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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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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쿠의 아침-길잡이 범 요한(4) 날짜 2015.02.23 15:11
글쓴이 관리자 조회 197

?“주모는 왜 따라오는데?”

?아큐가 으리으리한 신식 대리석 문 앞에 멈춰 주모를 향해 물었다. ‘대연관(大烟館:아편방)’이라는 글씨가 버젓이 쓰여있는 완푸 관아보다 몇 배나 규모 있는 대가였다.

?“배달꾼 좀 보고 가려고.”

?필시 주류도 전매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큐가 이끄는 대로 대리석 문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쪽에는 작은 방들이 줄지어 있는데 보일 듯 말 듯 해놓은 내부에서 솔솔 연기를 피워내고 잇엇다. 분명한 것은 아직 오전인데 많은 방에 인간들이 꽉 들어찻다는 것이다.

?담배가 아니었다, 전단지에 쓰여있는 보수고(福壽膏)라, 복과 수명을 기름지게 한다고, 웃기네! 완푸같이 작은 바닥에 이런 크기의 아편방이 있는 줄은 몰랐다. 걸으면서 힐긋힐긋 보니 어떤 방에는 젊은 것들이 혼숙 중인데 부잣집 애들인지 차림도 낯짝도 반반하다. 다만 눈동자가 없는 것 같고 체온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가끔 야릇한 웃음소리가 유령처럼 흩어지면 지금 십자가를 되찾으러 가면서도 뱁새눈이 되어 여기저기 힐끔거리게 된다는 게 싫었다.

?“나리, 말씀드린 장춘 사투리 왔습니다.”

?아큐는 내게 눈짓하며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면 도리가 없었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먼저 그 넓이에 입부터 벌어지고 높이에는 기마저 눌려버렸다. 웬만한 사찰의 대웅전이었는데 그가 방금 전까지 앉아있었을 건넌방에는 실내에서 기르는 화초가 울창한 숲이었다. 명주 문발을 제치며 착석하자 잠자리 날개맨치로 천만 걸친 아가씨 둘도 따라와 부채를 하느작거린다. 그는 한참을 아는 척도 않고 자개 상 위의 족자만 들여다보았다. 벼루 위의 아직 젖어있는 붓으로 보아 친필인 모양인데, 납관에 찍힌 이름이 전다다(錢多多)였다. 검고 찰진 수염을 만지다 점잖게 여종에게 넘겨주는, 전체 서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그 전다다란 이름과 여인네의 옷차림뿐이다. 전다다가 볼일을 다 볼 때까지 입도 벙긋 못했다. 아편장사치라기보다 고명한 학자나 대작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저런 양반이 목걸이 같은 것은 왜 탐했을까.’할 정도로 진중하고 위풍스런, 저런 건 아무리 돈으로 싸 발라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갈일 때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목걸이를 찾으러 왔는가?”

?주눅이 들어있던 차에 나리란 말이 그냥 나온다.

?“…저한테는 소중한 거지예.”

?“사천 사는가, 장춘 사는가?”

?근엄하게 물어오는 통에 길 나서면 사람 조심부터 해야 한다는 기본도 잊고 신상을 발설할 뻔했다. 사천 있는 사람이 예까지 나다닐 일은 없고 그러면 사천 태생이 장춘에 몸 붙인 거구만 하며 빙긋이 웃는데 아무 대꾸도 못해버렸다. 자기 추측이 맞았다는 듯 전다다는 한 걸음을 더 물어왔다.

?“그게 십자가인 것 같던데, 그러하면 예수 믿는 사람인가?”

?정신을 차려 자꾸 긴 얘기 하지 마시고 내 물건이나 돌려달라고 하려는데 옆에 있던 아큐가 끼어들었다.

?“교인은 아니랍니다.”

?“양인들, 아편만 들여올 거지 왜 예수는 들여와 병 주고 약 준다는 소린 듣는지…, 예수패들 기를 쓰고 우릴 폄하하는데 그런다고 세상이 알아나 줄까, 아무튼 아니라니 되었네.”

?전다다는 시종 세련된 말투로 이어가는 능력이 있었다. 아큐가 또 참견하며 나를 보았다.

