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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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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길잡이 범 요한(2) 날짜 2015.02.17 11:42
글쓴이 관리자 조회 261

?‘잠이 안 온다. 아이고 참말로 나는 와 이래 꼬이는 기가? 아니 하는 일마다 와 이래 안 도와주시노 말이다.’

?이리저리 뒤척이는 중이다. 다른 때 같으면 종일 걸었던 몸이 드르렁, 코를 골아야 할 시각이다.

?‘야! 참 내가 누고…? 신학교에서 운동도 젤 잘하고 인물도 잘났다고 언 캤나. 그란데 꼬라지가 뭐꼬 지금….’

?양업 부제가 서품을 못 받는다는 사실이 내 자존심까지 건드려 오고 있었다. 자존심이 센 사람이 쉬이 섭섭함을 탄다고 들었다. ‘자존감’있는 사람은 자기를 죽일 줄 아는 데 반해, 내가 누군데, 하면서 본능적인 자존심만 추키는 사람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노상 유혹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누가 말했던가? 무릇 사람의 내면에는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고…. 평소에 이 아이를 달래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백번 점잖은 사람이라도 금방 토라지기 십상이다. 사람이 삐지면 유혹의 문턱에 반 발짝 들어선 셈이 가만두어도 분노로 발전할 테니까. 우리 같은 부류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든지 살다 보면 분한 게 생기는데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달래며 살게 마련인데 콱, 엉뚱한 쪽으로 터트려 버린다는 것이다. 나의 대표적 일탈 수단은 술이었다, 술.

?‘고마 이래 잠 안 오고 기분도 바닥일 때는 술 한 잔이 딱인기라….’

?잠을 못 이루던 차에 술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이 생겼다. 아니 꼭 술 아닌 다른 게 떠올랐을지라도 머릿속은 온통 그것으로 점령당했을 것이다. 심지어 좀 전에 무엇 때문에 속상했는지도 까맣게 망각될 정도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오로지 술, 술 한잔…. 술 한 잔만 마시면 만사형통일 것 같았다. 멧돼지가 한 방향으로만 돌진하듯 유혹에 대한 강한 집중력 요것이 문제였다, 즉흥적인 충동.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윗방엔 최양업 부제가 누워있는데 몰래 빠져나가잔 말인가. 아니 될 일이다.’

?부스럭 부스럭.

?몇 시쯤 되었을까, 머리는 말짱하고 시간은 무진장 더디다. 워낙 일찌감치 들었던 잠자리라 아직 초저녁만 같고 주막에는 술꾼들의 객쩍은 소리가 지금도 여전한 듯하다.

?‘그래, 가서 딱 한 잔만 하자카이. 딱 한 자 입에 붓자마자 바로 돌아와 누워자는 기다.’

?‘아이지. 그래도 우짤라고 그라노.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열 잔 될지 모르는데. 안되제….'

?절제력은 여기가지만 유효했다. ‘안 되제… 되제 되제….’ 하다가 어느새 ‘…되제’가 되면서 반신은 벌써 일어나고 있다. 이럴 때 하반신은 자동으로 움직인다. 눈만 그쪽을 보는데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주모, 주모…. 보소 아직 장사하는교?”

?장사가 끝나가는 주막은 뒷설거지가 한창이었다.

?“일찍도 오셨수! 정리하고 자려는 참인데….”

?“그런교? 그래도 내 딱 한 잔 주이소, 딱 한 잔만!”

?눈을 찡긋하며 검지까지 들어 보였다. 앳된 얼굴일 리야 없겠지만 이런 장사하는 여자치곤 퍼져 보이지도 않는 주모가 물 찬 제비처럼 놀리던 몸을 멈추었다.

?“잠깐만 기다리슈.”

?사실 나는 공무 중 술 한 잔도 않기로 약속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반년 전 출장차 나선 길에 딱 한 잔만 하잔 것이 발단이 되어 결국 온밤을 그놈에 붙들렸었다. 술도 술이지만 그러다 보면 공금 주머니에도 손을 대게 되고 자칫 여색에 빠질 수 있음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었었다. 결국은 소팔가자 신학교 담당인 메스트르 신부에게 눈물이 빠지도록 혼났던 것이다. “범 서방 두 번 다시 이러면 우리랑 영 헤어지는 것으로 알겠네.”

?무엇보다 스스로가 굳게 약속한 일이었다. ‘또 한 번 이런 짓을 하모 내 찐짜 사람도 아이다.’ 아 그란데 이 술이란 놈은… 안마실라고 하모 더 당기고 딱 한 모금만 할라 카모 이래 꿀맛이다. 글자 그대로 술~술 넘어간다. 이 정도면 승부가 난 거나 마찬가지다.

?“주모 한 잔만 더….”

?“주모 딱 한 잔만 더….”

?“알라 오줌 맨치로, 낯가지럽데이. 병채 갖고 오이소.”

