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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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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길잡이 범요한(3) 날짜 2015.02.17 11:41
글쓴이 관리자 조회 218

?“요한 씨….”

?양업 부제의 목소리에 평소보다 더한 부드러움이 있다. 한두 살 어리긴 하지만 부제가 된 후엔 얼결에 형님이란 소리가 나왔을 정도로 더 의젓해졌다. 양업 부제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신학교 교장이셨던 르그레주아 신부님이 하신 말슴이라며 입을 여는데 어떻게든 내 마음을 풀어주고 싶은 표정이다.

?“하루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엇대요. ‘밤이 끝나고 아침이 온 것을 어찌 아느냐?’

?그러자 한 제자가

?‘동창이 밝아오면 아침이지요.’

?‘아니다.’

?다른 제자가 말을 이었대요.

?‘동창이 밝아 창문을 열었더니 행인이 다니면 아침이지요.’

?‘아직 아니다. 행인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싶어야 그에게 진정 아침이 온것이다.’하드래요.“

?지금 나한테 완푸의 아침은 아침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제님 잘못했심더, 간밤에 과음하는 바람에 술꼬장을 부맀고…돈을 마이 썼븠씸더, 죄송합니더.”

?6척 멀대가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단둘밖에 없는 자리가 어색해질까 봐 그랬는지 양업 부제는 바로 말을 이었다.

?“에이, 오늘은 다시 오늘의 태양이 떴구나!”

하면서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요한 씨. 남은 돈이 얼마예요? 내겐 몇 푼 없는데. 우리 하루에 한 끼만 옳게 먹고 적당히 노숙할 델 찾읍시다, 괜찮아요 요한 씨, 이름부터 어질고 양선한 분의 한마디로 일단락되어 가는 참이었다.

?“저놈이에요.”

?어젯밤의 주모가 못 보던 사내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순간 나는 움츠러들고 말았다.

?“예끼 사람아 저놈이라니? 저 양반이지.”

?사내는 능갈친 웃음으로 다가서며 양업 부제부터 먼저 뜯어 본다.

?“뉘신지요?”

?양업 부제가 묻는 것을

?“아무것도 아이라예.”

?하며 중간에 내가 가로채 버렸다. 사내는 얼굴이 발개지는 양업 부제에게 또 치근거렸다.

?“이 사람과 함께 다니는 모양이오?”

?“그렇습니다만,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지요?”

?양업 부제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대답한다. 그자는 요리조리 살피더니 주모와 눈을 맞추다 갑작스레 돌아섰다.

?“여기 뒷간이 어디요?”

?자기는 워낙 길눈이 어두우니 굳이 몇 걸음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조반을 거의 마친 양업 부제가 나를 보며 마저 드시오, 하면서 그자와 함께 걸어 나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주모를 향해 작게 쏘아붙였다.

?“와, 술값이라도 띠뭈나?”

?그게 아니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줄 같은 것을 하나 꺼내는데 순간 턱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내 목걸이, 하며 목 밑을 더듬었으나 역시 여편네 손에 들려있는 그것이었다.

?“여기 달려있던 열십자 같이 생긴 물건…, 찾고 싶으면 우릴 따라오든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여태 뭘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다니. 십자고상에 달려계신 분과 목걸이를 준 사람의 얼굴이 겹치며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가슴으로 먼저 들렸다. 여자는 할 말만 마치고 곧장 일어났는데 뒷간을 일러주러 갔던 양업 부제가 오고 있었다.

?“부제님 죄송합니데이, 술기운에 물건 하날 일았삔 것 같심더. 두어 시간 기다려 주시모 퍼뜩 찾아오겠심더.”

?바로 보지도 못하고 후다닥 내빼고부터 봐야 했다.

?“파뜩 내놔라, 내 목걸이 우쨌노?”

?한통속이 분명한 놈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갑자기 독사처럼 가늘게 째지던 눈에 섬뜩한 불이 켜지려고 했다. 그러다 말고는 이내 능글맞은 입모양이 되어서는 이죽거리기 시작한다.

?“봐 봐 주모, 사람 하난 잘 봤지. 호탕하잖아!”

?하면서 대번에 밀치며 하는 말이란 “아큐라고 하는데 형씨 안면이나 트자고. 간밤 형씨하고 실랑이한 놈은 잘 몰라. 열에서 한잔하다 들으니 사천에다 저 위 장춘말도 섞여서 말이야. 술도 제법이고 여간내기 아니야? 우린 화끈한 게 좋거든.” 하면서, 목걸이는 두목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응당 자기가 찾아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역겹게 웃었다.

?그놈의 술 한 잔이 더럽게도 꼬여가는구나, 하면서 다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러나 목걸이는… 고상(苦像)은 꼭 찾아야 한데이. 거기 못 박힌 분한테 면목 없으면 살아도 산게 아이데이.’하며 어기적어기적 쫓아가고 있는데 앞서 가던 주모가 뒤를 보았다.

?“그런데 그 열십자, 얼핏 듣기에 서양 무당…, 혹시 당신도 그거 하는 사람인감?”

?갑자기 어제 술 딱 한잔만, 하며 검지까지 들어 보였던 것이 창피해졌다. ‘그놈이 그놈이구만.’ 하며 비웃는 소리로 이어질 것 같아

?“어데, 그런 건 아이고…."

?라고 해버렸다. 주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아큐는 걸어온 것만큼 더 가면 제 상전이 기다릴 거라고 한다.

?“맞아, 십자가 같던데 양인들 한다는 천주교. 당신도 그 교인이람?”

?그 음성의 주인과 욕지거리까지 했다는 것이 더욱 낯부끄러워졌다.

?“뭐라카노, 아는 사람이 준 정표라 찾으려는 것뿐인 기라.”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길을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다가 기어이 마저 입을 열고야 만다.

?“분명해, 그거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데, 거기 달린 게 예수 상제라며, 당신 예수 믿는 사람 아니람?”

?나는 왜 이 집엔 술 따라주는 가시나 하나 없노, 하며 슬쩍 주모의 가슴과 허리까지 훑어보았던 어젯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라 캐도, 그냥 장식품이라 안 카나 장식품!”

?원수 같은 여편네가 결국은…, 나도 슬피 울고 싶어졌다. 그 후로는 길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모르게 발걸음만 옮겨댔다. 어차피 앞이 흐려져 잘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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