?“이보게, 나리께서 이번 장춘에 점포를 내시려는데 현지책이 필요해서 말이야. 어제 보니 배짱깨나 있어 보여 말씀 올렸네. 마침 목걸이도 들어왔고.”

?주먹다짐까지 오갔던 녀석이 한패라는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는다. 능갈치던 투가 어느새 싸늘하게 변한 아큐의 입이 계속 놀려졌다.

?“조금 전, 동행한다는 샌님은 영 아니야, 그렇게 꽉 막혀선 거추장스럽기나 하지.”

?그 소리에 확 양업 부제의 얼굴이 떠올라 정면으로 나가기로 했다.

?“물건이나 돌려주이소, 갈 길이 먼 몸이라예.”

?전다다가 부드러운 빛으로 말을 받았다. 바로 반말인데도 그게 자연스러웠다.

?“함께 일해보지 않겠나? 나는 자네에게 힘을 줄 수 있지. 머지않아 나 같은 팔자로 피어나지 않겠나?”

?그의 제의가 솔깃하면서도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자들이 신학생 출신을 뭐로 보는가. 무어 아편사업? 양민들 등골 파고 뇌골 빼서 치부하는 파렴치들이. 어젯밤 내가 잘못도 한참을 잘못 보인 기라.’ 바로 이런 쪽으로 결론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 양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 내용이라도 시종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현재 대연관 울안에만 해도 눈물 콧물 다 말라 앙상한 뼈로나 추려갈 인간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전다다는 미소를 띠면 계속 말했다.

?“왜에, 이 장사 하면 몸 망칠까 봐? 보시게나, 내가 아편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한 번도 흡한 적이 없네. 자네도 장춘에서 그냥 이름만 빌려주면 되는 것이고….”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쌍스럽거나 목소리나 야비했으면 했다. 나도 모르게 쫓기는 말투가 되어 일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자꾸 이라지 마시라 카이끼네예, 나도 이다음 꼭 천국 가고 싶은 기라예!”

?버럭 뱉은 소리 때문인지 여태 그러지 않던 전다다가 힘주어 입을 떼기 시작했다.

?“천국? 예수쟁인가? 허허 난 말이네, 당장이라도 천국에 데려다 줄 수 있지. 꼭 아편만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럴듯하게 누릴 것이 즐비하다고! 사람 못난 게 이다음만 찾지. 근사한 세상을 두고 뭔 소리야? 진짜 고급 재미는 말이야 몸에도 좋아. 날 보게, 올해 쉰인데 누가 그리 보냔 말이지?”

?그 다음부터는 귀를 막았다. 십자가에 달린 분의 음성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빨리 물건이나 돌려주라 안 카나, 하고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러자 전다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참을 쏘아보더니 일단 밖으로 나가있으라고 했다. 아큐와 무언가 수군거리는데 이것저것 지시하는 것 같았다. 퍼뜩 도, 내끼나 돌려도, 하며 깽판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여기저기 뻗치기하는 덩치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잠시 후 아큐만 나와 징그러운 입을 놀려댄다.

?“목걸인 왕툰의 왕씨를 주셨다고. 며칠 새벽청소 삯이니 세전밖엔 안 해, 몇 끼 굶는 셈 치든지.”

?하며 뭘 잘했다고 빤히 내려 보는 저 아큐 개 상노므 자슥, 좀 전까지 여기 있다고만 하더니 뭐 세 전에 바꿔버렸다고. 거 전다다인지 돈더더인지도 개기름 고래 해가이고 오래오래 사이소, 마. 베름빡에 똥칠 질질 할 때까지 살아보쏘.

?그 망할 놈의 대리석 문을 뛰쳐나와 닥치는 대로 왕툰을 물어봤지만 도대체 이 병신 같은 거리는 급한 사람에게 히죽이죽 웃기들만 할 뿐이다. 그도 아니면 투실솔(귀뚜라미 싸움)에나 빠져 건성건성 답하는 바람에 길 묻는 시간이 되레 몇 갑절 걸렸다. 결국 알고 보니 벽류하 건너 첫 동네였던 것을, 한달음 거리를 시간 반이나 지체되어 몸이 다는 것은 이 시각도 애태우고 있을 양업 부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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