이 됩니꺼? 아이고 참, 이게 뭐라는 거라예?”

?그냥 더 놔두었다가는 욱하는 성격에 욕이라도 나올까 그랬는지 양업 부제는 얼른 말부터 끊고 들어왔다.

?“그래서 대건 부제도… 그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저도 많이 바쁠 텐데… 한번 보자고 한 거예요.”

?“아 글쎄, 부제님은 둘도 없는 친구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부제님 뒤로 선 나는 우짜라고예, 뭐라꼬?”

?참…김대건 부제님,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너무 활달하다. 나도 한 활달 하지, 그래 비슷한 사람보다 최 부제님이랑 더 맞을 것 같아 온 것도 있는데….

?나는 옆에서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중얼대다 큰소리까지 가고 말았다.

?“아이 참, 약오르네 우야노!”

?“요한 씨 그만해요…. 괜히 미안해지네…. 앞으로 더 잘해줄게요.”

?“아이 모르겠다, 몰라! 속 터져 죽겠네….”

?당사자보다 속이 더 디비지는 것 같다. 워낙 승부근성이 있는데다 계속 모셔야 될 분이 언제 서품받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아무말도 하기가 싫었다. 길바닥에 잇는 나뭇조각이나 세게 차버렸더니 발가락만 끊어질 듯 아파온다.

?“나는 문제 안 되는데, 이게 이렇게…까지 되는구나.”

?뒤따라오는 양업 부제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기 입장에서는 적당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지 내 기분을 존중해 주기로 햇는지 그 후엔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나도 앞만 보고 걷기로 해서 우리는 오후 내내 한마디도 없이 애꿎은 걸음만 재촉했다. 이렇게 둘만의 길에서 기계적으로 발걸음만 옮긴다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종종 서먹함이 빌미가 되어 다른 관계까지 틀어지게 하는 시초가 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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