??나중엔 사람을 먹은 술이 우세해진다고 했다. 는실난실해지는 본능에는 혀도 제멋대로 나불거린다.

?“보소…주모! 이 집은 우째 혼자 따라 마시노? 술 따라주는 여자도 없노그래.”

?“참말로! 이 양반이 점잖게 나와 한잔 주었더니 점점….”

?“점잖기는 뭐, 머심아가 다 그렇지 뭐…, 나도 머심아야 머심아!”

?되지도 않는 말은 튀어 나가는 타액처럼 아무렇게나 발사된다. 이런 식의 언어는 입이 하는 말이 아니라 주둥이서 나가는 소리에 불과하다. 본래의 기능을 잃고 사람을 사람 이하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사람 이상으로 승화시켜 주는 말도 있다고 배웠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것이 세 치 혀의 힘이라고 했다. 그럴 때 언어는 ‘말씀’이라고 해도 좋은 만큼 어떤 능력이겠지만, 지금은 듣는 이뿐 아니라 말하는 나까지도 마구 깎아내려 피아 인간 이하로 떨어지게 하는 역기능…. 이건 발설이 아니라 발사다! 문제는 머리론 알면서도 취기 위로 훅, 하고 피어오르는 어리석음을 당해낼 수 없는 거다.

?“뭐예요, 여자? 여기 그런 술집 아녜요! 그런 거 생각나면 딴데나 가봐요!”

?“뭐 이라노? 술집에 손 한번 잡아볼 가시나가 없다는 기가?”

?“아니 이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네?”

?“가시나라고? 이게, 술장사나 한다고 사람을 까뭉개네, 뭐 이런 게 다 있담?”

?“다시나가, 니 술장사하기 싫나?”

?결과는 또 불을 보듯 뻔했다.

?꼭두새벽부터 이렇게 걸베이맨치로 땅바닥에 퍼질러 표시가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하는 짓거리,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것은, 잘 알면서도 다시 이 노릇이기 때문이다.

?정말 주모가 술이라도 따라주는 여인을 불러주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욕지거리가 오간 것보다 참담했을 것이 토기 잔 나부랭이도 두 잔 되고 몇 병이 되는데, 사내가 어찌 젊은 여인을 보기만 하고 손만 잡다 말 것인가? 그 손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유혹의 문에 들어서면 그치의 손길에 마구 놀아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신학생 시절 특히 ‘죄의 신학’분야를 들이판 적이 있다. 매일 취침 전에 바쳤던 기도도 아직까지 외고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다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나 어젯밤 같은 경우는 그 충심 어린 권고도 공엽불일 뿐 이미 시작된 꿈틀거림은 전혀 다른 권내(圈內)로 들어서게 하고 만 것이다.

?본디 유혹은 적군이 사방을 포위하고 돌면서 으르렁거리는 것과 같은 것을. 그러다 취약한 부분이 있으면 집중 공격하는 것을.

?일단 방어벽이 뚫린 성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무엇이가, 교만이다.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구였는데…. 서른도 살지 못한 사람이 좋았던 과거만 들추며 불평을 해댔고 그게 분노로 바귈 즈음 화풀일 해대지 않았는가. 물론 처음엔 아주 작은 유혹의 통로만 허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명명백백 악의 기만인 것을. 바늘구멍이 온 둑을 무너뜨린다고 딱 한 잔만 하지, 근처까지만 가보는 거야, 멀리 보기만 하다 오지 뭐…, 범죄에로의 전형적인 타협이었던 것을! 그동안 이런 식의 자기방어에 얼마나 실패를 거듭했던가. 내가 신학교를 쫓겨났다면 확실히 이 문제다.

?그도 아니라면 인간관계에서 공허했거나…. 어떤 사람 안에 사랑이 충만하다면 견고한 성을 무엇이 넘보겠는가. 하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랑이 결핍되면(이것은 마치 나무판자에 난 구멍과도 같다) 대개 ‘아 저기 구멍이 있구나.’ 하고 구멍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지만 사랑의 관계에서는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없는 것이다. 의당 존재해야 할 사랑이 구멍의 크기만큼 결핍되었다. 그런 허한 내면은 인적이 사라져 수풀만 무성한, 필시 맹수가 어슬렁거릴 환경이다. 빙빙 주위를 돌다 마침내 어흥!하고 틈을 질러올 것이다.

?그래서 악과의 싸움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연약한 인간이 어찌 사악(邪惡)을 이길 수 있으랴, 다만 피할 뿐이다. 그런 환경을, 그런 기회를, 그런 가능성을 줄일 뿐이다. 수술칼로 싹둑 제거할 일도 아니요 허한 구멍을 충만히 채우느냐가 본질이다. 이런 신학의 기초 지식을 모르는 나 범 요한이 아니건만…, 그란데 알만 뭐하노, 안다는 게 만날 이 꼬라지니! 지끼미 차라리 모르기나 했으면 좋겠다.

?“우짜노. 곧 동이 틀낀데… 아침일 낀데…. 또 최 부제님을 우찌보노? 아이, 아침이 시껍한 기라!”

?새벽 5시가 되어가자 칠흑 같던 완푸의 거리가 거무죽죽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이리 갈 수도 저리 갈 수도 없다. 아직 걷히지 않는 어둠 때문이 아니다. 아마 대낮이었다면 더 허둥댔을 것이다. 지난밤 딱 한 잔만 하자던 술이 몇 병이나 됐는지 모른다. 주모와의 말다툼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후부터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남정네 하나를 불러낸 것 같고 놈과 멱살잡이까지 오간 것 같다. 입술이 부르트고 핏자국이 남아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버드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았는데 문제는 아침이 오고 있는 것이다. 최 부제님께도 그렇지만, 더 괴로운 것은 나 자신이다.

?‘바보 멍추이, 이기지도 못할 술을 와 시작했노?’ 무엇보다 하늘께서 밝게 웃어주시지 않고 모로 돌아계신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기쁘지가 못한 것이다. 부스럭, 전대를 살펴보니 아뿔싸, 지난밤 한 잔 값으로 시작한 돈이 거의 일주일치는 날아갔다.

?‘최 부제님, 죄송합니데이.’

?땅이 꺼질세라 장탄식한 것이 벌써 몇 번째다. 물론 최 부제님은 용서해 주실 것이다. 서품 보류 건으로 마신 술임에 도리어 안타까워해주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 못난 모습으로 그분 곁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 여느 사람이 마신 술이 아니라 상습범이 도 그 짓을 한 데다 쌈질까지 해버렸다. 이럴땐 누구를 만나든 손가락질하는 듯하다. 밤하늘의 별빛마저 눈치를 주고 산들바람마저 예전 같지 않다면야 천지사방으로부터 단절될 수밖에…, 그래서 가금 이런 생각도 했다. 지옥이란 것이 있다면 이럴 것이다. 하늘이 제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측이 그것을 파서 기어들면 방법은 없을 거라고. 태양을 거부하면 당연히 어두울 수밖에. 어둠의 이유는 어둠에 있지 않으니까. 어두워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빛 하나만 있으면 된다. 기어이 무덤속만을 고집한다면 하늘이라도 어절 수 없는 단절 같은 게 지옥은 아닐까.

?이런 망할 시간에 떠올라 더 뼈저리게 확인하는 것이 한때 신학도로서 배운 지식들이다.

?돌았제 돌았어…, 그래도 우짜노! 아무리 그래도 최 부제님 옆인 척은 하다 아침을 맞아야 한다. 떨썩, 걷는 것조차도 부쳐 아무 데나 퍼져버리든지 어데 멀리 도망이라도 치고 싶지만 그 손바닥을 어찌 벗어날 수 있으라. 한 번은 치를 일, 어차피 매를 맞아도 그 앞에서 맞아야 한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 했다.

?‘동이 트기 전 살살 기어가 아랫방인 시늉이라도 해야 안 되긌나.’

?나는 하, 하고 입바람을 내어보았다. ‘아이 우야고 이 술 냄새!’

?제 입 냄새마저 이 정도니 최 부제님을 속일 수야 없겠지만 냉수라도 들이켠 다음 낯짝에 물 몇 방울이라도 찍어야 한다.

?뒤꿈치를 들며 살금살금, 도둑걸음으로 방바닥에 누웠는데 이제 반 시간 정도 후면 완연한 아침일 것이다.

?“범 요한 씨 일어났어요?”

?양업 부제는 벌써 우물가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허리띠라도 고쳐 매는지 느릿느릿 불러왔다.

?“예에…부제님….”

?그가 이름 석 잘 불러주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실은 지난밤 한숨도 못잔 삭신이 불어터진 국수 가락만 같은데 그의 부름에는 귀부터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이내 문지방을 넘어 몸을 낮추고는 그 앞에 비끼어 섰다.

?“아침 먹고 바로 출발해야겠어요. 갈 길이 머니….”

?“예에, 예….”

?이름이 어질 양(良) 일 업(業)이라서 그런가? 양업 부제는 아마 지난밤에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지도 모른다. 착해빠지기만 한 것도 무용지물이 아님을 진하게 느끼는 순간.

?만약 그가 신부였다면 당장이라도 고해성사를 청해 만물이 질책하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 ‘완푸에 성당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쫓아가 성사라도 볼 텐데.’

?이런 과도한 죄책감이 기질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유혹앞에 충동적이면서 또 결벽증 같은 것은 있어 늘 절벽 사이를 외줄 타기 해야 했던 조급증. 이제야 나의 치명적 약점을 잡고야 말았다. 교수 신부들도 분명 이것을 아시고 사제의 길에 제동을 거셨으리라. 그러나 끝내 이 악습을 고칠 수가 있을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생각이 오만 가지니 수저가 허공을 찌르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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